우에노 공원과 스타벅스 커피점
»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
참 오랜만에 토교의 우에(宇野)공원을 찾았다. 한 30년 전에 나고야에서 일본의 정토(淨土) 신앙 사상가 신란(親鸞)의 타력(他力)불교 사상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던 젊은 시절에 우에노의 벗 꽃이 무척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서 가 본 적이 있었는데, 벗 나무 밑에 돗자리 같은 것을 깔고 싸온 음식을 풀어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우리나라 관광지에서 흔히 보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놀랐고,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벚꽃이 제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다 해도 역시 우리 동양 사람들은 술과 음식이 있어야 흥이 나는 법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국제 학술단체 연합회(UAI)의 총회에 참석하기 위에 가선 머문 호텔이 공원 근처라서 쉽게 걸어서 갈 수가 있고, 또 옛날 생각도 나서 다시 찾았다. 동경 국립박물관 쪽을 향해 걸으면서 양 옆으로 신사, 절, 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안내 표시 등을 유심히 살피면서 걷다가 이전에 왔을 때는 본 적이 없는 안내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스타벅스 입간판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웬 스타벅스?”하고 놀랐지만, 길고 나지막한 목조건물의 스타벅스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매장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공원의 분위기와 비교적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놀라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우리나라 어느 유서 깊은 관광지나 유적지 같은데 그런 건물이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그렇게 큰 매장, 그것도 지금은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햄버거보다도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큰 규모의 커피점이 그렇게 유명한 공원, 그것도 아주 사람들의 눈에 잘 띠는 곳에서 영업을 한다는 건 나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길고 나지막한 목조건물이라서 그런지 공원의 주위환경이나 분위기 상 그렇게 튄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퍼뜩 나의 뇌리를 스친 생각은 “아! 일본인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말 좋아하는 구나, 아니 미국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곧 이어서 일본과 미국의 가까운 관계,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아베와 트럼프의 밀월관계가 생각났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방문 첫날부터 일본 매스컴을 도배하다시피 한 것이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 선을 확보할 정도로 압승했다는 소식이었고, 몇 일후로 다가온 트럼프의 일본 방문도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던 차였다. 혹시 둘이서 짝짜꿍이 되어 이 민감한 시기에 우리도 모르게 한반도의 운명을 두고 무슨 비밀 협상이나 약정 같은 것을 맺지나 않을지 하는 불길한 생각에 학술단체 연합회 모임 내내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미국과 일본이 실제로 그런 못된 짓을 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미일동맹의 압력 앞에 우리나라가 놓여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귀국 길에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넉넉해서 공항에 있는 서점에 들렸다. 평소 타임지는 가끔 읽는 편이지만 뉴스위크지는 읽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한 2주가량 지난 뉴스위크지(발행일자가 10월 17일) 딱 한 부가 아직도 판매대에 남아 있었다. 카버 스토리 제목이 너무나 놀라워 당장 사가지고 공항 한구석에 앉아 다 읽어버렸다. 흥미로운 제목이었다. “Can God believe in Trump?”, 번역하자면 “하느님도 트럼프를 믿을 수 있을까?” 혹은 “하느님도 트럼프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하는 제목이었다. 큰 글자로 쓰인 이 제목 밑에는 로마 바티칸에 있는 시토회 채플 천정에 그려 있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그림 – 천지창조 그림인데, 아담이 하느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 을 패러디한 그림에는 트럼프가 하느님께 손을 뻗치면서 “당신 당장 해고야!”라는 그가 평소에 툭하면 던지는 말과 함께 그려져 있다. 상식을 무시하는 그의 돌출적인 언행이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정말 무슨 전략이라도 가지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의 나쁜 습성을 이기지 못해서 나온 ‘자연스러운’ 언행이라면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일본이 몰라서 트럼프에게 딱 달라붙고 있을 리 가 만무하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분단국가, 그것도 심한 남남갈등으로 분열된 약소국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지금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누구보다도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고 잘못하거나 실수를 범해도 절대로 인정하거나 사과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공연히 심기를 건드리거나 맞섰다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의 성격으로 보아 무슨 불장난을 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미국 국내 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그럴 염려가 더 커진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오후(현지시각)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의 미국 총영사관에서 한·미·일 정상 만찬 기념촬영을 마친 뒤 만찬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함부르크/연합뉴스
한반도 운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상치 않는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합의할 수 있는 제일의 명제는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그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의 환심을 사야 한다. 별 도리가 없다. 우리가 속으로 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든 말이다. 당국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고도의 외교적 기술이 요구된다. 나중에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평생 종교연구를 해온 나 같은 문외한이 주제넘은 말을 한 것 같아 계면쩍다. 민족적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쳐 버리고 하는 말임을 나도 안다. 말도 안 된다고 매도해도 상관없다. 이 땅에서 끔찍한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뉴스위크지는 더 나아가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미국 유권자의 양대 세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른바 기독교 ‘복음주의, 근본주의’(evangelical, fundamentalistic) 진영과 ‘애국’을 자처하는 이른바 재향군인들(veterans) 세력이라고 지적하면서, 전자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분석을 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나로서는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 기사를 읽고 나면 내가 정말 평생 개신교 신자로 살아왔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국식 복음주의, 근본주의, 물질적 번영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이른바 ‘번영 신학’(prosperity theology)으로 철저히 물든 한국 기독교에 더 이상 아무 희망이나 미련을 갖지 말고 깨끗이 절연선언이라도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미국 복음주의 진영과 트럼프의 정략적 유착관계와 위선에 대한 뉴스위크지의 분석 기사를 미국이나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과 지도자들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