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아일랜드 해변에 있는 코리밀라에서 평화교육에 참가한 사람들
코리밀라 대표 코린 크레이그 인터뷰
» 코리밀라 대표 코린 크레이그
서양 분쟁지역 평화교육자가 동양 분쟁지역 한국을 찾았다. 연 6만여명이 찾아 평화교육을 받는 북아일랜드 ‘코리밀라’의 대표 코린 크레이그(63)다. (사)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가 주최하는 평화교육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온 그를 15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12길7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분쟁지역에서 평화는 쉽지않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따라서 ‘북한 핵을 둘러싼 남북한의 어려움을 돌파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분쟁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꼬이고 꼬여있는데다가 상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조성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지도자들로 인해 늘 적대감이 재생산되기에 이런 ‘네가티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평화의 관건이다”고 말했다.
영국령 아일랜드의 ‘얼스터’ 지역은 9개 주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많은 3개 주를 떼어내고 개신교 신자가 대부분이던 6개 주만 1922년 ‘북아일랜드’가 되면서 남·북 갈등을 빚어온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그곳에선 신(개신)·구(가톨릭)교 신자들이 서로 말도 섞지않고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 정보’만 들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코리밀라는 2차대전에 참전해 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목회했던 레이 데이비라는 목사가 젊은이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며 1965년부터 평화운동을 펼치며 시작됐다. 크레이그는 데이비 목사와 달리 소수파인 가톨릭 배경에서 자랐다.
코리밀라는 신·교간의 폭력 사태로 3천여 명이 숨진 70, 80년대엔 정치적인 봉합이 어려웠기에 우선 폭력으로 상처입은 이들을 위로하면서, 폭력을 좀 줄여보기 위한 평화교육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편견이 굳을대로 굳은 어른들보다 먼저 어린아이들부터 서로 만나 ‘상대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1980년 코레이그는 ‘모험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신·구교의 아이들이 함께 캠핑을 하면서 동일한 문제를 협력해서 해결해가게 했지요. 또 그림이나 드라마, 인형극 등 예술활동을 함께 하면서 같이 상상하도록 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쉽지않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데, 교사들이 ‘열린 아이들 모습’을 보고 패닉에 빠져 더 이상의 소통을 용인하려들지않는다는 것이다.
북아일랜드는 개신교쪽의 민주연합당과 가톨릭의 신페인당 양쪽 극단주의 정당이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극단주의가 여전히 득세하는 것은 시민들이 그들의 가치를 지지해서라기보다는, 네거티브에 물들어왔기에 상대 종교 쪽이 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반대표만 던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코리밀라는 매스컴에선 강경 발언만 쏟아내는 정치지도자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도록 주선해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도록 힘쓴다고 한다.
그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키로 하면서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남기를 원하는 북아일랜드에 또 다른 갈등이 우려된다”고 했다. 유럽연합 등장 이후 남·북 아일랜드가 통일하지않고도 관광이나 문화·체육 교류를 통해 통합을 진전시키고 럭비 단일팀까지 구성하기도 했는데, 브렉시트로 남북간 경계가 강화되고 분단이 고착화될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평화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지 뒤로 물러설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코리밀라를 중도이면서도 전진하는 진보라고 했다.
그는 “남한도 자기들 이익을 챙기려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려움이 크겠지만, 미국에 끌려가기만 해서는 안되고, 어떻게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낮은 수준이라도 남북 교류 협력사업들을 만들어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화되고 발전된 남한보다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고, 체제 위기감이 강한 북한이 남보다 훨씬 두려움이 큰 상황이기에 어떻게 그 위기감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체제 개방 방식을 찾아내느냐가 평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수용하려들지않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찾아 변화하는 젊은 세대에 주목했다.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가톨릭국가인데도 평소엔 선거율이 낮던 젊은이들이 동성 간 결혼 허용 법안 투표엔 압도적으로 나서 통과시켰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젊은이들이 같은 일을 벌인 예에서 보듯 젊은이들은 기존세대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이미 고정된 것을 고착화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미래를 보고 일한다”고 ‘희망을 열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