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누리가 홍천 터전에 살게 된 걸 감사하는 잔칫날, 모두 집에서 오줌을 한 통씩 받아 와 한데 모았다. 우리 각자 몸속에 담아두고 있던 것들이 그렇게 해서 하나가 되었다. 그 감격스러운 잔칫날, 좀 더 멋스러운 예식도 있을 텐데, 오줌이라니! 황당해하는 방문객들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재밌어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똥오줌에 질겁할 것 같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생각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삶’에 늘 앞서간다. 사람들에게 이 예식 얘기를 들려주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뜻깊고 멋있다고 한다. 똥오줌이 우리 삶에 들어오니 멋에 대한 관념도 달라진다.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농촌에 와서 처음 한 일은 뒷간을 만든 거였다. 뒷간엔 수세식 변기를 두지 않고, 똥은 똥대로, 오줌은 오줌대로 모은다. 똥은 왕겨와 톱밥과 재에 섞어 묵혔다가 거름으로 쓴다. 왕겨를 뿌려 똥을 담은 똥통이 차면 마지막 채운 이가 퇴비 모으는 곳으로 옮긴다. 수세식 변기에서 똥오줌을 다시 볼 일 없이 수세식으로 쏟아지는 물에 씻어 내려버리면 깨끗할 텐데, 이렇게 부삽으로 떠서 섞는 작업까지 해야 하니 지저분하고 번거롭게 여길 법하다. 하지만 수세식에서 사용되는 그 많은 물과 똥오줌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라도 습관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 학생들도 처음에는 뒷간을 부담스러워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졌다. 오랫동안 고생하던 변비까지 고친 아이도 있다. 똥오줌은 여전히 다시 보기 부담스러운 놈이긴 하지만, 내 몸 오장육부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똥오줌을 다시 만나 치울 때마다 뭘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된다. 뒷간에서 근심을 풀고, 스스로 건강진단도 하고, 명상과 성찰도 하니 참 거룩하고 재밌는 곳이다.
우리 공동체를 방문하는 분들 중에는 수세식 변기가 없고 뒷간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해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뒷간을 기대하고 오는 분도 많다. 방문자들이 밝은누리가 만들어가는 생태적 삶을 기억할 때 꼭 나오는 얘기가 있다. 토박이 씨앗, 흙집과 나무집, 마을 터, 그리고 단연 으뜸이 뒷간이다.
“생태적 삶과 유기농사의 핵심은 똥오줌이에요. 우리나라 유기농업에서 이게 참 아쉬웠는데, 여기 와서 뒷간을 보니 너무 반가워요.” 농림부 장관과 대학 총장 하시며 우리나라 유기농업을 지키고 확산하는 일에 한평생 힘써 오신 김성훈 선생님이 삼일학림 여는 잔치에 오셨다가 하신 말이다.
우리는 밥상 부산물도 거름으로 쓴다. 서울 인수마을 밥상에서 나오는 부산물도 홍천으로 가지고 와 밭에 뿌린다. 이제 똥오줌, 밥상 부산물은 이곳에선 쓰레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여기는 그것들이 하늘땅 무수한 미생물과 씨앗들과 만나 우리를 살리는 영양 좋은 밥상이 되는 것이다. 쓰레기를 구조적으로 양산하는 삶과 문명은 지속 불가능하다. 뒷간에서 우리가 낳는 건 황금알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명을 살리는 밑거름이니 귀하고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