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음을 의식하는 당신에게
나이 먹음은 지나간 나와 이별
행복불감증은 리셋 능력 부재 탓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의 나
싫지 않고 수치스럽지 않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9월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일까요? 꼭두새벽부터 스마트폰으로 감동받은 글이라며 달콤한 잠을 깨우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20가지’ ‘50살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들’ 같은 글들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분들인 듯싶습니다. 나이와 관련된 얘기도 많이 듣습니다. 독자의 전자우편이 그렇습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결코 반갑지 않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 뭔가 의미 있는 인생의 매듭을 짓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흐지부지 보내고 말았습니다. 아쉬움이 무척 크네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늘 쫓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방법을 찾다가 가겠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사는 게 더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40대 후반의 남성입니다.”
“여자 나이 마흔, 그 단어가 이렇게 숨 막히게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기도 하고 전성기가 다가온다지만, 여자는 다릅니다. 친구들 앞에서 안 마시던 술도 홀짝거리고 주책없이 주절주절 떠들게 됩니다. 놓쳐버린 기회와 지나간 사람들이 너무나 그립고, 그러면 그럴수록 내게 없는 것을 애타게 찾아나서게 되는군요. 유명하다는 교양 강좌에 참석해보지만 그다음날이면 심드렁해집니다. 서른아홉 신드롬일까요?”
이처럼 사람들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보다는 지나온 과거에 대한 집착이 더 큰 듯합니다. ‘나도 한때는 잘나갔어!’라는, 스스로에 대한 심리적인 방어벽일까요? 10년 주기로 그 아쉬움의 파도는 큰 파장으로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스무살이 나의 전성기였어. 얼마나 피부도 탱탱하고 꿈은 화려했던가?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참으로 많았었다. 나는 왜 대학 졸업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을까?…”
“서른, 진정한 전성기였어. 대학도 졸업하고 군대도 제대했으며 직장도 있고 결혼도 안 했으니, 의무는 없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때 아니었던가? 그런데 나는 사회초년병의 풋풋함을 누리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무척 아쉽다.”
“마흔, 생각해보니 이때야말로 전성기 아니었던가? 직장에서나 집안에서 비중이 제법 커지고, 아직 체력적으로도 별문제가 없었으니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전에는 결혼하면 인생 종착역이라 믿었다. 왜 그것을 몰랐을까?”
이렇듯 40, 50, 60이란 나이테는 심한 정서적 몸살과 심리적인 몸부림을 동반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이별을 의미합니다. 이별은 누구나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 견디기 힘듭니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젊음을 잃고, 전성기에서 멀어져간다는 본능적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60의 나이가 되어서는 50을 그리워할 겁니다.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제가 퇴직하던 날 익숙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다시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50대 초의 나이였습니다.
일정한 사회적 지위에 오르고 경험도 충분하면, 시간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고 느긋해질 줄 알았습니다. 차이와 낯섦에 관대해지고, 포용력이 늘고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름답게 나이 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알 수 없는 분노였습니다. 그 분노는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특정인을 향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시간 앞에, 세상 앞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세상에 필요 없는 잉여적 존재라는 자의식입니다. 주변에서는 ‘당신은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 마!’라고 위로해주었지만, 그 위로마저 고맙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영혼에 뭔지 모를 독가스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노를 이기려면 몸과 정신에서 독소가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오랜 조직생활에서 오는 몸의 혹사, 피로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미지의 앞날에 대한 긴장으로 정신은 더욱 날카로워진 상태입니다. 이럴 때는 정신적 해독제가 필요합니다. 최고의 해독제는 수첩이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메모해두었던 수첩을 꼼꼼히 다시 읽어내려갔습니다.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이 물론 적지 않았지만, 희열의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에는 제 인생에 각박한 점수를 주었고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시간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현재와 다가오는 시간에는 인색한 평점을 줍니다. 스스로 불행하다 느끼는 이유입니다.
인생노트 쓰기를 권합니다. 형식이 어떻든 내 인생과 새롭게 만나고, 새롭게 사귈 필요가 있습니다. 쓰다 보면 어색한 자기 자신이 거기에 서 있을 겁니다. 새로운 사람만 사귀지 말고, 지나온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인생도 리셋이 됩니다. 마치 컴퓨터를 다시 세팅하듯,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행복불감증의 상당 부분은 리셋 능력이 없는 데서 옵니다. 지나온 나의 얼굴에서 미래의 내가 보입니다.
봄을 선호한다고 해서 가을과 겨울을 기피할 수 없습니다. 그 계절만의 매력도 있습니다. 50, 60이라는 수치는 물론 반갑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지금의 제 나이가 그리 싫지는 않습니다. 더더욱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