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질랜드 무료보건소 운영 원불교 김혜심 교무
암 재발에도 에이즈 확산 막기 위해 18년간 봉사
아프리카 북쪽 수단에 가톨릭의 이태석(1962~2010) 신부가 있었다면, 남쪽 스와질랜드엔 원불교의 김혜심(67) 교무가 있다. 국내엔 알려지지않았지만, 아프리카의 한켠에서 촛불처럼 자신을 녹여 희망의 등불을 밝힌 김 교무를 찾았다.
스와질랜드 카풍아로 가는 길은 먼지바람이 거셌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국경까지 차로 5시간30분. 국경을 넘어 차로 2시간 30분, 다시 스와질랜드의 수도 음바바네와 또 다른 도시 만지니를 지나쳐 20km 넘는 산길을 달리자 해발 1100m 산 속에 카풍아가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과 네델란드계 백인의 침략과 부족들 사이 혈전을 벌여 ‘피의 계곡’으로 불리는 땅이다.
1968년 스와질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으나 여전한 전제 왕권국가에 일부다처의 폐습이 잔존하는 나라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왕이 아니라 가난과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AIDS)다. 우리나라의 강원도만한 지역에 120여만 명이 사는 스와질랜드는 15~49살 인구의 26%가 에이즈 환자(2011년 유엔 통계)로, 세계 최고 비율이다. 이 나라 평균 수명은 32.6살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에이즈와 기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두 그림자가 카풍아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모제스(17)의 아버지도 지난해 5월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모제스네 다섯식구의 하루 수입은 암탉 다섯 마리가 낳은 계란 다섯 알이 전부다. 거적때기 하나 없는 흙바닥에서 식구들은 끼니를 때울 양식이 없어 빗물을 끓여 춥고 건조한 집안을 데울 뿐이다. 6~8월까지가 겨울이라 새벽에는 체감온도가 영하까지 떨어지는 추위에 떨며 고픈 배를 감싸안고 있다. 모제스의 엄마 아냐(41)는 “달걀을 팔아 겨우 살아가는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닭을 잡을 수도 달걀을 먹어버릴 수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마을입구 식품점에서 일하는 푼질래 드라미니(40)도 에이즈 환자다. 푼질래가 에이즈 판정을 받은 것은 2008년. 그해 유치원에 다니던 딸이 에이즈 합병증으로 숨졌다. 딸을 잃고 자포자기하며 생을 접으려던 푼질래에게 희망을 준 이가 김 교무였다. 김 교무가 건네는 자비와 약품으로 생을 보전해가고 있다.
이 마을에서 김 교무는 ‘꼬꼬(할머니) 킴’으로 불린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이 마을에 없다. 그런데 요즘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꼬꼬 킴’이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국가도 정부도 의지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꼬꼬 킴’은 유일한 생명의 끈이다. 김 교무가 암이 재발해 쉬어야한다는 권고를 받고 있지만, 이들이 김 교무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김 교무는 원광대 약학대 학장을 지냈다. 한국에서 몸 편히 살 수 있던 그가 이곳에 건너온 것은 18년 전이다. 1970년 원불교에 출가해 76~83년 한센씨병 집단수용소인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살며 봉사하기도 했던 그는 1995년 아프리카에 왔다가 스와질랜드의 참혹한 실상을 보았다. 에이즈 환자 천지인 어른들 사이에서도 티 없이 맑았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학장직을 그만 두고 아프리카행을 결행했다.
김 교무는 원불교 카풍아 교당에 무료보건소를 열었다. 지난 2005년엔 에이즈 환자를 위한 ‘선샤인(Sun Shine) 쉼터’도 열었다. 이곳은 병이 중한 환자들을 돌볼 뿐 아니라 에이즈 예방 교육을 통해 에이즈의 확산을 막는 전진기지다.
카풍아를 뒤덮은 병마와 싸우던중 김 교무는 2006년 다발성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다. 체중도 10kg이나 줄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에서 봉사를 계속하던 그는 2008년 다시 위암 판정을 받고 한국에서 또 한번 수술대에 올랐다. 담당의사는 ‘쉬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남아공의 사막 마을 라마코카에서 김혜심 교무를 도와 현지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조현제 교무(46)는 “김 교무는 일을 하다가 뼈마디가 으스러지겠구나 할 정도로 일을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교무의 관심은 자신의 몸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에이즈를 물려받은 채 태어나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잘 먹어야 면역력이 높아져 병을 견뎌내는 데 먹을 것이 태부족한 상태다.
김 교무는 “에이즈를 물려받은 아이에게 한달을 꾸준하게 분유를 먹였더니 얼굴이 달덩이처럼 건강해졌다. 잘 먹기만 해도 면역력이 높아지는데 먹을 것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에이즈 환자들에게 에이즈 바이러스 항원의 수용체 수치를 높여주는 면역 증강제를 투약하고, 영양분을 보충하는 비타민제를 나눠주는 게 원불교 교당의 주요 역할이다.
또 카풍아 교당은 에이즈란 급한 불을 끄는데 그치지 않는다. 유치원과 여성센터와 무료 도서관을 운영하고, 초중고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직업훈련교육을 시킨다. 이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미래의 무지개를 그려주기 위해서다.
하루 하루 연명하기도 힘겨운 이들에게 암송아지 30마리를 분양해준 것도 카풍아 교당이었다. 2년 전 교당으로부터 우리 돈으로 40~50만원 정도하는 암소를 분양받은 라디아(58)는 “1년만 더 키우면 새끼를 낳을 것 같다. 새끼가 나오면 나도 어려운 사람에게 송아지를 나눠주겠다”고 해맑게 웃었다. 김 교무는 “송아지가 커서 새끼를 낳고, 라디아처럼 이웃 사람들에게 계속 분양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함께 웃었다.
이 마을은 전기가 들어오는 집이 거의 없어 밤이면 암흑세상이다. 유일한 불빛은 교당 안에 있는 도서관이다. 25개 좌석을 가득 메운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모제스가 말했다.
“내겐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꼬꼬 킴’처럼 남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픈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김 교무의 헌신으로 잿빛 구름만이 가득했던 카풍아의 하늘에 무지개가 떠오르고 있다.
카풍아(아프리카 스와질랜드)/글·사진 정주용 피디j2yong@hani.co.kr
스와질랜드는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동쪽에 자리한 스와질랜드는 북쪽으로 모잠비크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6분의1 크기로 인구가 120만명이다. 하루 생활비 1.25달러, 우리 돈 약 1400원으로 생활하는 국민이 78%에 달하는 세계 최빈국이다.
김혜심 교무 인터뷰
김혜심 교무는 암 투명중인데도 얼굴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맑았다. 무아봉공(無我奉公)이 주는 축복일까. 무아봉공은 ‘세상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원불교인의 수도 자세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에이즈 천지인 이곳에 자신을 비우지 않고선 자리 잡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터다. 그러나 그는 흑인들이 위험하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임을 분명히 했다.
“스와질란드에 처음 와서 남아공 시내에서 장을 봐서 카풍아로 돌아가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1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였다.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 텅 빈 도로에서 옴싹달싹할 수 없었다. 그 때 어디선가 흑인 청년 3명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이 힘을 합쳐 타이어를 교체해주었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도와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아프리카엔 그런 천사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가끔씩 고국과 사람들이 그리워 가슴 찌릿찌릿한 그리움을 느끼지만, 그런 아프리카 사람들 때문에 18년을 살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이곳 사람들은 그를 구세주처럼 여기지만, 그의 생각은 정반대가 그들이야말로 그의 구세불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40대
후반에 와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병까지 앓고 있지만, 그들이 있어서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많은 것을 가졌고, 이들은 가진 게 너무 없고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가지만 한국인들보다 훨씬 잘 웃는다.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수업료가 없어 학교를 못가는데도 욕심을 내며 더 가지려고 안달하지않고, 힘든 상황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을 줄 안다. 이 아이들을 보면 내 영혼이 맑아진다”
김 교무는“이들이야말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는 나의 스승”이라며 “삶이 허락하는한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정주용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