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절집에서 차를 마시는 일이 그야말로 다반사가 되었다. 그러면 다반사가 어제부터 일상의 문화가 되었을까? 내가 처음 차를 접한 때는 아마 198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선원에서 안거를 마친 사형이 처음 보는 그릇들에 처음 보는 잎을 넣고, 물을 붓고, 한참 있다 따라내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작설차라고 하며 마셔 보라고 했다. 단숨에 한 잔을 마셨더니 사형은 혀를 끌끌 찼다. 무식하고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다소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차를 마시는 법도 간단하게 가르쳐 주었다. 가르쳐 준대로 차를 마셨지만 씁쓸털털한 맛이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리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가며 득의양양 한단 말인가. 자존심이 상했다. 솔직하게 그 때는 사이다와 오란씨가 훨씬 맛있었다.
내가 출가한 해는 1977년이다. 그러니 차맛을 본 것은 출가 이래 대여섯 해쯤 지난 다음인 셈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차는 절집에서 익숙한 풍경이 되었고, 템플스테이에서도 차담(茶談)은 세간의 벗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다만 원두커피가 좌우에서 차와 함께 하고 있어서 다소 유감이지만.
절집에는 이러저러한 손님들이 찾아 온다. 그래서 7,80년대에도 나름대로 접대가 필요했다. 예나 지금이나 접빈(接賓)의 기본은 음료와 다과, 공양과 잠자리 제공이다. 공양은 소박한 절밥을 주면 모두가 좋아하고 잠자리는 화장실이 재래식이 많아서 불편했지만 공기 좋고 풍경 좋고 땔나무로 구들장을 뎁혀 주니 좋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음료는 어떤 품목이었을까? 당시는 차가 귀할 때고 그 존재 마저 거의 몰랐으니 지금처럼 녹차나 유명세가 높은 중국차 등을 대접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80년대 중반까지 손님 접대의 기본 음료는 박카스와 원비디였다. 지금도 택시기사들이 많이 애용하는 드링크제인 것이다. 사이다와 콜라는 고급 음료에 속했다.
저물녘에 나그네 스님이 하룻밤 묵기 위해 산사에 들어선다. 주지 스님을 찾아 뵙는다. 그 때나 지금이나 처음 만나면 스님들의 한결 같은 인사는 마주 보며 큰 절을 올린다. “먼 길 오시느라 피로하시겠습니다. 누추하지만 편히 쉬어가십시오”. “소납은 어느 절에 사는 아무개입니다. 하룻밤 신세 지겠습니다” 이렇게 통성명과 인사가 끝나면 주지 스님은 의례 박카스 뚜껑을 따고 나그네 스님에게 권한다. 서로 한 병씩 마시면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나도 80년대 초반까지는 박카스 주신에 어느 정도 접신이 되었다. 드링크제가 중독성이 있다는 것은 마셔본 사람들이 알 것이다.
그래서 당시는 절에 오는 불자들이 가장 많이 들고 오는 품목이 드링크제였다. 1위 박카스, 2위 원비디. 비교적 값이 저렴하고 부피가 있으니 선물로는 적격이었던 셈이다. 워낙 절집에서 드링크제 소비가 많다보니 어느 제약회사에서는 부처님 오신날에 드링크제를 전국 절에 공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고정되고 불변하지 않는 법, 이른바 제행무상(諸行無常).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렇게 인기 있는 드링크제 음료가 과일주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쌕쌕, 봉봉, 따봉.... 그리고 훼미리, 델몬트, 썬키스트로 이어졌다.
그렇게 절집의 접빈 음료로 자리를 차지하던 세간의 음료는 마침내 ‘차’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80년대 즈음에 절집에서 마시는 차는 녹차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기의 종류도 몇 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10여년 동안 해인사 아래에서 생산하는 다기를 애용했다.
생각해보니 절집의 차문화가 자리 잡고 흥성해진 이유는 아마도 문화의식과 더불어 경제력의 향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문화는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널리다양하게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절집이나 세간이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역대 동아시아의 어느 황제와 귀족도 누리지 못한, 다양하고 품질 좋은 차를 마시고 있다. 경제력이 받침이 되고 문화가 융성하면서 미래 세대에도 차는 더욱 진화할 것이다. 정신의 품격과 삶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풍요로운 찻자리에서 가끔씩 그 옛날 절집에서 접빈하던 때를 그려본다. 가난하고 소박하고 불편했던 그때, 마실 것도 먹을 것도 단순했다. 그러나 더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정겹고 따뜻했다. 비록 박카스 한 병씩 주고 받았지만 건네는 손길은 정성을 다했고 마음은 존중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생각하건대, 모든 일은 ‘마음’아닌가. 그윽한 맛, 아름다운 만남은 오직 마음을 다하는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몇 년 묵은 얼마 짜리 차라고 하며 보여주고 자랑하고자 하는, 속셈이 있는 찻자리가 있다면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을 터이다. 어떤 차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차를 마시고 나누는가, 이게 중하고도 중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박카스면 어떻고 대홍포면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