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명장면】<10> 리더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군자질몰세이명불칭언
“군자는 죽는 날까지 이름을 남기고자 분투하는 사람이다.”-‘위령공’편 19장
1. 치중(恥重)
오늘은 훌륭한 리더를 꿈꾸는 젊은이를 격려한 선생님의 말씀을 전하려 한다. 우리가 노나라에 돌아올 때 목격한 씁쓸했던 장면이 이 이야기를 하게 된 동기이다. 공자 일행이 노나라 접경을 지나가는데 저쪽에서 죄수를 실은 수레가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죄수를 치중(恥重)이라고 불렀다. 도필(刀筆)을 무기로 해바라기마냥 벼슬을 좇은 사람이었다. 출세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에게든 아첨하고, 방해가 되면 누구든 음해했다. 그의 주특기는 선동과 독설이었다. 노정공이 죽고 애공이 즉위하면서 권력층이 교체되자 그는 자기 세상이 왔다고 여겼다. 그러나 막상 벼슬이 주어지자 그동안 휘두른 험한 언설이 고스란히 자신의 목을 겨누는 창이 되어 돌아왔다.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그는 휴가 삼아 사신 행차에 끼어 외국에 갔다가 술에 취한 채 부인희롱죄에 걸려들었다. 그는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지만, 같은 당파 사람들조차 비웃었다. 짧은 벼슬살이에 부끄러운 훈장만 목에 건 채 이웃나라로 붙잡혀가는 가련한 한 선비의 말로를 유독 뜨거운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청년이 있으니, 진(陳)나라 출신의 제자 자장(子張)이었다.
2. 야망의 빛과 그림자
자장(서기전 503~?)은 성이 전손(오로지 전孫), 이름이 사(師)이다. 공자보다 48살 아래니 공자가 환국할 때 겨우 스무 살이었다. 하급 사족인 자장은 높은 지위의 경대부(卿大夫)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자장은 스승을 대면할 기회만 있으면 ‘벼슬 얻는 법’을 물었다.(子張學干祿.‘위정’편 18장①) 자장이 공자를 찾아와 한 첫 질문은 이랬다.
“선생님 저는 출세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공자는 아직 십대 소년이던 자장의 치기만만한 당돌함을 풋풋한 기개로 보듬어 안아주면서 당부했다.
“젊은이, 선비는 평생 세상을 염려하며 쉼 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자라네. 벼슬 따위는 선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세.”
자장 역시 출세의 본질이 개인적인 영달에만 있다고 보지 않았다. 자장은 사회개혁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공자의 문하를 찾은 것은 제2의 자산(子産. 정나라 재상. 춘추시대 탁월한 정치가)이 되겠다는 나름의 원대한 포부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장은 구세안민(救世安民)의 대의를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을 그 길로 이끄는 위치에 올라야 하고, 그 지위에 걸맞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민중의 벗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자장의 신념과 행동은 훗날 선배 자공이 “자장은 공로와 지위를 자랑하지 않고 사람을 동등하게 여겨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다”라고 평하고, 공자가“민중을 아끼는 마음이야말로 군자의 인(仁)”(<공자가어> 제자행②)이라고 화답하게 할 정도였다.
자장은 확신과 열정이 지나쳐서 자기중심적인 엘리트주의자, 전체보다 개인적 야망이 앞서는 출세주의자로 비칠 때가 많았다. 자유(子游. 오나라 출신으로 공문십철의 한 사람이다)가 “내 친구 자장은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지만, 인자함이 부족하다”(‘자장’편 15장③)고 걱정한 것도, 공자 사후 학통 계승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 증자(曾子)가 “자장은 자긍심이 높아 어디서나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더불어 인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자장’편 16장④)고 평가한 것도 이런 일면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어느 시대에서나 머리 좋고 야심만만한 젊은이에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일 것이다. 공자도 자장이 지나친 이념성과 도덕적 우월감으로 인해 동료들과 불화하는 것(師能莊而不能同. <공자가어> ‘육본’편⑤)을 늘 염려했다. 공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장에게 군자의 자질을 가진 자일수록 더욱 자신을 성찰하고 쉼 없이 인격을 도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 중에서
3. 군자와 리더
자장이 스승에게 주로 던진 질문은 리더의 덕목에 관한 것이었다. 성실·충성·청렴·능력이었다. 자장은 이 중에서 한 가지만 가져도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겼다. 젊은 자장은 자신의 빠른 머리를 이용해 당장 세상에서 써먹을 수 있는 지식과 요령을 습득하는 것이 효율적인 공부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름길을 찾는 것이지 성실한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질이 이미 훌륭한데 굳이 옛 성현의 가르침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까?”
“굳이 나쁜 짓에 물들지는 않겠지만, 격이 높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는 어렵지 않겠니?”(子張問善人之道 子曰 不踐迹 亦不入於室.‘선진’편 19장⑥)
소년 제자와 노인 스승의 문답은 종종 이런 식이었다. 자질이 좋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자질이 훌륭해도 선인지도(善人之道)를 배워서 갈고닦지 않으면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없는 법이란다.
“지도자의 명석함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마치 물이 스며들 듯 은근히 남을 헐뜯는 말과 살을 도려내는 듯한 절박한 하소연이라도 진실을 간파해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명철할 뿐만 아니라,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안연’편 6장⑦)
사야, 훌륭한 리더는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교묘하게 남을 중상모략하는 말에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험담에 치우쳐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것은 리더의 중대한 실책이다. 또한 울며불며 매달리는 호소가 아무리 절절해도 그 안의 진실만큼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좋은 귀’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가 리더의 덕목에 앞서 군자의 덕목을 누차 강조하자, 자장은 총체적인 덕목으로서 인(仁)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인이란 무엇입니까?”
“다음의 다섯 가지를 세상에 실현시킨다면 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입니까?”
“공손함·너그러움·신의·민첩함·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남이 업신여기지 못하고, 너그러우면 대중을 얻고, 신의가 있으면 사람들이 의지하고, 민첩하면 업적을 쌓고, 은혜로우면 아랫사람이 자발적으로 따른다는 것이다.(恭寬信敏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양화’편 6장⑧)
4. 오미(五美)와 사악(四惡)
어느 날 자장은 스승에게 단독으로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잡았다. 이때 공자는 고희를 넘긴 뒤였으니, 자장이 스물서너 살 무렵이었다. 자장은 나를 따로 불러 큰 허리띠 하나를 내놓으며 부탁했다.
“이생. 오늘은 내 곁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한 자도 빠뜨리지 말고 적어주시구려.”
자장은 일찍이 자기 허리띠에 선생님의 말씀을 직접 기록한 적이 있었다. 자장이 이때의 감동을 기념하고, 그때처럼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특별히 별도의 비단 허리띠를 준비한 것이다.
자장은 언젠가 공자에게 사람이 출세해 뜻을 펼칠 수 있는 길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가르침을 주셨다. “말을 성실하고 신의 있게 하고, 행동을 돈독히 하고 공손하게 하면 비록 야만의 나라에서도 뜻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그렇지 못하면 자기 마을에서조차 뜻을 펼칠 수 없다. 서 있을 때나 수레를 탔을 때나 성실·신의·돈독·공손, 이 네 단어가 항상 눈앞에 어른거릴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뜻을 펼칠 수 있다.” 자장이 잊어버릴까 두려워 급히 자기 허리띠에 말씀을 기록했다.(‘위령공’편 5장, <사기> ‘공자세가’⑨)
“선생님, 저는 벼슬도 벼슬이지만,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라는 평판을 얻고 싶습니다.”
자장은 어떻게 해야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공자가 자장을 가까이 불러 말했다.
“사야, 지금 내가 말하는 다섯 가지 미덕을 진심으로 실천하고, 네 가지 악덕을 멀리한다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할 수 있겠느냐?”
“최선을 다해 가르침을 받아 평생토록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다섯 가지 미덕이란 첫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되 낭비함이 없어야 한다. 둘째,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원망을 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셋째, 마땅히 목표 실현을 추구하되 개인적인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넷째,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함을 잃지 않되 교만하면 안 된다. 다섯째, 위엄있되 사납지 않아야 한다.”(子曰 君子 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자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선생님. 참으로 쉬운 일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씩 풀어서 설명해주십시오. 은혜를 베풀되 낭비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야, 생각해보아라. 먼저 사람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 그것을 이뤄주는데 힘을 집중하면 낭비가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은혜를 베풂에 있어 사람들이 은혜의 참뜻을 모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지도자가 은혜를 베푸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일을 시키면서 원망을 사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꼭 필요한 일을 필요한 시기에 하도록 지시하고 일을 배치하면 누가 그것을 원망하겠느냐?”
“목표 달성을 독려하는 것이 자기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겠습니까?”
“누가 보더라도 리더로서 해야 할 마땅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합당한 방법으로 추구해 실현한다면 그것이 어찌 개인적인 탐욕으로 폄하되겠느냐?”
“어떻게 해야 태연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은 것입니까?”
“중대하다 해서 신중하고, 사소하다 해서 자만하는 모습이어선 안 된다. 군자는 보는 사람이 많든 적든, 맡은 일이 크든 작든 한결같이 성실해야 한다. 이것을 태연하면서도 교만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위엄이 넘치면서도 사납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군자는 늘 용모를 단정히 하고, 표정은 밝은 가운데 진지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당당하고 의연함을 보고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엄이 넘치면서도 사납지 않은 모습이 아니겠느냐?”
자장은 내가 잘 기록하는지 돌아보고 다시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도자가 물리쳐야 할 네 가지 악덕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사야, 잘 듣거라. 군자가 남을 부리고 이끄는 위치에 있을 때 해서는 안 될 행동은 다음과 같으니라.
첫째,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채, 엄벌하는 것이다. 이를 리더의 잔학(虐)이라 한다. 오만하고 관용이 부족해 아랫사람을 잔인하게 다루는 자이다.
둘째, 일을 실행함에 있어 경계할 점을 미리 일러주지 않고 성공만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리더의 횡포(暴)라 한다. 일의 핵심은 전수해주지 않으면서 잘못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부류이다.
셋째, 지시는 늦게 하고 일의 달성은 사납게 독촉하는 것이다. 이것을 리더의 도둑질(賊)이라 한다. 일이 안 되면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다행히 결과가 좋으면 자기의 공으로 삼으니 도적이나 다름없다.
넷째,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놓고 온갖 생색을 내며 주는 것이다. 이런 자는 리더가 아니라 창고지기(유사有司)에 불과하다. 마치 자신이 포상을 사적으로 베푸는 것인 양 인색하게 굴고, 줄 때에도 줄 듯 말 듯하면서 아랫사람의 마음을 시험하며 공(公)으로 사(私)를 확인하려 드는 자이니, 그 그릇의 크기가 소소한 소모품 창고열쇠를 흔들며 으스대는 자의 크기에 지나지 않는다.”(子曰 不敎而殺 謂之虐 不戒視成 謂之暴 慢令致期 謂之賊 猶之與人也 出納之吝 謂之有司. 이상 ‘요왈’편 2장⑩)
5. 명성과 통달
자장은 감격했다.‘아, 오미(五美)와 사악(四惡)이야말로 벼슬하려는 군자가 반드시 새겨야 할 가르침이 아닌가!’ 자장이 다시 공자에게 물었다.
“세월이 흘러도 이 말씀의 취지는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백 년 후의 사회규범이나 도덕이 어떻게 변할지 미리 알 수 있습니까?”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므로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미래의 모습도 짐작할 수 있겠지. 은나라는 하나라의 규범과 도덕을 기초로 변화를 겪었고, 주나라는 은나라의 것을 더욱 진보시켰다. 물론 그 과정에서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했지만, 뼈대는 변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면, 수천 년 후의 사회라도 그 규범과 도덕의 큰 줄기는 알 수 있는 것이다.”(‘위정’편 23장⑪)
공자는 자장의 공부가 일취월장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자존의식이 강한 그가 자칫 허명을 추구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장은 공부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세상사에 통달한 경지가 궁금해졌다. 통달한 선비야말로 자신이 도달하고 이뤄야 할 성공모델처럼 여겨졌다. 스물다섯 살 자장이 일흔셋의 공자에게 물었다.
“선비가 되어 어떤 경지를 통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되물었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온 나라 집집마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명성을 얻은 것이지, 통달한 것이 아니다. 무릇 통달했다는 것은 마음이 질박하며 곧고, 정의를 사랑하며, 남의 말을 자세히 듣고 처지를 잘 살피며,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회에서나 집에서나 모든 일에 막힘이 없어 이를 통달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명성이란 겉으로만 인(仁)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안연’편 20장⑫)
사야, 너는 명성을 원하는 것이냐? 통달을 원하는 것이냐?
6. 종(終)과 사(死)
자장은 일평생 자신이 군자를 지향하는 선비라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졌다. 만약 붓을 든 선비가 되지 않았다면 검을 든 협객이 되어 강호의 정의를 추구할 사람이었다. 훗날 자장의 유파가 공자 학파 중 가장 의협의 성격이 짙었던 것도 자장이란 사람의 개인 성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선비는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재물을 얻을 때는 정당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제사 지낼 때는 정성을 다하고, 상을 당했을 때는 진심으로 슬퍼한다. 이 네 가지를 실천한다면 선비의 자격이 있다.”(子張曰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자장’편 1장⑬)
훗날 자장이 스스로 정의한 선비상(像)이었다.
그의 이런 넘치는 자부심은 한편으로 내면의 성찰보다 외면의 수식에 치중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하다는 평을 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그는 죽을 때 자신이 군자로 죽는다는 사실을 자신뿐 아니라 남들도 알아주기 원했다.‘자장, 그 친구는 적어도 허명을 쫓지는 않았어…’
만년의 선생님께서 죽음을 예감하시고 남긴 말씀을 자장은 평생토록 가슴에 간직했다. “군자는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이름을 남기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위령공’편 19장⑭)
훗날 자장이 임종에 이르러 아들에게 한 말이 중원에 회자되었다.
“옛말에 군자의 죽음을 종(終)이라 하고 소인의 죽음을 사(死)라고 한다지?”
“나는 오늘에야 겨우 종(終)의 경지에 가까워진 것일까….” (君子曰終 小人曰死. 吾今日其庶幾乎. <예기> ‘단궁’편⑮)
소인은 몸이 죽으면 존재도 잊혀지지만 무릇 군자는 이름을 남기는 자이니, 육신의 죽음은 사업(命)을 마치고 가는 것일 뿐, 존재(名)의 소멸은 아니어야 한다….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드리우고 싶은 바람은 자장뿐 아니라 무릇 군자라면 모두 죽는 그 순간까지 마땅히 간구하는 바이다.
“선생님, 저의 죽음은 종(終)입니까?”
“아, 부디 그렇다고 말씀해주십시오….”
子張問政 子曰 居之無倦 行之以忠.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명심하라. 이상의 모든 말을 합쳐도 성실만한 것이 없다.
자장이 다스림에 대해 묻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늘 정도(正道)를 생각하며, 맡은 바 일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라.(‘안연’편 14장<16>)
<원문 보기>
*<논어명장면>은 소설 형식을 취하다 보니 글쓴 이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논어를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글쓴 이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돕기 위해 원문을 글 말미에 소개한다. 소설 이상의 깊이 있는 논어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