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발의 성자'고 이현필 선생이 설립한 벽제 동광원 방문 때. 사진 조윤하 기독교청년아카데미 사무국장 제공
한국의 여러 공동체와 수도원, 템플스테이, 농촌체험마을 등을 침묵수련 겸해 다닌 적이 있다. 말없이 다닌 것이라 사람들과 얘기 나누고 사귀지는 못했지만, 말로 얻을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기도에 집중하는 것도 좋았고, 하늘땅 느끼며 말없이 걷는 것도 나를 새롭게 해 주었다. 다니면서 말을 할 필요 없게 미리 준비하고 떠났지만, 산골을 다니는 버스도 드물고 차 시간도 미리 알아둔 것과 달라 난처한 일을 자주 겪었다.
입 가리개를 하고 꼭 필요한 소통은 쪽지 글로 하다 보니, 말 못하는 사람인 줄 알고 도와주려는 분도 있었다. 말은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니, 오히려 말을 더 걸어오기도 한다. 조용히 홀로 다니며 기도하는 데 방해되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고마운 마음이다.
며칠 씻지 못한 채 말도 하지 않고 다니다 보면, 괜한 경계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빠, 저 아저씨 도와드려야하지 않아?” 하는 아이도 있다. 눈빛은 잔뜩 경계하면서. 어떤 애기는 나를 한참 봐서, 나도 웃어주었더니, 무섭다며 운다.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일도 생기지만, 다니면서 만난 많은 사건들은 그것대로 다 좋았다. 방문한 곳에서도 말없이 기도하며 많은 걸 보고 느꼈다.
벽제 동광원. 사진 조윤하 기독교청년아카데미 사무국장 제공
알려진 것과 실제 모습 간에 차이가 큰 만큼 위태롭다. 프로그램이 잘 갖춰지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때부터 위험이 시작된다. 정부나 지자체, 기업 후원을 받아 큰 건물을 짓고 화려한 선전을 한 만큼 그것이 오히려 자기 생기를 짓누르는 짐이 되는 곳들이 많았다. 마을 지원 사업을 많이 유치해 잘 알려진 분은 이제 정작 본인은 그 마을에서 살기 어려워졌다고 하소연 한다. 마을에 돈이 많이 들어오고 유명해지면서 오히려 위기가 찾아 왔다고 한다. 돈과 명예 때문에 관계가 뒤틀어지고, 지원금으로 세운 건물은 운영이 어려워 방치되는 곳이 많았다. 실제 삶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돈 벌이를 위한 체험이나 교육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삶과 사람은 사라지고 돈만 남은 거다. 생태, 영성, 마을, 힐링이라는 말들이 생기 없이 포장만 남은 상품이 된 현장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래도 곳곳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희망을 보았다. 깊은 산골 마을에서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백발노인들을 통해 역사를 잇는 희망을 보았다. 며칠 동안 하루 종일 앉아 성경을 읽으며 생명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을 통해 새 힘을 느꼈다. 자연과 벗하여 단순 소박하게 살며, 가난하고 애통한 생명을 서로 치유하는 이들을 보며 실현된 희망을 보았다. 믿고 고백한 대로 살기위해 힘쓰는 젊은이들을 기억하며 행복했다. 생명평화의 씨알은 이 땅 곳곳에서 새 문명을 잉태하고 있다. 진실이 결코 침몰하지 않는 것처럼, 희망도 침몰 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