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 덕분에 인구가 너무나 급격하고 빠르게 늘었기 때문에, 수렵과 채집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농경사회는 하나도 없었다. 농업으로의 이행이 일어나기 전인 기원전 10000년경 지구에는 5백만~8백만 명의 방랑하는 수렵채집인이 살고 있었다. 기원후 1세기가 되자 수렵채집인은 1백만~2백만 명 밖에 남지 않았으나(주로 호주, 미 대륙, 아프리카에 있었다), 같은 시기 농부들의 숫자는 2억5천만 명으로 수렵채집인을 압도했다.
농부 대다수는 영구 정착지에 살고 있었고, 방랑하는 양치기 부족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곳에 정착을 하면서 사람들의 세력권은 대부분 극적으로 좁아졌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수십, 수백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영토에서 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들에게 '본거지'란 언덕과 시내, 숲과 열린 하늘을 포함하는 땅 전체를 말했다. 하지만 농부는 종일 작은 밭이나 과수원에서 일했고, 가정생활은 나무나 돌, 진흙으로 지어져 면적이 몇십 제곱미터에 불과한 비좁은 구조물, 즉 집에서 이뤄졌다. 전형적인 농부는 이 구조물에 매우 강한 애착을 느꼈다. 이것은 건축학뿐 아니라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커다란 혁명이었다. 이리하여 '내 집'에 대한 집착과 이웃으로부터의 분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기중심적이 된 존재의 심리적 특징이 되었다.
새로운 농업 영토는 고대 수렵채집인의 것보다 훨씬 더 좁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인공적이었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주변 자연환경에서 힘을 떼어낸 인공적인 섬에 살았다. 집 주위로는 강력한 요새를 구축했다. 지구 표면은 약 5억1천만 제곱킬로미터인데 이 중 1억5500만 제곱킬로미터가 육지다. 비교적 최근에 해당하는 기원후 1400년까지만 해도 압도적 다수의 농부들은 본인들이 기르는 동식물과 함께 모두 1100만 제곱킬로미터, 즉 지표면의 2퍼센트에 불과한 좁은 지역에 몰려 살았다. 다른 지역은 모두 너무 춥거나 덥거나 건조하거나 습하거나 해서 경작에 맞지 않았다. 지표면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좁디좁은 지역이 이후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공 섬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쉽게 옮길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사람들은 한 장소에 매였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 펴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