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아이들,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며 사는 꿈은 도시인이라면 한번쯤은 꾸어봤을게다. 하지만 대다수는 꿈만 꾸고 만다. 그런데 이 꿈을 현실화한 사람들이 있다. 도시의 직장을 떠나지도 않고서 말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산동 신흥마을엔 이렇게 꿩도 잡고, 매도 잡은 이들이 살고 있다. 본량마을공동체네트워크(본마공) 사람들이다.
광주송정역에서 차로 영광통을 빠져나와 10여분만에 본량초등학교 뒷편으로 돌아가니 평화로운 시골마을이 숨어있다. 시내에서 이토록 가까운 곳에 어떻게 오지 산골같은 느낌의 이런 마을이 있었을까. 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멋들어진 집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퇴락한 시골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흥하는’(신흥) 마을이 틀림 없다.
하지만 이 마을도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폐가가 늘어가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광산군’이 광주광역시에 편입되기 전 광산군 본량면이었던 이 지역은 용진산을 등에 업고, 앞엔 너른 들판과 황룡강, 어등산을 마주한 천혜의 길지다. 그런데도 광산구 유일의 소외지대로 남아 본량동초· 본량서초, 본량중학교가 폐교되고, 유일하게 남은 본량초등학교마저 학생수가 30여명 밖에 안돼 폐교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본량초교는 이제 학생수가 80여명으로 늘었다. 본마공 11가구 41명이 이주해오면서 아이들이 늘어난데다, 소문을 듣고 광주시내에서도 전원속 본량초로 아이들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난 때문이다.
신흥마을은 새로온 11가구가 기존마을 30가구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이곳 역시 원주민은 대부분이 노인들이지만 30~40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며 천지개벽했다.
지난 20일 마을 골목에 들어서니 사람들은 이웃과 마주칠 때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길거리에 선채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여자 아이는 이웃집 언니가 다가오자 이산가족을 상봉한 것마냥 얼싸안고 얼굴을 부빈다.
본마공은 광주시내에서 육아를 위한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햇살가득’공동육아를 하던 이들이 모태가 되었다. 조합원들이 광주시내에 있던 어린이집을 본량 송치마을에 옮겨 시작한게 2006년이었다. 그래서 신흥마을로 이주하기 전에 이미 햇살가득을 마친 아이들을 본량초등학교로 보낸 회원들이 있았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공동체마을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선구자인 박수미씨네가 두아이를 데리고 2009년 12월 본량초교 뒤인 이 마을에 들어올 때까지만도 이런 공동체마을이 될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어 수미씨 집을 와본 햇살가득 사무국장 김은정씨네가 2011년에 들어오고, 햇살가득 교사였던 최혜영씨네와 이겨레씨 가족이 뒤를 이었다. 이렇게 네집이 되면서부터 공동체에 대한 책도 읽고, 여기저기 공동체마을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땅 200평을 빌려 농약을 사용하지않고 논농사를 짓다가 모두 몸살에 걸려 공동체가 초장에 와해될 뻔 했다”며 웃음으로 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네 어르신들에게 농사를 배우면서 어르신들과 한결 가까워졌다. 박힌돌과 굴러온 돌이 함께 해보자는 돌돌문화제도 하고, 마을정자에서 음악회도 했다. 복날이 되면 닭백숙을 해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대접도 했다.
2015년엔 건강사회치과의사회광주지회 대표인 이금호씨와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던 김지연씨 부부가 들어왔고, 이씨의 친구인 박진근씨네가 잇따라 정착했다. 이렇게 여섯집까지는 각자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그런데 그 다음해 공동체건축을 하는 코비즈 정상오 대표가 여러집이 마을공동체 집을 지어 살아보면 어떠냐고 제안하자 소문을 들은 다섯집이 공동으로 마을 한가운데 논 832평을 사서 함께 집을 지었다. 2016년 마지막날 송성주씨네가 입주하며 독수리5형제가 똬리를 틀었다. 노조전임자는 송씨는 “나이 들어서는 이웃을 사귀기가 더 어려워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좋은 이웃들과 어울리기 위해 들어왔다”고 했다.
본마공에선 초등학생은 핸드폰 사용을 못하게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할게 너무나 많다. 봄이면 뒷산에 지천인 진달래꽃을 꺾으러가고, 눈이 쌓이면 천연 눈썰매를 탄다. 봄 여름엔 마당에 텐트를 쳐달래서 유성우와 별자리도 관찰한다. 본마공은 공무원, 교사, 의사, 세무사, 강사, 사회활동가 등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거의 맞벌이다. 그런데도 아이들끼리 신나서 함께 노니, 왠지 어른들은 자유롭고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마을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갈때도 어른 둘이 도맡아 데려가면 된다. 아이들은 온마을이 자기집인양 내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자기 집에서 저녁을 먹고도 친구집에 가서 또 저녁을 먹는 바람에 돼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어른들은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최근엔 햇살가득 어린이집부터 본량초교까지 쭉 함께 해온 선우, 승준, 주영이, 희아네 넷의 가족들끼리 베트남 다낭 여행을 다녀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우리가 ‘햇살가득’ 어린이집도 만들고, 본마공도 만들어 너희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줬으니, 너희는 나중에 우리를 위해 ‘어른이집’을 만들어줘야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않은 수혜자다. 누가 해외여행 갔다가 술을 사왔다고 해도, 누가 외출했다가 굴을 사왔다고 밴드에 올리면 즉각 집에 있는 맥주나 포도주나 반찬 한두개를 들고 모인다. 그러면 즉석파티가 시작된다.
인근 마을 출신인 임동규 선생에 의해 전해진 민족무예 경당을 아이들이 배우는 일요일 저녁시간이 되면, 어른들만의 파티가 빠지지않는다. 여름 밤에만 진영이네 하얀벽을 향해 빔프로젝트를 쏘아 잔디밭에서 영화를 보며 한잔을 즐긴다. 광주시청 공무원 정승균 이겨레씨 부부는 “15일간 외국 여행을 다닐때도 마을벚꽃을 즐기는 이웃들을 보면서 우리만 빼놓고 자기들끼만 즐겁게 놀고있다는 생각에 어서 빨리 돌아오고만 싶었다”고 했다. 본마공 사람들은 옆집에 모두 갱엿을 붙여놓은 것만 같다. 그래서 퇴근해 마을에 들어서면 어느 집에 불이 켜졌는지부터 눈이 간다고 했다. 어서 빨리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고 놀고 싶어서다. 이날도 수미씨 생일이라며 송정시장 부근에 카페를 빌려서 공연을 곁들인 파티를 했다. 놀자판이다.
이들이 기쁨만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2년전 추석 하루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단비 엄마 김은정씨를 기리고 추모하며 슬픔을 나누는 것도 공동의 몫이다.
본마공은 올해 사랑방 구실을 할 커뮤니티센터를 짓는다. 그 안에 마을도서관을 만들지, 카페와 분식집을 할지, 문화예술인들이 머물 게스트하우스도 할까. 꿈만 꾸는데서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놀 궁리가 매일 매일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