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중용>(中庸) 제1장에서 감정이 존재와 우주의 알맹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의 알맹이는 우주의 질서이며 만물의 모태라고 합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일어나는 것을 알맹이라 하며 일어나면서 다 꼭 맞으면 좋다고 한다. 그 알맹이라는 것이 세상의 큰 바탕이다. 그 좋다는 것이 세상이 이뤄지는 길이다. 알맹이가 좋다하니 하늘도 땅도 자리잡고 모든 것들이 키워진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아직 일어나는 것(미발, 未發)'이어야 말할 수 있지 '아직 일어나지 아니하는 것'이라면 알 수 없습니다. 감정은 언제나 어디서나 끊임없이 끝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서 아직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타고나는 감정은 끝내 좋아야 성이 차는 것이 진리이며 행복입니다. 감정은 좋지 않으면 끝내 좋도록 배우기 마련입니다. <논어>의 첫 마디가 "배우며 살아가니 기쁠 따름이다"입니다. 공자는 감정이 우주의 알맹이라고 말합니다.
맹자는 어떻습니까. 가여워하고(측은지심,惻隱之心), 다른 사람의 고통을 차마 못 참는 것이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퇴계는 인간의 감정이 이해하며 보살피는 학문과 인간의 감정을 억누르고 몰아가는 학문을 엄밀하게 분간하고 전자를 이발이기수(理發而氣隨之), 후자를 기발이이승(氣發而理乘)이라고 간결하게 천명했습니다.
학문관념은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에는 없었는데 현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유학에는 없었는데 서구철학에서 유입된 문제도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부닥치는 인간사의 초미한 관심사입니다. 학문관념이 올바르면 공부하면 할수록 인간 모두의 행복과 우주의 평화를 도모할 수 있지만 학문관념이 그릇되면 아무리 학문이 출중하다 해도 인간의 행복과 평화는 희소가치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학문관념은 죽은 사람도 되살리지만, 그릇된 학문관념은 산 사람도 죽입니다. 오늘날 지구촌을 장악하고 있는 학문관념은 감정에는 무력하고 속수무책이지만 지구도 폭파시킬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과시하는 학문을 불철주야 연마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정에 주력하며 행복추구 활동을 표방하는 분야들도 전쟁체제를 기반으로 삼고 감정의 참된 자기이해를 뒷전으로 미루고 맙니다. 학문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총력을 쏟아 연마하는 학습 탓에 사람이 못쓰게 됩니다.
학문은 직업이나 직장일 뿐이지, 내 삶을 지켜 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자는 헛도는 겁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겁니다. 학자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면서 '역시 믿지 못할 게 세상이야'그런다면 우리 역시 학문을 잘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감정이 거슬리면 예술도 인문과학도 사회과학도 자연과학도 위험한 학문으로 전락한다는 체험과 자각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명문 대학들은 앞다투어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 감정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첨단과학 장비들을 개발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철두철미하고 정밀한 감정의 데이타라 할지라도, 감정의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정은 밖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퇴계는 감정이 곤두박질치고 걷잡을 수 없을 때 그 이유를 찾아보면 자기 아닌 남들의 일을 자기 감정의 원인인 줄로 잘못 안 경우라고 말합니다. 나와 남을 나누지 않다 보면 서로 서로 다르고 바뀌는 남의 일과 사정을 자기 것이거니 잘못 알기 십상이며 그러기에 감정은 예외 없이 모든 이유를 자신에게 확인하는 자기이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탓도 남 탓도 잘못하기 시작하면 착오와 혼란에 빠집니다.
<다 좋은 세상>(전헌 지음, 어떤책 펴냄)에서
전헌
1942년 태어난 한국사람이고 열여덟 살에 철학 공부에 말을 들였다. 아직 밑도 끝도 없이 재밌게 배우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와 프린스턴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배웠고, 메코믹신학대학원 신학부, 뉴욕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국민대학교 문화교차학과에서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