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간혹 오해를 받습니다. 본심과 달리 업무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얄미운 동료라도 있으면 더 곤혹스럽습니다. 흔히 ‘얌체’라고 하는 부류이지요. 30대 후반의 직장 여성 B씨가 갖고 있는 답답함과 고민은 여기에 있습니다.
“얼마 전 인사고과를 받고난 뒤, 너무 속상했습니다. 나름 묵묵하게 회사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데, 제 동료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더군요. 저는 생색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자기과시를 하는 스타일도 아닙니다. 반면에 그 동료는 윗사람이 동석한 자리에서는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의사 표현도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만이 많고 일도 거칠게 처리합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에게 그 뒷마무리가 돌아올 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피해의식이 생기는군요. 회사가 크지 않았을 때 사장님은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보스였는데, 회사의 덩치가 커지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흐려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기네요.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무서운 표정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저분이 내가 알던 바로 그 사장님 맞나?’ 하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경직되어가는 회사의 조직 문화, 이럴 때 저는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을까요?”
이 하소연을 들으니 ‘작은 충성을 행하는 것이 곧 큰 충성의 적’이라던 중국 고사가 떠오릅니다. 어지럽던 춘추전국시대의 한비자가 꼬집은 현실이었습니다. 국가나 보스에게 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당장 자기에게 돌아올 피해가 두려워 달콤함을 제공하는 행태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가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인의 사회생활은 2000여 년 전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하다보면 ‘사내 정치’라는 현상이 생기고 왜곡된 신상필벌(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뜻)로도 이어집니다. 그 결과 직장마다 독특한 ‘기업 문화’가 생깁니다. 곰곰이 되돌아보면 저 역시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가끔 평가에 착각이나 실수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리더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대부분 큰 바위가 아니라 작은 돌부리입니다. 큰 바위는 늘 조심하기에 부딪힐 염려는 거의 없는 데 반해, 작은 돌부리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걸려 넘어집니다. 달콤한 말에 현혹되는 것입니다. 아부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은 내가 먹을 테니, 설거지는 네가 하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리더에게 그러한 분별력이 중요하다면, 팔로어(리더를 보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뭐가 바뀌어야 할까요? 업무적으로 소극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 데 대해서는 이쪽에서도 어딘가 미진했던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저는 조직의 말단에도 있었고, 조직을 이끄는 자리에도 서보았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이 바뀌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던 것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상대를 알아야 해답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먼저 ‘리액션’을 아부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있으면 그에 따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리액션입니다. 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때는 그 나름 이유가 있고 고민도 있습니다. 묵묵부답으로 있으면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영혼 없는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을 감별해내야 하는 것은 리더의 몫입니다.
반면에 팔로어인 이쪽에서는 리더의 고민을 함께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적극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의한다는 말은 유보하더라도 최소한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는 의사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질문도 반응도 없을 때, 리더는 외로워집니다. 그 자리를 아부꾼이 비집고 들어갑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앨버트 머레이비언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7%, 보디랭기지와 청각 등 나머지 요소가 압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표정을 통해 또는 눈길을 통해서 얼마든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리액션은 상대방의 입장 배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대가 사장이건, 부장이건, 혹은 친구이건, 업무상 아랫사람이건, 누구건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에 상사가 묵묵부답이면 기분이 좋던가요? 리액션은 배려입니다.
다음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상사의 의견과 달리 말하는 것은 물론 용기가 필요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일리 있지만 그게 최선은 아닙니다. 좋은 약을 복용하게 하려면 쓴맛을 줄여줘야 합니다. 내 생각이 그의 귀에 들어가게 하려면 먼저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니까요. ‘노’(No)라는 말은 거북합니다. 열심히 고민하는 흔적을 보인 뒤 거절해도 늦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오히려 미안해하고 더 존중합니다. 바로 ‘아름다운 거절’입니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언제 나서야 하고 언제 멈춰야 할까요? 시간으로 정의 내리기 어렵기에 수학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습니다. 직장 생활이란 타이밍의 예술이기도 합니다. 너무 빨리 나서면 일이 다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직장인의 진가는 타이밍에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왕 할 일이라면 먼저 손을 드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못해 떠밀려서 한다는 느낌이 들면 인식도 좋지 않고 업무 의욕도 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줬다면 이전보다 타이밍을 반 박자 빠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또 다른 고민을 해봐야겠죠. 답답한가요? 먼저 손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요즘 유행어를 외쳐보는 겁니다,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