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성복사에서 석조 관음상을 살펴보고 있는 현장 스님
» 일본 성복사에 관음상이 조성된 유래를 설명하고있는 비문
관세음보살이 아기를 안고 있으면 송자관음이라 부른다.아들이없고 자식이 없는사람들이 관음에게 빌면 자식을 갖게 된다는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따라 조성된 관음이다.
지장보살이 아기를 안고 있으면 수자지장이라 부른다.수자지장은 낙태유산아의 영혼을 구제해주는 보살이다.
송자관음은 중국불교에서 생겨났고 수자지장은 일본불교에서 생겨난 불교신앙이다.
그런데 아래의 관음상은 우리나라 명성황후가 죽어서 다시 환생한 모습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명성황후가 관음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그 내력을 이야기한다.
일본 후꾸오까에는 일본 선종의 최초사원인 성복사가 있다.송나라에 유학한 영서선사가 귀국하여 창건한 임제종의 최초사찰이다.
성복사의 부속암자인 셋신원에는 명성황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조성했다는 석조관음상이 계신다.
오른손에는 연꽃봉오리를 들고 왼손에는 동자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1895년 10월8일 새벽5시30분 조선의 왕궁 경복궁 내전에 일본공사 미우라의 지휘로 48명의 낭인들이 칼을 뽑아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고종황제를 위협하고 건청궁 옥호루를 향해 달려갔다.
칼을 든 낭인들은 한 여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두번째 낭인의 칼이 그 여인의 가슴을 파고 들자 그녀는 부릅뜬 눈으로 상대방을 쳐다보며 숨을 거둔다.
이른 새벽에 일본 낭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 여인의 이름은 여흥민씨 민자영. 바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이다.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다.명성황후 살해계획의 작전명은 여우사냥이었다.
그때 황후의 가슴을 파고든 칼이 후쿠오카의 쿠시다신사에 보존되어 있다.전체 길이120센치 칼날길이 90센치 칼집에는 선명하게 글귀가 새겨져 있다.ᆢ늙은 여우를 단숨에 베었다.
명성황후는 일본의 늙은여우가 되어 비극의 새벽에 처참하게 살해되었다.시신은 바로 불태워 지고 한줌의 뼛가루는 향원정의 연못에 뿌려졌다.
그 후 황후의 가슴에 칼을 꽃은 사무라이 토오 가쓰야키는 죽어가면서 자기를 노려보던 황후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었다.
꿈에서도 악몽에 시달리고 원한에 찬 황후의 눈빛에 고통받았다.
그는 할머니가 다니던 성복사 셋신원을 찿아와 주지스님께 칼을 바치고 살생의 업보에서 벗어날수 있는 길을 물었다.
스님이 살생한 칼은 사원에 둘 수 없으니 신사에 맡기고 명성황후의 모습을 본딴 관음상을 조성해 모시기를 권하였다.저승에서라도 이승의 원한을 풀고 고통받는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 관음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기를 권하였다.
이와 같은 연유로 일본 최초의 선종사원 성복사 셋신원에는 명성황후의 모습을 형상화한 자안관음상이 모셔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