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부터 선불교대학을 여는 공생선원장 무각스님
선(禪)은 곧바로 붓다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따라서 선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 만큼이나 쉽다고 했다. 하지만 출가자들도 그 맛을 보지못해 평생을 헤맬만큼 어렵다도 한다. 그 선(禪)만을 2년간 집중적으로 배우는 선불교대학이 생겼다. 불교대학은 전국에 수백곳이 넘고, 선불교대학이란 이름을 내세운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불교대학 교과목에 선과목과 참선을 일부 첨가한 정도였다. 하지만 간화선 위주의 정통선공부를 표방한 선불교대학을 연 공생선원장 무각스님(60)을 서울 도봉구 도봉로 575 삼환프라자 7층 공생선원에서 19일 만났다.
“선을 하는데는 종교라는 말도, 불교라는 말도 필요 없다. 종교인일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대자유와 ‘완전한 행복’이다. 이를 불교적 용어로 바꾸면 해탈과 열반이지만, 그 조차 군더더기다. 선은 모든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오직 대자유와 ‘완전한 행복’에만 오로지 매진하는 것이다.”
창밖으로 도봉산 장군봉에 펼쳐져있는 공생선원에서 그는 “선은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2000년 조계사에서 처음으로 참선반을 개설해 초기 10여명에 불과했던 참여자를 450명까지 늘린데 이어 2002년 공생선원을 열어 서울 외곽임에도 매주 100명 가까운 이들이 참선에 함께하는 선도량을 일군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무각 스님은 법랍 15년이상된 스님들의 공부모임인 경전연구회를 7년간 이끌었다. 경전연구회는 2005년부터 10년간 대표적인 선 스승들인 고우·무비·지안·통광·혜거 스님등을 초청해 절차탁마해 중진 스님들의 수행·공부 바람을 일으켰다. 무각 스님은 또 대부분의 도심포교당이 기도와 기복신앙 위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공생선원에서 출가자도 공부하기 쉽지않은 <선요>, <임제록>과 <화엄경>등을 강의해왔다. 지난해엔 조계종 포교원이 일반 대중들을 위해 만들려는 참선 입문프로그램 교재를 만드는 주요 위원으로 참석할만큼 조계종 내 대표적인 ‘공부파’다.
» 참선 정진하는 공생선원 사람들
» 무각스님의 선어록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그는 공부의 공자도 모르고 인생을 마감할뻔한 청춘이었다. 전남 무안에서 경찰공무원인 부친에게서 4형제의 둘째로 태어나는 그는 공부 잘해 원하는 대학에 간 형제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따라서 대학진학도 남얘기일 뿐이었다. 그는 “빛하나 없는 뿌연 구름으로 뒤덮힌 하늘이었다”고 청춘시절을 회고했다.그러다 서점에서 우연히 불교책을 읽는 순간 ‘구름 틈새로 내리쬐는 햇볕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 뒤 불서 백여권을 읽었다. 처음 해보는 독서다운 독서였다. 그제서야 ‘동국대 불교학과’ 입학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친구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나이였다. 하지만 기초실력이 너무 바닥이어서 대학진학 꿈꾸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언듯 본 햇살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강렬한 욕구로 얼마나 몰입했던지, 그는 믿기지않는 성적을 얻어 부모로부터 한의대에 진학하라는 강권을 받기도 했다.
공생선원 앞엔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가 이렇게 ‘살아있는 체험’을 우선시한데는 자신의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승을 찾기 위해서도 직접 부딪혔다. 전국으로 이름께나 알려진 스님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래서 그가 택한 스승이 한마음선원을 설립한 비구니 대행스님(1927~2012)였다. 하지만 아무리 스승이 지고한 진리를 직설적으로 가르쳐줘도 자기 체험이 없으면 ‘남의 보물’일 뿐이었다. 그는 출가 이후 오히려 온갖 갈등이 밀려들어 이를 잠재우기 위해 6개월 내내 절 계단만을 닦았다고 한다. 그러던중 부처님께 3배를 올리다 절을 받는 이와 절 하는 이가 둘이 아님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출가 한지 오래되었다고 수행이 되는게 아니라 초창기 발심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요즘처럼 출가자 하나 나오기기 하늘의 별따기여서 군대의 훈련병에 해당하는 행자기간을 옛날 3년쯤에서 수개월로 줄여주는게 현 풍토임에도 그가 두 상좌(제자)들에게 “갈테면 가라”며 3년간 행자훈련을 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공생선원에서는 그의 두 상좌말고도 8명의 비구니 출가자가 나와 ‘발심사관학교’로 자리잡았다.
» 공생선원 참선반 참가자들이 무각 스님과 함께 참선하고 있다.
그는 출가 이후 수행과 공부와 대중교화를 함께 하느라 달려왔다. 그는 “1990년대 미국 뉴욕과 오하이오의 한마음선원에서 5년을 보냈는데, 그 가운데 한적한 오하이오 웰팅턴의 한적한 절에서 보낸 2년반이 특히 좋았다”고 했다. 절 마당이 학교 운동장처럼 넓은데도 신자들이 일요일 외엔 거의 오지않아 홀로 토굴생활같은 적막함 속에서 동식물들과도 교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야생너구리와 들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도량에서 살아가는 개미와 뱀까지도 교감이 되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날 법당에서 부처님쪽으로 엎드린 자세로 좌복에서 죽어있는 쥐를 잊지 못한다.
“그 전에 절에서 쥐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쥐가 죽어있었다. 쥐는 윤기가 나서 늙거나 병들어 죽지않은 것 같았다. 학생들이 그 쥐를 보더니 ‘하프 스마일링’이라며 반쯤 웃고 있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놀라워 뒷마당에 잘 묻어주었다. 쥐를 묻으면서 ‘네가 나보다 낫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이 몸을 못벗는데, 너는 무명의 껍데기를 웃으면서 벗어버렸구나’라고 했다. 쥐를 묻고 나서 밤이 되어도 그 쥐의 모습이 놀랍고, ‘저 하찮은 미물도 자유자재로 몸을 벗는데 나의 수행력은 어떤가’라는 생각에 마음에 착잡해서 오가다가 쥐 무덤을 향해 불현듯 질문이 나왔다. ‘너는 지금 어디 있는가?’ 그러자 그 자리에서 새파란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깜짝 놀랐다. 아, 죽지않았다는 것이구나. 무명의 껍데기만 벗었지 영원하다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선불교대학은 오는 26일 개강해 입문과정 1년반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2시간, 심화과정 1년반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두시간 강의와 참선으로 진행된다. 강의는 무각 스님과 조계사 선림원장을 지낸 남양주 성관사 주지 성진 스님, 잠실 불광사 교무인 석두 스님, 불교인재원의 박희승 교수가 맡는다. 무각 스님은 “선불교대학의 커리큘럼을 전국의 어느 사찰에서나 활용하게 해 누구나 햇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