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감각을 잃지 않고 살려고 꽤나 노력을 하는 편이고 또 늘 젊게 산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다. 나이도 나이지만 30여년을 수녀원 울타리에서 살다보니 세상의 것들에 둔해지기 마련이다. 그 중에 가장 빨리 변해 버리는 대중 매체의 움직임이나 청소년들의 은밀한 언어(?)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떤 청소년이 요즘은 ‘엄빠 가족’이 많아요 라고 하는 데 무슨 말인가 했더니 편부나 편모, 즉 한부모 가정을 지칭하는 신조어였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도 그 ‘엄빠 가정’이 참으로 많다.
늘 내가 만나고 있는 사별 가족들, 남편을 잃은 아내,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 이들이 ‘엄빠’족이었다. 이들은 어린 자녀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는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반면 아빠를 일찍 잃은 아이들을 위해서 엄마는 이제 아빠의 몫까지 해내야 하는 것이다. 배우자 사별을 경험하신 이들은 ‘내가 밥하고 빨래하고 엄마의 몫까지 해야지, 내가 취직해서 돈 벌면서 아빠의 빈 자리를 채워 줄거야’라고 결심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하고 학부모로서의 역할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두배의 노력을 하지만 결과는 아니 아이들의 만족도는 그 반도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만 하던 한 엄마는 남편이 떠난 후 당장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특별한 경력이나 자격증도 없기에 오전에는 목욕탕 청소, 오후에는 음식점 식당 보조, 밤에는 대리 운전, 그리고 주말에는 대형 마트 주차 관리... 그저 자식들 남 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학교 다니게 하려고 자신의 몸도 잘 돌보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경제적인 면에서 이제 아빠의 몫까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빠를 잃은 것만이 아니라 엄마도 잃어가고 있었다. 음식을 챙겨 놓고 일찍 나가는 엄마, 한 밤중이나 새벽에 들어오는 엄마, 주말에도 안 계시는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도리어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초등학생 둘이서 주섬 주섬 챙겨먹고 나가는 음식, 편의점에서 사 먹는 음식이 그 아이들의 성장과 영양에 도움을 주지 못했던지 영양 실조와 결핵이 나타났고 서울 한 복판에서 보기 드문 이가 머리에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부서지는 것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하늘이 무너지더란다. 이 때부터 그 엄마는 무리해서 ‘엄빠’로 살기보다는 우선 엄마로 열심히 살기로 하고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일을 조정하고 아이들과 하루에 두 끼는 꼭 같이 먹기 시작했다. 몇 달만에 세 식구가 밥상앞에 같이 앉았을 때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단다. ‘엄마랑 같이 밥 먹으니까 너무 좋아, 김치랑만 먹어도 무지 맛있어’ 우리 모두는 결코 완벽한 ‘엄빠’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