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적 이유로 난민 인정을 신청한 이란 국적 학생의 학교 친구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공정한 심사를 통한 난민 지위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오늘같이 갑자기 비가 쏟아져 비를 피할 곳을 찾을 때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애 넷을 데리고 6.25동란 전 남으로 피난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는 안가르치고 공산주의 노래와 행진만 시키니 미래가 안보여 결국 고향을 등지고 남하를 결심했다 합니다. 분단선을 넘기까지 지고 오던 것을 다 빼앗겼지만, 밥줄이었던 재봉틀만큼은 목숨을 걸고 지켰다지요. 산 넘고 물 건너 서울에 당도해서 다섯 식구 몸 뉘일 방 한 칸은 구했는데, 일감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 집주인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애 넷을 내쫓았답니다. 방세를 안냈다고. 엄마는 일감 구하러 나가고 없는데 어디로 가야하나...주인집 처마 밑에 네 명이 주루니 서서 서러워 울며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는데, 이웃 집 아주머니가 애들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따끈한 수제비를 끓여 먹였답니다. 저희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 처마밑과 수제비를 잊지 못하셨지요.
독일의 건물들에는 대부분 처마라는 것이 없습니다.
지붕이 벽 너머로 내려오지 않으니까요. 벽을 따라 빙 둘러가며 지붕이 내려와 있어 길 가던 사람에게도 처마를 제공하는 한옥과는 아주 다릅니다. 갑작스레 비를 피해야 할 땐, 에누리도 없고 덤도 없는 ‘독일놈들’은 집도 처마 없이 짓는다고 공연히 투덜대곤 하지요.
새로 지은 쇼핑 몰의 입구에는 돌출된 지붕이 있어서 오늘은 거기서 비가 잦아들길 기다릴 수 있어서 건물주가 고맙습니다. 그리고 처마밑에서 울고 서있는 네 명의 아이들이 또 떠오릅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선 예멘의 난민가족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제주민이 이웃의 반대로 결국 그들을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수제비를 먹인 이웃집에 집주인이 와서 방세도 못내는 이 ‘따라지들’을 왜 끌어들이냐고 훼방놓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낯선 만큼 예멘인들에게도 지구의 동쪽 끝 나라는 낯설디 낯선 나라겠지요. 아무도 소풍나가듯 고향을 등지지는 않습니다. 몰이해와 왜곡과 배척은 보통 두려움에 근거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그 무엇이 뺏길까봐 불안했던 마음은 ‘내’게 낯설고, ‘나’보다 약하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 같습니다. 그 두려움은, 자기 안에 있는 측은심이나 연민을 무시하고 거슬러야하기 때문에 더 잔인하고 거칩니다. 두려움은 결국, 크고 열려있고 부드러운 우리 자신을 작게 만들어 차갑고 딱딱한 성으로 가두어버리기에 그런 마음을 보는 것은 참 아픕니다. 두려움은 결국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을 자초하지요. 유럽의 난민 문제는 바로 그 두려움을 방관했거나 혹은 이용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마가 있고, 열린 마당이 있으면 더할 나위없는 넉넉한 마음의 집을 지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집들이 있는 사회에 산다면, 세상은 덜 서럽고 조금은 더 푸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