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1시 메이플릿지 shop에 벨이 울렸습니다. 평소 12시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요즘 우리가 만드는 어린이 가구 주문이 많아 분주한 가운데 있었는데 제가 담당하고 있는 아트센터 가구 조립을 미처 끝내지도 못한 채 미련 없이 스쿠르드라이버를 놓고는 공장문을 나왔습니다. 오늘은 메이폴릿지 학교 아이들 모두가 올 여름내내 준비한 “호보(Hobo) 캠프”가 있는 날입니다.
하루는 유빈이가 나의 손을 잡아 끌더니 “아빠 저랑 호보 캠프장에 가요, 친구랑 함께 브릭오븐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만들었는데?” “돌맹이와 진흙으로요.” 어느 날은 유빈이가 병원 약속이 있어
잠시 학교에서 나와야 했는데 하필이면 “호보데이”인데 빠지게 되었다며 퉁퉁거렸습니다. 호보가 뭐길래 겨우 이삼십분이면 되는데 그 짧은 시간도 빠지기 싫은 모양입니다.
“호보(Hobo)”는 화물 열차에 무임승차하여
각지를 이동하는 방랑자를 말하는데 호보의 어원은 서로 인사할때 쓴 “Ho, Boy!” 또는 “homeward bound(집으로 향하는)”등에서 약자를 따왔다고 합니다. 호보의 역사는 1860년대 미국에서 남북전쟁후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화물열차에 뛰어 올라타면서 부터
시작해 이후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시대에 일을 찾던 노동자등을 포함해 1906년에는 미국 인구의 약 0.6%인 50만의 호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호보들에게는 Big House(큰
집-감옥), Cover with moon(달을 담요삼아-벌판에서의 잠자리), Sky pilot(하늘의 비행사-목사), C.H.D.(cold, hungry, dry-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등등
자신들만의 은어가 있었고, 직접 고안해 낸 사인(예: 십자가표시(angel food-설교후 호보에게 제공되는 음식) 으로 벽에 표시해 다른 호보들에게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 철로를 따라 걷는 호보들» 호보 사인 » 호보 사인 상징
또한 호보가 지나가는 마을 주민들이나 다른 호보들을 존중하는 호보만의 윤리강령이 있었습니다.
- 네 삶은 스스로 결정해라. 다른 사람이 너를 운영하거나 다스리지 않도록 하라.
-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연약한 마을주민이나 다른 호보들에게 이익을 취하지 말라.
- 마을에 들어갈때는 그 마을 법과 사무관들을 존중하고, 항상 신사처럼 행동하라.
- 늘 자연을 존중하고 네가 있었던 곳에서 쓰레기를 남기지 말라.
- 언제든지,어디서나 도움이 필요한 다른 호보들을 도우라. 언젠가 너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 등등
(https://en.wikipedia.org/wiki/Hobo)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은 이번 여름에 어떤 프로젝트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보통은 같은 학년끼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5살
유치원 아이들부터 8학년(중학생)까지 모두 함께 호보캠프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유치원 작은 꼬마부터
중학생 큰 언니, 오빠들까지 모두 섞어 일곱
여덟명이 한 그룹이 되어 자신만의 개성을 들어내는 이름도 만들고 분장도 하고 노래도 지었습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자신들만의 캠프장을 만들기 위해 숲에 길도 내고 캠프장 터도 닦고
요리할 수 있도록 큰 돌맹이들을 날라 바베큐 장소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재료들을 가지고 가서 모닥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신나게 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평소 유빈이에게 들어 궁금해하던 차라 공동체 전체를 초대해 호보캠프를 한다고 해서
흥분과 기대속에 설레는 맘으로 숲으로 향했습니다. 학교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교장 선생님
부부가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호보 차림을 하고는 사람들에게 “이리로 가세요. 저리로 가세요.”라고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복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가리킨 숲 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빽빽하게 아름드리 자란 북미 큰 떡갈나무 사이에 덥수룩한 노랑색 가발을 쓰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들을 입은
여섯 일곱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밀가루 반죽을 덮은 소시지를 숯불에 굽고 있었습니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호빗들 같았습니다. 그
소시지 굽는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점심 때가 가까워서인지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나를 본 아이들이 내게 달려와 인사를 하고는 대뜸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었습니다. 난 그 순간 뭔가 다른 분위기를 알아차리고는 나도
넌지시 내 이름은 “대한민국” 이라고 했습니다. 내 이름을 듣는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며 그 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도 그냥 재미로 내 이름의 뜻을 대답하지
않고는 그냥 큰 소리로 “대~한~민~국 쨔짠짜 짠짜”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질쌔라 그럼 “네
이름은 뭐니?”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들은 모든
이름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웃긴 이름들이었습니다. Dusty Daisy, Singing Sammy, Little
Britches, Greasy Grimes, Sloppy Sim등 이었습니다. » 호보 캠프장» 호보들 첫번째
만난 호보그룹의 넉넉한 인심으로 소시지를 새 개나 받아 먹은 후 나도 한번 호보스피릿을 느끼기 위해 너구리 모자를 빌려 쓴 후 호보들이 독특하게
만든 표지를 따라 새로운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걷는 발걸음이 푹신푹신하게 우드칩을 듬뿍 깔아놓은 샛길과 물이 고여 있는 진흙을 밟지 않게 통나무로 만든 징검다리 등을
건너면서 형아들은 앞에서 끌고, 동생들은 뒤에서 미는 등 여름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함께 열심히 일했을
호보아이들이 내심 자랑스러웠습니다. 호보들이
만든 샛 길을 따라 다다른 곳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빼곡하게 자라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푸른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서늘한
그늘 아래서 호보들은 양념한 소고기를 신나게 숯불에 굽고, 그 구운 것을 빵과 치즈를 올려 절묘한 맛의
수제버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육즙이 줄줄 흐르면서 마치 한국의 떡갈비 같은 맛이 나 자꾸만
손이 갔습니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둘째 아들 유빈이가 속한 호보 캠프장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닭고기와 피망을 코챙이에 궤어서
숯불에 누릇누릇하게 아주 잘 구워내고 있었습니다. 밭에서 갓 따온 방울 토마토와 곁들어 맛 본 케밥의
맛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이 호보들이 만든 케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 어떤 음식보다 가장 먼저 떨어졌다고
합니다. 뒤 늦게 소문을 타고
이 맛을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그냥 발 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한
호보그룹은 한국으로 치면 탁구공만한 크기의 수제비 같은 덤플링을 닭육수에 넣어 끓여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열치열이라고나
할까 후덥지근한 여름에 뜨거운 덤플링국을 먹으며 더위를 잠깐 식혀 보았습니다. 호보
표지판을 따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음식도 먹어보고 또 형제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차에 마치 영화속 한 장면같이 깊은 저음의 뿔나팔소리가
울렸습니다. 넓은 숲에 있는 모두가 들릴 만큼 큰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 둘씩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뿔 나팔소리는
전체 모임을 시작한다는 신호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아이들, 청년들, 우리 모두가 아이들이 만든 참나무 숲의 무대에 모였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벤치에, 젊은 아빠들은 나무토막 위에, 청년들은 바닥에, 나는 널다란 이끼 낀 돌위에 앉았습니다. 이날 호보 아이들과 호보
선생님들이 입은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의 옷들로 무대가 온통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인
사이몬이 얼마전에 약혼한 Dusty Daisy(호보이름) 선생님을
부르더니 그녀와 약혼한 다른 공동체에서 온 Slim Pickins(호보이름) 형제를 앞으로 불러 세웠습니다. 보통 약혼 기간중에는 학교에서 커플을
초대해 웨딩케이크를 서로 먹여주는 행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사이몬이 케이크대신 소시지 하나와
꼬챙이를 주면서 두 사람이 함께 소시지를 모닥불에 구워 동시에 입으로 물어 먹게 했습니다. 두사람의 입이 점점 가까워지자 옆에서 보고 있던 형제가 이 선을 넘으면
더이상 결혼을 물릴 수 없다며 놀려대자 모두들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
후 한 그룹씩 앞으로 나와 자신들이
개작한 호보들이 즐겨부른 포크송을 찬트와 함께 불렸고, 한 호보그룹 브라스밴드는 호보곡을 연주하여 흥겨운
분위기를 돋우었습니다. 호보
공연이 마치자 공연을 지켜본 우리 모두가 다함께 아이들에게 감사의 환호를 외쳤습니다. “Thank you, Thank you!” 이
날 우리는 아이들이 가져다 준 기쁨 때문에 잊지못할 한 여름 날의 꿈 같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