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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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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서 벗어나고싶다면 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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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2-.JPG» 은혜공동체 내 바에서 밤늦게 맥주를 마시는 모습


티베트 카일라스(수미산)에 다녀온지 10여일만에 후속모임을 가졌습니다. 무려 15일간 고산에서 저산소증에 시달려서 아직도 힘들어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카일라스 가셨던 분들이 대부분 제가 최근에 낸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구입해 읽고 있어서 자연스레 책 이야기를 했는데, 놀랍게도 여러 분이 마을공동체에 막연한 관심을 넘어서, 그런 삶을 살아보려고 작정을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분들은 거의 제 페친이기도 한데요. 약사 출신으로 지금은 일을 하지 않고 자녀도 해외에서 살아 홀로 살고 있다는 임영희 선생님은 공유주택에서 살아보려는 모임에 참여해서 한 달에 두 번씩 모임을 갖고, 서울 성북동 등에 공유주택을 지어서 살아볼까하고 탐방도 다니고 있다네요. 또 고교 교사인 남편과 함께  카일라스 순례에 참여했던 조영애 선생님도 기노채 이사장님이 하는 하우징쿱 모임에 참여해 이미 공유주택을 지어 살고 있는 곳들을 탐방했다고 하네요. 두 분은 자신들도 공유주택에서 들어가 살거라고 했습니다. 1993년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부대장이었던 정명숙 선생님도 그런 공유주택에 살려고 모색하다가, 최근 방향을 바꿔 인왕산 기슭 달동네 개미마을로 들어가서 개미마을을 마을공동체로 만들어볼거라고 했습니다. 울산에서 온 최경희 선생님도 싱글인데도 홀로 살지 않고, 집에서 여러 명이 사실상 공동체처럼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여성 싱글들도 홀로 고립되어 살다가 고독사 당하는 일이 없도록, 이웃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인구의 4분의1이 공유주택에서 산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공유주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는 이런 데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어느 정도 학식과 의식을 가진 분들에 국한돼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을공동체는 이들보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러 면에서 더 취약한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현실적인 삶에 억눌려 좀더 다른 삶을 꿈도 꾸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게 부족하더라도, 상처가 많더라도, 외롭더라도 공동체가 주는 힘으로 약점과 단점들을 쉽게 메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고용율 최악에다가 서울 집값 폭등 소식에 이어 부익부빈익빈 소득격차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차로 벌어졌다고 하는데요.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고 한탄만 하지말고, 나라 경제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지말고, 약자들일수록 자구책을 택해야한다고 봅니다. 저는 수많은 마을공동체를 보면서 마을공동체나 공유주택이야말로 최고의 자구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당국 정책 혜택이 나한테까지 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기보다는 자구책을 강구해서 마을 내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공유주택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공동육아 품앗이 육아와 교육으로 아이들 키우는 문제까지도 해결해 북유럽 못지않은 자체 선진마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라 경제도 좋아지고, 나라 복지도 좋아지고, 세상도 좋아지면 좋겠지만, 언제까지 감이 내 입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요.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경제가 좋아져 돈이 아무리 넘쳐나고, 서울시내에 건물과 집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도 ‘그림의 떡’인 분들이 너무나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부디 ‘다른 삶’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 ‘다른 삶’이라는게 희한한 소수들만이 추구하는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했습니다.


밝은1-.JPG» 서울 강북구 수유동 밝은누리공동체에서 마을밥상에서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

 

 먼저 도시에서 가장 쉽게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유주택을 살펴보지요. 공유주택은 외관상으로는 빌라와 별반 다르지 않지요. 다만 지을 때부터 적게는 서너명, 많게는 열명가량이 모여 설계부터 함께 하면서, 어떻게 이웃끼리 사이 좋고 행복하게 살까를 논의해서 입주해 산다는 게 다르지요. 제 책에서도 공유주택인 서울 마포구 성미산 소행주1호와 도봉동 은혜공동체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은혜공동체는 50명이 살고 있습니다. 서울시건축상을 받을 만큼 멋들어지게 지어진 5층 건물 내부로 들어가보면 각 가정의 주거공간뿐 아니라 도서관과 술을 마실 수 있는 바, 카페, 게스트룸까지 갖추고 있지요. 집안에서 이런 것들을 모두 누리고 살아가니, 고급호텔 거주자가 아니곤 누리기 어려운 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주택 입주비는 1인당 1억원이 채 들지 않았습니다.

 은혜공동체가 공유주택을 짓는 데 부지비와 건축비를 합쳐 든 돈은 45억원입니다. 이곳에 입주한 50명으로 나누면 1인당 1억 원이 안되는 액수입니다. 이 돈을 처음부터 다 마련한 것도 아닙니다. 이 공유주택을 지을 때 은혜공동체가 3억원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공유주택을 지원하는 혜택이 많지요. 이 주택도 서울시가 낮은 금리로 융자해주는 한국사회투자기금 10억 원을 대출 받아 부지를 사 건축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새마을금고에서 부지를 담보로 일부 대출을 받고, 공유주택에 입주키로 한 이들이 입주비를 내서 대출금을 상환했습니다. 주택 소유권은 은혜공동체가 갖고, 입주자는 전세금을 내고 입주하는 형식입니다. 공동체 주택은 지분을 가진 사람이 자기 지분을 팔아버린뒤 엉뚱한 사람이 지분을 사서 들어올 경우 공동체가 와해될 수도 있고 분쟁이 생길 여지가 있어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가구당 전세금은 1억500만원이고, 소득이 적은 가구는 7천만원만 내도록 깎아줬습니다. 모아놓은 돈이 없는 사람은 시중 금리 정도의 월세를 내고 산다고 합니다. 월세도 바깥의 절반 정도입니다. 이 정도 비용으로 온갖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다 늘 다정하고 도움을 주는 친구와 언니, 오빠, 형, 동생들이 곁에 있고, 아이들에겐 이모, 삼촌이 덤으로 생긴 것입니다.


소행주-.jpg» 서울 마포구 성미산 소행주1호에서 떠난 아빠여행. 소행주1호 9가구는 전체여행 외에도 아빠들끼리만 가는 아빠여행, 엄마들끼리만 가는 엄마여행을 즐긴다.

 

 공유주택에 함께 살면, 여행을 갈 때도 여럿이 함께 계획성 있게 준비하기 때문에 비용이 절감됩니다. 가령 은혜공동체는 매년 한 차례는 모든 공동체 멤버가 해외여행을 가면, 1~2년 전부터 준비해 항공료도 가장 쌀 때 살 수 있습니다. 2017년 가을엔 공유주택 입주자를 비롯해 모임 참석자까지 포함해 79명이 스위스 알프스로 3박4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직장에 불가피한 일이 있던 단 1명만 빠졌다고 합니다. 참여율도 놀랍지만, 스위스 여행비가 1인당 200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이들은 스위스에서 아주 괜찮은 게스트하우스를 통째로 빌려서 사용하고, 매일 저녁엔 호텔 식당을 통째로 빌려 파티도 럭셔리하게 했음에도 그 비용으로 거뜬했다고 합니다.

  

 삶의 여유, 특히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게 공동 밥상입니다. 은혜공동체에도 당연히 공동 밥상이 있어 부엌살림에서 해방됐습니다. 1인당 내는 저녁 식비가 한 달에 10만 원입니다. 믿어지지 않을만큼 싼 금액입니다. 서울 물가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수십 명의 식사를 함께 준비하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여성도 저녁마다 부엌에 매여 살지 않고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공동체원 중 1명을 전담요리사로 지정해 월급을 주고, 당번제로 서너 명씩 돕습니다. 월급이 나가는 고용 인원은 1명뿐이고, 나머지 금액은 모두 부식비로 쓰고 추가로 드는 비용이 없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식사는 경제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 간 대화와 소통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주일에 한두 번도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없다면 가족이라도 지금 무슨 고민이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알기가 어려우니, 말뿐인 가족이 되기 십상입니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기에 공동체다워집니다.

 공동체원들은 공동 밥상이 비용도 줄여주지만 삶의 여유도 주고, 소통으로 행복도 늘려주니 여러 모로 좋다고 입을 모읍니다. 서울 강북구 인수동 밝은누리도 밥상공동체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을 해결하는데, 1인당 한 달 비용이 9만 원입니다. 월권을 사서 사용합니다. 인근엔 마주이야기라는 공동체 찻집이 있는데, 이곳 월권은 3만 원입니다. 월 12만 원으로 저녁과 찻집을 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소행주 1호의 9가구 중 5가구도 저녁 공동 밥상을 커뮤니티 룸에서 엽니다. 5가구가 식단을 짜서 장을 봐두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분이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 동안 밥과 몇 가지 요리를 해놓고 갑니다. 밥을 차려 먹고,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식당 임대료도 들지 않고, 인건비도 주중 하루 3시간씩 쓰는 구조여서 한 달에 4인 가구당 20만 원이면 됩니다. 먹고 싶은 것 위주로 식단을 짜니, 만족도도 높습니다. 함께 살면 한두 번 쓰고 마는 물건마저 따로 살 필요도 없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인 윤상석 씨는 소행주에 살면서 지출이 정말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춘천에서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살았어요. 혼자 살면 필요한 걸 돈을 주고 사거나 참아야만 하잖아요. 공동체로 살면 굳이 살 필요도, 참을 필요도 없어요. 아이가 꼭 캠핑을 가고 싶어 하면 텐트나 버너, 코펠 등 한 번 쓰고 처박아 둘 수도 있는 걸 다 사야만 하지요. 여기선 빌리는 것이 너무 당연해요. 여행용 캐리어까지도 서로 빌려요. 그만큼 친해서죠. 빌려줘서 고맙다고 맥주 몇 병을 사서 함께 먹으면 더욱더 다정해지죠. 단지 경제적인 이익만이 아닌 거 같아요. 드릴 같은 것도 1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한데 이곳에선 빌려 쓰면 되지요. 벽지도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한 롤을 사야 할 때도, 페인트도 구석에 한 번 발라야 하는데 한 통을 사야 할 때도 다른 집이 남긴 것을 사용하면 됩니다. 낭비나 환경오염도 줄이니 얼마나 좋아요.”


은혜3-.JPG» 은혜공동체원들이 공유주택 1층에 있는 카페에서 퇴근후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소행주에선 쓸 만한 물건인데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게 있으면 밴드에 올립니다. 그러면 곧바로 필요한 사람이 손을 들어 가져갑니다. 괜찮은 걸 득템한 사람은 그걸 이유로 커뮤니티 룸에 피자나 치킨 같은 걸 쏘기도 합니다. 공동체에서 나눠 쓰는 것은 상식입니다. 밝은누리에서 최근 아이를 낳은 신원·김나경 씨 부부는 출산비를 거의 들이지 않았습니다. 먼저 아이를 낳은 공동체 친구들이 미역국까지 끓여주고 방에 불을 넣어두는 건 기본이고, 아기에게 필요한 옷가지와 장난감 등 쓰던 것들을 깨끗이 빨고 다려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을 주고 살 게 거의 없었습니다.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 옷도 장난감도 변동 주기가 워낙 짧아서 새 것을 살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아이를 길러본 이들은 알기 때문에 챙겨준 것입니다. 구입 비용이 적지 않은 유모차도 쓸 만한 것이 많아서 골라야 할 정도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요즘은 출산 때 정부에서 가족행복카드로 50만 원을 지원해줍니다. 친구들은 임신 때 불안해서 검사하느라 그 돈을 모두 검진비로 산부인과에 가져다주는데, 공동체에는 임신·출산을 경험한 선배와 친구들이 너무 많아 쓸데없는 검진비로 낭비하지 않고, 아이 낳을 때 조산원에서 그 비용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결 같이 서로 나눠 쓰고 돌려 써서 돈도 절약되지만, 뭔가 내게 없어도 결핍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이 마음이 든든하다고 합니다. 내게 부족한 게 있어도 공동체원들에게 빌려 쓰고 함께 쓰고 나눠 쓰면 된다고 생각하면 갈증이 안 생기고 마음이 늘 넉넉하고 편해진다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살면 평균적으로 하위 20~30% 정도의 씀씀이만으로, 상위 90% 이상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니 돈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나눠 씀으로써 더욱 풍족해지고 싶다면,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다면 마을공동체 살이를 생각해봄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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