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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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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어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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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모종군-.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질시와 부러움도 나이를 먹는 걸까.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가 부럽더니 청년 시절에는 연애 잘하는 친구를 눈여겨보게 된다. 사회생활할 때는 모임에서 계산을 도맡아 하는 친구가 멋있어 보이다가, 건강진단 하러 간 병원에서는 다른 것 필요 없고 신체 건강한 사람이 최고라 생각된다. 아이들이 진학할 무렵에는 자식을 잘 키운 부모가 가장 잘났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도 잘난 자녀를 둔 사람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그러다가 정년을 맞거나 명예퇴직을 하게 되면 부러운 대상도 변한다. 개인 사업체를 가진 이들과 프리랜서가 되어 계속 일하는 동료들이다. 월말마다 수금이 안 되어 쩔쩔매고, 자금 회전이 안 되어 노심초사하는 어려움은 애써 잊은 채 말이다.


살면서 크게 내세울 것 없는 존재였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크게 부러워해본 적도 없는 나였다. 하지만 최근 무척이나 부러운 대상이 생겼다. 머리숱이 많은 사람이다. 밀림처럼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가끔 삐져나온 새치를 뽑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서 시기심마저 생긴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릴 정도다.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하나라도 더 많으면 좋지, 왜 머리카락의 색은 차별하나? 탈모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흑모백모(黑母白毛) 이론이 있다는 것을 모르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좋다는, 중국 개혁·개방 지도자 덩샤오핑이 말한 ‘흑묘백묘’(黑苗白描)를 패러디한 주장으로, 나는 이 이론의 강력한 추종자가 되었다. 기업의 대표이사 시절 시작된 탈모는 하루가 다르게 외모를 바꿔놓아 지금은 거울을 보기가 두렵다. 혹시 탈모기를 장착한 것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다. 정말이지 스트레스가 육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서울 정도다. 언젠가 아프리카 사파리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털이 빠진 수사자의 처량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누구에게나 탈모는 반가운 일이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 앞에 서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모에 효능이 있다고 선전은 요란하지만, 확실한 탈모 치료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강연은 무대 위에 서는 직업이다. 무대 위에 선다는 것은 일정 부분 ‘있어 보이는’ 게 중요하다. 내용이나 정보 전달이 물론 중요하지만, 평소보다는 옷차림과 외모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디자인과 마케팅 관련 강의를 하는 어떤 분은 무려 100개가 넘는 안경을 갖고 있다. 의상이나 장소, 혹은 주제에 맞게 다른 안경을 쓰고 강단에 선다. 이 경우 안경은 잘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 보이기 위한 도구다. 프레젠테이션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무대 위에 서거나 중요한 발표를 할 때는 ‘오버드레스'(overdress)하라고 강조한다. 평소보다 더 잘 챙겨입으라는 뜻이다.


시각적인 요소는 이처럼 매우 중요하다. 카페에서도 커피를 소비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감각을 소비할 때가 많고, 외국의 서점이나 도서관에 방문할 경우에도 책이 아닌 멋진 디자인을 보는 데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외모와 디자인은 맥주의 거품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맥주에 거품이 전혀 없으면 건조하고 풍미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거품이 지나치게 많으면 싱겁기 짝이 없고 때로는 본질마저 희석된다. 무대 위에 서는 사람도 그렇다. 비주얼이 중요하기에 머리카락에 자신 없는 사람들은 가발을 쓰거나 모자 같은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감추려 한다. 이건 약점을 위장하는 것이 아니다. 청중들에 대한 배려라고 보고 싶다. 시각적 서비스일 테니까. 그런데 관건은 어느 정도 ‘오버'하느냐, 그 정도의 문제다.


강연이건 글쓰기 강좌이건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은 지나친 거품이다. ‘오버'가 넘치고 또 넘친다. 지식인일수록 실제보다 더 아는 척, 뭔가 더 있는 척한다. 영어로 ‘오버스테이트먼트’(overstatement·과장, 허풍)라 하는 과도한 거품 현상이다. 인문학 분야에도 ‘4차 산업’이라는 용어를 쓰거나 블록체인을 들먹거린다. 지금은 말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글의 전성기다. 모든 게 문자로 이뤄진다. 보고서, 직장의 메신저, 페이스북, 카카오톡의 문자에 이르기까지 글로 의사소통하는 시대다. 글쓰기 강좌가 성황을 이루는 이유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이겠지만, 과도한 것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적정량을 넘은 설탕과 소금이 몸에 좋지 않듯, 실제보다 부풀려 표현하려는 언어 습관도 좋지 않다.


호칭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서구에서는 ‘미스터 손’, 일본에서는 ‘손상’, 그리고 중국에서는 ‘손 셴성(先生)’이라 부른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호칭은 뭐가 뭔지 나 자신도 헷갈린다. 대표님, 교수님, 작가님, 위원님, 하나같이 무거운 타이틀이다. 그냥 ‘손 선생’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 지나친 거품은 결국 허세다. 실제 이상의 견장을 어깨에 달고 다니면 부담이 된다. 마치 심리적 디스크에 걸린 사람 같다. 화가 피카소는 이 문제와 관련해 명언을 남겼다.

“거대한 날개를 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예외 없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 날개는 걷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데서 오는 결과물이다. 나는 결심했다. 국가의 위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했던 것처럼, 탈모의 위기를 ‘백모종군’으로 돌파하기로 한 것이다. 흰머리든 없는 머리든 구애받지 않고 당당히 무대에 선다는 뜻이다. 만약 자유로운 삶을 주장한다면 먼저 백모종군 대열에 동참하는 게 어떨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삶 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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