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선생, 안녕하십니까”
» 지난 2014년 6월29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와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이 함께 연 '만해스님 열반 70주기 남북합동다례재'
2003년도 개천절 행사를 치르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삼백여 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4박 5일의 여정을 위하여 서울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그중에 호칭에 대한 일종의 지침을 받았다. 예를 들어 북쪽 국가의 호칭은 북한/북조선, 최고지도자는 위원장/장군님, 식당에 근무하는 직원은 접대원 선생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사는 약간의 겁을 주면서 당부했다. 방문하는 일행은 실수하지 않기 위하여, 혹은 재미 삼아 비행기와 차 안에서 호칭을 연습했다.
드디어 평양 순안 공항에 발을 딛고 일정을 시작했다. 오십여 명에 이르는 우리 불교계 방문자는 그쪽 공식 호칭으로 말하자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 관계자들이 맞아주었다. 우리 쪽에 견주자면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인 셈이다. 예상은 했지만 북쪽 불교 관계자들의 복장은 양복에 유발이었다. 우리 쪽은 승복에 삭발 한 행색이다. “안녕하십네까? 조불련 국제부장 00입니다”. “반갑습니다. 민추본(민족공동체 운동본부의 약칭으로 조계종의 대북 기구) 상임본부장 00입니다” 양쪽은 서로 합장하고 손을 잡으며 반갑게 통성명했다. 우리 쪽 스님들은 조불련 관계자들의 직책을 부르고 그쪽에서는 00 스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동행한 재가불자들이 조금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 물었다. “스님, 저 처사님(남성 불자를 부르는 사찰의 관행적인 호칭)들도 스님이에요?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처하네요. 머리를 기르고 양복을 입고 있으니 스님이라고는 못 부르겠고.” “하하하... 그냥 저희처럼 이름과 직책을 부르세요”
개천절 행사에 북쪽을 방문한 단체는 불교, 그리스도교, 천주교, 천도교 등의 종교단체를 비롯 경제와 사회문화단체 등이었다. 그래서 조불련을 비롯하여 다양한 북쪽 관계자들과 식사와 관광과 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 자리에서 실수하지 않는 무난한 호칭은 ‘선생’이었다. 행사 내내 조불련 관계자 외에 다른 북쪽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함께 한 일행 중에 남북교류 초기부터 북한을 방문한 스님들의 말을 빌자면, 처음에는 조불련 관계자들 중에도 몇몇은 호칭이 각양각색이었다고 한다. 스님, 선생님, 스님 선생님, 스님 동무, 그리고 중 선생... 다행으로 ‘중 동무’는 없었다고 한다. (부언하자면, 불교 성직자에 대한 호칭도 종종 시비가 되고 있다. 존칭어로 생각되는 ‘스님’에 대한 호칭에 대한 반응이 각자가 다르다. 정의와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호칭은 시대에 따라 어감이 변하고 있다. 우리도 예전에는 정다운 친구 사이를 동무라고 했다. 유난히 빨간색에 민감한 박정희 시대에 그 부인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 이름이 ‘어깨동무’였다. 북쪽 호텔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들을 부르는 ‘접대원’은 지금 남한 사회에서는 아마도 술집 종업원을 뜻하는 ‘접대부’를 떠올릴 수도 있다. 언어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언어에 옷과 색깔을 입히고 있는 셈이다.
우리 일상에서 호칭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일이 종종 생겨나고 있다. 호칭이 갈등의 원인이 된다. 심하면 인권 침해로 비약된다. 그래서 곳곳에서 호칭 문제가 점검되고 있다. 다음에는 대한민국에서 호칭 때문에 내가 겪은 사례를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