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늪지에는 ‘리노데르마르’라는 특이한 작은 개구리가 산다. 이 개구리는 몸집은 작지만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한다. 이 개구리의 암컷은 산란기가 되면 젤리 같은 물질에 싸인 알을 낳는다. 그런데 암컷이 알을 낳으면 옆에 있던 수컷이 알을 모두 삼켜버린다. 수컷의 입에 들어간 알은 먹이처럼 완전히 소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식도 부근에 있는 소리 주머니에 간직한다. 수컷은 알을 삼킨 후 알이 부화할 때까지 자신을 온전히 희생한다. 수컷은 알들이 완전히 부화하기 전까지는 결코 입을 벌리지 않는다. 소리 주머니에 있는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본능적 즐거움인 우는 것을 포기한다. 먹는 것까지도 포기한다. 그러다가 알들이 완전히 부화했다고 판단되면 비로소 수컷 개구리는 자신의 입을 벌려 마치 긴 하품을 하듯 새끼 올챙이를 입에서 내보낸다. 새끼 올챙이를 자신의 몸에서 다 내보낸 수컷 개구리의 대부분은 탈진해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이러한 수컷의 희생...덕분에 리노데르마르가 한두 마리 늪에 들어오면 그곳은 머잖아 그들의 세상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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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세상의 변화는 더딘 것입니까? 영국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공원 묘지에 놓인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나는 평생에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았다. 나라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다. 내가 죽을 때 이르러서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바랐고 나는 변하지 않고 사회가 변하기를 바랐다. 이 세상이 변하고 세상이 변해야 내 삶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큰 착각이고 어리석음이다.”
한 사람의 헌신이 세상을 변화 시킨다고 말합니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나라가 변해야 한다고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바로 내가 희생하지 않고는 나라도, 사회도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여 더 이상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려 하거나 부당한 현실에 대응하지 않으며, 오히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자들을 헐뜯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부당한 환경에 적응하려고 들 때 홀로 고독하게 합당한 사회를 꿈꾸는 것은 질식할 노릇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희생이 따르지 않는 변화는 없습니다.
희생은 자기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의 욕망, 자신의 기분, 자신의 취향, 자신의 혈기, 자신의 꿈을 따라 살던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부정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불나방이 불을 향해 날아들어 자신의 몸을 불에 때워 불꽃으로 화하듯이 변화 속에 자신을 일체화시켜야 합니다. 타오르고 있는 변화 불꽃은 세상을 밝히는 나의 몸입니다. 오늘은 변화의 불꽃에 뛰어들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