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구순이 다된 어머니와 저녁을 하는데 어머니가 티브이를 보다가 “ 닮으셨네 ”한다. “ 뭐가요?”라고 물으니, 요즘 뜨고 있다는 <열혈사제>란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와 닮았다고 하길래 “되물었다. “얼굴이요, 아니면 성질머리요?”
<열혈사제>란 드라마에서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갑자기 몇 년전 남가좌동에서 겪은 재개발에 대한 일들이 떠올랐다. 재개발의 재자도 모르던 내게 재개발 현장 한복판에서의 오년반의 시간은 우리사회가 어떤 수준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신물 나도록 배운시간이었다. 합법을 가장한 무법행위 , 불도저는 매일 밀어붙이고 항의하던 노인들은 하나둘씩 밀려나는데 드라마처럼 그런 행위를 하는 깡패는 한놈도 보이질 않고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란 자에게 물으니 (지금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 자신이 재개발공약을 내세우고 당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은 조합과 주민의 문제라고 발뺌을 하고, 구청도 자신들은 관계없다고 뒤로 빠지고 당연히 서울시는 오리발이고, 법에 호소했더니 이미 이렇게 진행이 되었는데 어쩌겠느냐고 시큰둥한 말이니 했다.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 없는데 재개발은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진행이 됐다. 항의할곳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 열불이 났다. ‘아하 짜고치는 고스톱이란 것이 이런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 들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홧병이나 걸리지말자하고 방법을 찾은 것이 일본인 모리 박사가 사용했다는 일명 ‘걸으면서 욕하기’. 동네에서 하자니 노숙자들이 이미 하고 있고, 생각 끝에 사람이 없는 시간에 성당 안에서 하기로 했다. 십자가의 주님을 보면서 “주님 저런 비리를 저지르는 놈들 다리 몽둥이 좀 부러뜨려주시고 다 감방에 처넣어주십시오”라고 간절한 기도를 했는데 어느날 신자할머니들이 성당앞에 모여있었다. ‘미사도 없는데 웬일이냐’고 물으니 ‘신부님이 매일 기도하신다기에 저희도 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손에 묵주를 들고 작은 소리로 욕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할머니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신부가 매일기도를 하더니 이젠 방언도 한다’는 소문이.
욕하는 소리가 방언과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해프닝이다. 오년반동안 버티고 버텨서 보상을 받고 떠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않겠지 했는데 피정수도원에서 만난 수녀가 말하길 ‘저희 성당도 재개발에 걸렸어요’ 하는것이다. ‘아이고 돈에 환장한 놈들이 아직도 살아있네’. 그런데 수녀 말이 ‘법에 호소했는데 패해서 본당 신부가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개발은 기도만 해서는 안되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재개발의 문제를 알려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열혈사제>를 본 신자들이 ‘에이 저거 순 뻥이야. 무슨 신부님이 저렇게 화를 못참고 사람을 두둘겨 팰까. 저건 그냥 드라마야’라고 하지만 재개발 현장에서 오년반을 보내보니 드라마보다 더한 일이라도 할것같았다. 현장은 그야말로 영악하다못해 사악한 돈중독자들이 판을 치고 있기에. 그 때 생각하니 다시 울홧통이 터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