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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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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한만큼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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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즈음, 종교인들이 모여 대화하면서 당대 사회적 사건들의 부정적 키워드를 찾아본 적이 있다. 우리는 ‘강정’에서는 ‘군사주의’를, ‘쌍용’에서는 ‘고용불안정’을, ‘밀양’에서는 ‘에너지 탐욕’과 같은 키워드를 찾아냈다. 그러다 한 사람이 “그러면... ‘세월호’는요?”라고 물음을 던졌다. 짧지만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우리는 거의 동시에 “모든 거죠”라고 답했다. 그랬다. 세월호 침몰과 304명의 죽음은 한두 개의 키워드로는 나타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얽히고설켜 일으킨 총체적 참사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죄를 짓는 자는 소수지만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는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의 말처럼, 탐욕의 체제를 보고도 가만히 있었던 우리 모두의 책임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특히 꽃다운 나이의 무고한 아이들에게 더 미안하고 더 부끄러웠다.

 참혹했던 그 봄날,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다섯 번째 봄이 돌아왔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촛불혁명이 있었고 정권이 교체되었고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는 등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삶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세월호 이전’의 가치인 물질주의와 경쟁주의는 여전히 우리 삶을 옥죄고 있고, ‘세월호 이후’의 가치인 생명존중과 공동체적 삶은 아직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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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는 “세상은 딱 내가 변하는 것만큼 변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를 나타내주는 지표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의문과 회의가 들 때면 유가족의 삶을 바라본다.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 이후 스스로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왔다. 그들이 보여준 가장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변화는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다른 이들과의 연대였다. 유가족은 그동안 케이티엑스, 쌍용, 콜트콜텍, 파인텍, 아사히글라스 등의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단체 반올림, 강정과 밀양 주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등 국가와 자본의 희생자들을 찾아가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슬픔과 슬픔이, 아픔과 아픔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유가족은 오는 4월 7일 안산 화랑유원지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있을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예배를 준비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제목을 정했다. 유가족이 어깨에 진 십자가의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호소하는 메시지다. ‘모든 것’으로 인한 세월호 참사에서 밝혀진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진실은 여전히 거짓의 짙은 안개 속에 숨겨져 있고 유가족은 진실을 향한 거친 길을 맨발로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을 곁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 그 동행에서 세상과 우리의 변화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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