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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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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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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jpg» 일러스트페이션 김대중

 

유럽행 루프트한자 항공기 기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헤밍웨이가 죽은 뒤 출간된 <파리는 날마다 축제>다. 헤밍웨이? 많은 이들은 카리브 해안에서 요트 타고 모히토 한잔하거나 킬리만자로에서 사냥을 즐기는 미국 백인 중년 남자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만나려 하는 사람은 가난과 배고픔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고 있던 무명 시절의 헤밍웨이다.

 

항공기를 갈아타느라 하룻밤 스탑오버(24시간 이상 경유지에 체류하는 것)를 하게 된 도시가 뮌헨인 것은 대단한 우연이었다. 이 도시에는 헤밍웨이와 마찬가지로 1899년에 태어난 동년배 한국인 작가 이미륵이 잠들어 있는 곳이니까. 이미륵은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운동을 벌이다 상하이로 도피했다. 그 뒤 독일인 신부와 안중근 의사 조카의 도움으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뮌헨에 정착한 사람이다. 독일어로 쓴 그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당시 서독 교과서에 실릴 만큼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헤밍웨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다친 뒤로 1920년대 초반 특파원을 하기 위해 파리로 날아간다.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와 교류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신문사에 사표를 낸다. ‘글로생활자’의 원조인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써서 생활한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파리를 발바닥으로 만나기로 했다. 걷기에 최적화된 도시니까. 제일 먼저 리옹 역을 찾은 까닭은 그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변곡점이란 지금까지 이어지던 힘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시점으로, 인생이나 스토리텔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헤밍웨이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아내는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당시에 내가 머물던 로잔으로 내가 그동안 썼던 모든 원고를 가져오다가 리옹 역에서 가방을 도둑맞았다. 그녀는 알프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도 내가 틈틈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려는 기특한 마음에서 내가 손으로 쓴 초고, 타자기로 친 원고, 그리고 사본들을 모두 폴더 속에 잘 정리하여 가방에 챙겨넣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지금도 리옹 역을 비롯한 파리의 기차역 앞은 소매치기들의 주요 활동 공간이다. 스위스 출장을 마치고 이제 전업 작가로 막 시작하려던 참에 그동안 써두었던 4년치 원고를 잃어버렸으니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몇 년 전 나도 책을 쓰기 위해 유럽 출장에 왔다가 모든 사진이 들어 있는 카메라를 기차역에서 소매치기당했던 경험이 있기에 악몽을 꾼 것 같은 그 심정에 공감한다. 참담함을 누르고 헤밍웨이는 간신히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오른쪽 주머니에 마로니에 열매와 토끼 발을 넣고 다니며 행운의 부적으로 삼던 습관이 있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내가 쓴 단편 작품들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미국에서 내 책을 출간할 출판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신문사 일을 그만둘 때 나는 내 작품을 출간하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원고는 모조리 되돌아왔다.”

 

수입이 없으니 점차 생활비를 줄이게 되고 마침내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점심시간이면 집에서 가까운 공원에서 시간을 때우다 들어오곤 했다 한다. 뉴욕의 브라이언트 공원처럼 뤽상부르 공원은 점심시간이 되면 거대한 도시락 잔치가 벌어진다. 산책과 점심 해결 모두 좋은 곳이다. 작가라고 하면 문약한 인상을 떠올리지만 그는 정반대로 건장한 상남자였다. 그러니 육체적 허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된다.

 

그때 헤밍웨이에게 또 다른 변곡점이 찾아오니, 서점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의 여주인 실비아 비치를 만난 것이다. 비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배고픔과 실의에 빠진 헤밍웨이에게 책을 빌려주고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소개해주며 심지어 생활비까지 빌려주었다.

“내가 썼다가 잃어버린 글의 주제가 아니면서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내가 진정으로 잘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자문했다. 결국 파리의 특파원과 문인들의 사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미친 투우 축제인 에스파냐 팜플로나의 체험을 녹여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펴낸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해준 책이며, 유명한 ‘잃어버린 세대’(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의 시작을 알리는 글이었다. 결국 자기만의 언어와 이야기를 찾아냈다.

 

서점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는 노트르담 성당이 눈앞에 보이는 센강 변에 그대로 서 있다. 물론 여주인 실비아 비치와 헤밍웨이는 이 세상에 없다. 헤밍웨이의 책 두 권을 사서 계산하는데 젊은 직원이 이렇게 말한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헤밍웨이 책을 사시는 것을 보니 진짜로 열정이 있으시군요. 아마도 태양이 다시 뜰 겁니다.”

빈말이라도 좋았다. 누구에게나 잃어버린 가방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일이 안 풀린다고, 뒤통수 맞았다고 풀 죽지 말자. 그가 이 작품에서 강조하려 한 것도 허무함이 아니라 땅은 영원히 그대로 지속된다는 긍정성이다.

 

독립 후 첫 원고료를 받고 몽파르나스 카페 립(Lipp)에 가서 굴 한 접시와 화이트와인 한잔 주문하던 헤밍웨이의 글이 떠올랐다. 마침 내 통장에도 원고료가 들어온 날이다. 카페 립으로 달려가 조용히 건배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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