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지면 6월19일자 21면 '쉼과깸'칼럼
»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가운데)이 6월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단식농성에 들어간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전광훈 목사가 감사하다. 최근 별세한 이희호 장로처럼 남편 김대중과 함께 그토록 핍박과 고난을 받고도 권좌에 올랐을 때조차 보복은커녕 용서와 화해를 더욱 크게 부르짖고 실행하는 기독교적 언행도 감동을 주지만 전 목사의 막언막행을 통해 배우고 깨친 것도 적지 않다.
처음부터 이렇게 호평할 수는 없었다. 2006년 ‘빤스 발언’과 2011년 기독당 창당을 전후한 시점 등에 ‘전광훈’이라는 이름 석자를 드러나게 일조한 것을 자책했다. 파리를 말 꼬리에 붙여주어 천리를 가도록 도와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에도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 44만여표를, 2016년 20대 총선에서 62만표를 얻었다.
전 목사는 지난 1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이 되어 권토중래의 호기를 맞았다. 한기총은 개신교 내에선 이미 군마도 없이 깃발만 나부끼는 단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전 목사는 지난 3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찾아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천만명 청원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 6월11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시민들이 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그는 ‘기독교계의 90%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자신을 과도하게 믿는 그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개신교 단체들이 성명을 내 ‘한기총은 개신교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정치권력을 위해 교계 전체를 이용하는 것을 비판했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도 ‘종교의 이름으로 정치에 나서는 것은 정의, 인권, 평화운동에 국한해야 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발언이 한기총 내부에서조차 공론 절차 없이 독불장군식으로 나온 것이라는 뒷말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2012년 이후 대표회장의 돈 선거와 비리를 둘러싼 내홍으로 회원 교단 70%가 탈퇴해 이미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한기총이 결정타를 맞았다. 전 목사를 한기총 회장으로 밀어준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이영훈 목사가 이끄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와 기독교한국침례회마저 한기총 활동 중단을 선언해버렸으니 그야말로 한기총은 껍데기만 남았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말고삐를 잡고 ‘물렀거라’고 외치던 견마배를 거덜이라고 불렀는데, ‘거덜거리다’(거들거리다)란 말은 이런 허세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전 목사로 인해 한기총이 거덜이 나버린 것이다.
전 목사와 함께 기독자유당 창당을 주도한 장경동 목사도 <매일방송>의 <동치미>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면서 더 유명해져 교회 부흥사로 성가를 높였다. 그러나 ‘남한 인구가 5천만명이니 북한 2천만명을 한 사람씩 끌어안고 죽이자’고 한 설교 내용이 뒤늦게 알려져 방송국 심의실에서 출연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초록 동색으로 자충수를 두었다.
» <MBN> <동치미>에 출연한 장경동 목사. 사진 <매일방송> 갈무리
전 목사는 히틀러에게 맞서다 사형을 당한 독일의 천재 신학자 본회퍼까지 언급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공언했으나 단 한끼를 끝으로 단식을 끝내 언행 불일치의 완결판을 보여주었다.
전 목사가 도산 안창호의 말대로 ‘사람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언행에 의해 흥하고 망한다’는 가르침만을 준 것이 아니다. 배타와 혐오를 선동만 하면 먹혀들 수 있다고 자신하던 한국 교회의 수준을 다시 돌아보게 해, 한국 교회를 한걸음 더 성숙하게 해준 공까지 있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위해 스스로 한기총과 자신을 패퇴시킨 그 ‘살신’의 희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범사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