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는 본질을 갖는다. 미인의 본질은 미모가 아니라. 친절과 부드러움 아닐까? 싸움의 본질은 힘이나 기술이 아니라 용기일 것이다.
성소의 본질은 별다른 신분이나 단체생활이 아니라 '헌신의 응답'이다.
사제 수도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스승의 부르심에 대한 불꽃처럼 뜨겁고 폭포처럼 줄기찬 응답은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본질이자 삶의 빛과 향기를 내게하는 영성의 원천이다.
우리들의 성소는 친구 이웃 세상과 ‘다른 길’로 시작했다. 사제, 수도자의 길은 그렇게해서 세상과 별다른 길을 출발점으로 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다른길에서 성찰컨데 ’소명과 응답’, ‘사랑과 헌신’의 언어들은 예비신학생과 성소자 모임 때의 것일 뿐 세월과 함께 멀어져 퇴색되어 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내 영은 흐린 창문처럼 거미줄로 가득하고, 나의 영성은 재래시장의 호객과 흥정 소리처럼 혼란하다. 성소의 신념은 이기와 욕구와 아집으로 길을 잃고 의무감에 쫓기며 관행과 권태로움으로 살아간다.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의 주인공들,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가 선택한, 일반 여성들과는 그들의 다른 길, 그들이 투신했던 혁명의 길은 시시로 쫓기고 감시와 체포와 고문과 추위와 굶주림, 유형과 혁명동지들의 냉혹한 차별과 심판으로 마침내 죽어갔던, 정말 끈질기게도 고난뿐인 십자가의 길 이었다.
신여성으로서 고난받는 민족의 해방과 자유와 독립을 위한 혁명에 투신했던 그들의 유별난 삶의 끝에는 공신의 보상은 물론 칭송도 기념도 헌화 한송이도 없었다. 다만 지식인으로서의 옳은 삶, 옳은 길을 살다 마침내는 저멀리 별이 되어 사라져 갔던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이 선택했던 다른 듯한 옳은 길은 민족의 밤하늘에 이름모를 별빛이 되어 동방박사를 인도하였듯이 우리시대 지성과 역사의식 세계의 밤길을 밝혀 준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신부 수녀의 다른길은 옳은 길의 겉옷일 뿐이다. 사제 수도자라는 다른 길이 옳은 길로 사회화로 성장되지 못하고 유별난 삶에 묶여있다면 끝내 하느님의 성사가 될 수 없어 다른 길 마저 잃게 된다. '다른 길'은 늘 '옳은 길'안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