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조커>
#‘먹고사니즘’의 팍팍한 고개를 어느 정도 벗어난다고 인생의 고(苦)가 해소되고 ‘쨍하고 해뜰 날’만 오는 건 아니다. 한 고개를 넘어가면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난다. 반세기 전엔 다수가 보릿고개만 넘을 수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배고픔이 어느 정도 해소되니 마음의 허기가 더해졌다. 이제 무료급식소 못지않게 심리적 허기를 호소할 수 있는 곳들이 필요해졌다. 육체적 배고픔마저 해소되지 않은 이들은 이중의 허기로 고통이 배가 된다. 그러나 정신과나 심리상담소나 심리프로그램 비용은 적어도 육체적 배고픔 정도는 해결한 ‘중산층 이상’은 되어야 감당할 수 있다. 정작 심리 치료가 시급한 응급환자들은 치유소 문턱을 넘지 못한다.
» 서울문화재단이 여는 예술치유에 대한 2차 콜로키엄
#영화 <기생충>에 이어 불평등한 사회에 똥침을 놓은 <조커>는 1980년대 빈부 격차가 극에 달한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어려서 폭행으로 뇌 손상을 입은 조커는 주기적으로 시에서 제공한 심리상담을 받는다. 심리상담을 받던 조커는 여성 상담사에게 “내 말을 한번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다”며 분노한다. 그런데 그 상담사는 “이것조차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 예산이 깎여 저소득층에 대한 심리상담이 폐지된 사실을 알려주며 “시에선 당신 같은 사람은 물론 나 같은 사람한테조차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이나마 조커가 속내를 털어놓을 상담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행패를 부린 몇명을 죽이는 선에서 끝나고 연쇄살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현실적인 불평등의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어려서부터 가난 속에서 학대와 폭행으로 트라우마와 심리질병을 갖게 된 이들이 심리치유에서조차 소외되지않게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 서울문화재단 주최의 콜로키엄에서 예술치유가들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는 박은선 교수
#현대는 의사들이나 심리상담가들만 심리적 치유를 하지는 않는다. 음악,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이 치료와 치유에 활용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김종휘)은 4차에 걸친 서울예술치유콜로키엄(집담회·토론회)을 열어 예술치유자들을 강사로 초청해 대중을 상대로 한 ‘예술치유’ 발표와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0일과 지난 11일 1, 2차 집담회에서는 춤을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 사례 등 다양한 예술치유 경험이 발표됐다. 발표자나 청중 모두 예술치유의 효과에 대해선 만족했다. 자신이 닦은 예술을 통해 아프고 상처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치유까지 할 수 있다면 예술가로선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을 터다. 그러나 말이 좋아 예술치유가이지 사회적 대우는 그야말로 엉망이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들어간 큰 비용과 시간을 차치하고라도, 예술치유가가 되고자 석사나 박사 학위를 더하고 고비용의 강사 프로그램까지 이수한 고학력자들인데, 정작 이들이 받는 연봉이래 봤자 1천만원대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이직하거나 치유가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박은선 명지대 예술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예술치유업은 3D업종이나 다름이 없어서 기존 직장을 포기하고 예술치유가가 되겠다며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지원자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형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치유 캠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이후 시가 의욕적으로 심리 케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 최초로 서울 동·서·남·북에 심리지원센터를 만들어 비용 때문에 심리치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서민들도 예술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심리지원센터에서는 음악, 미술, 춤, 무용, 놀이, 심리, 연극, 원예, 웃음, 보석, 풍수, 작업, 명상, 요가, 독서, 시, 글쓰기, 이야기, 드라마, 영화, 문화 등 문화예술을 전방위적으로 활용한다. 사회복지관과 주민자치센터 등에서도 이런 프로그램들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이런 곳들도 예술치유가들의 열정페이만을 요구하니 갈 길이 멀다. 돈 없는 서민과 떳떳한 직업인 예술치유가가 만나 윈윈할 수 있는 곳이라면 조커의 희극이 비극이 되진 않을 것이다.
»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치유 캠프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치유 콜로키엄은 3차가 11월1일 오후2시30분~5시30분 서울시 중구 장교동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 다목적홀에서 ‘공동체로 살기’(참가신청: https://bit.ly/31FCzjz)를 제목으로 열려 ‘왜 마을과 공동체가 치유적인가’등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있다. 4차는 22일 같은시간에 ’사회와 예술치유’를 주제로 ‘예술이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등을 놓고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