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은 가톨릭교회가 중요시 여기는 명제중 하나입니다. 성인은 말 그대로 거룩한사람, 옛 신자분들은 성인이 되길 희구하였고, 신부들을 위해 기도할때도 성인신부되란말이 축복어 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위인전보듯이 성인전을 보는것이 일상적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성인들의 교회라고 해도 될정도로 수많은 성인들은 신자들의 정신적지주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성인들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는 신자들의 마음에 은연중의 부작용을 유발케하기도 했습니다. 성인들을 인간이 아닌 신적인 경지의 사람들로 묘사하면서 따르려고 하다보니
심리적 간극이 벌어지면서 자신을 비하하고 인간적속성들 욕구들을 죄악시하고 건강한 인간관계조차 세속적인 것으로 여기고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것입니다. 그래서 대중들은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세상을 떠나 사는 성인들에 대한 존경만큼이나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평가라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살면서 종교적우울증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런현상은 비단 우리교회뿐만 아니라 다른종교들에서도 흔히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거룩함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서 온 심리적 부작용들이었던것입니다.
거룩함은 참으로 오래도록 종교계안에서 중요화두가 되다보니 신자들의 심리적부담은 물론 거룩한척 하면서 신자들의 눈을 속이고 사기를 치는사람들 조차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이비교주들뿐만 아니라 기성종교에서도 짝퉁성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것입니다. 심지어 히틀러조차도.
성인들은 우리교회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분들이십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거룩함이란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여러가지 종교적오류를 일으킨다는것이 수많은 상담사례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성인들은 어떤 분들인가. 희망을 주는 사람들. 희망의 관점에서 봐야지 세상에서 멀어지는 정도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암울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 희망을 주는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성인들은 그 시대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본질은 희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사안에서 이단으로 단죄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통교리에 어긋난다는 의미에서의 이단 그러나 복음적 관점에서 이단이란 세파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종교가 이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희망을 주는 종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교회의 희망의 불꽃을 살리시려는 모습을 보면서 교황님을 보며 눈에 희망을 품는 사람들을 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야 말로 희망의 성인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망을 주지 못하는 거룩함은 영적은폐라고 영성가들은 날선지적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그리고 이태석신부처럼 살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우리교회안에 많기에 우리교회는 미래에 희망적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