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누구나 마음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집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옛날보다 요즈음의 가정에서 가출하는 청소년이 더 많은 것을 보더라도 갖어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자유는 예전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집안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가출하고 성공하면 집에 돌아와 집안을 일으키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은 집안 식구의 간섭이 싫어서 가출하고 성공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식구들이 귀찮고 싫어진 것입니다.
자유란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개인주의가 되어 모두가 남이 됩니다. 형제간도 남이 되고, 부모와 자식의 사이도 남이 됩니다. 부부도 남입니다. 모두가 남이 되다 보니 정도 사라지고 오직 커지는 것은 개인적이로 감각적인 욕망뿐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의 사회는 개인적인 욕망과 그 욕망을 총족하기 위한 쾌락만을 추구합니다.
왜 자유를 추구하는 사회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유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자유가 나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면 바른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나를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하는 데서 오늘날과 같은 사회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눈,귀,코,혀,몸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은 보기 좋은 것을 원하고, 코는 좋은 냄새를 탐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혀는 맛있는 것을, 몸은 감촉이 좋은 것을 탐합니다. 그리고 이 눈,코,귀,혀,몸에 의해 지배되는 마음은 몸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려는 생각으로 움직입니다. 그 마음이 진정한 자기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유를 그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과 같은 병든 사회, 오염된 환경을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같은 사회병리는 척결하고 공해에 오염된 환경을 되살려 정이 넘치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참 나'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은 이렇게 진정한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 필수적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참 나'를 발견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심자가 던지는 질문 <불교란 무엇인가>(이중표 지음, 불광출판사 펴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