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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사이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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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교황'신과 인간사이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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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교황>이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아이리시맨>과 함께 건진(?) 영화로 꼽고 싶다. '두교황'은 현역이었던 교황 베네딕토 16(속명 라칭거)와 아르헨티나 출신 추기경 베르골리오(현 프란치스코 교황)간의 대화를 진솔하게 담아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특히 영화가 주목받는 것은 정통(교조)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은 두 사람이 대화과정에서 각자의 허물을 고백하고 무엇이 대의(교회)를 위한 것인가를 깨달아 간다는 점에서 극심한 분열과 쟁투로 얼룩진 현실세계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시기는 영화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공교롭게도 둘 다 곤경에 빠졌을 때였다. 베네딕토 16세는 전 세계적으로 자행된 사제들의 아동 성착취 문제와 바티칸 내 권력 다툼, 돈세탁 등으로 가톨릭교회에 대한 평판이 땅에 떨어지고 교황 자신도 페미니즘과 동성애에 대한 불관용과 이슬람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등으로 공분을 사고 있었다.

 

교황 시절 그의 말과 행동은 전임 요한바오로 2세의 비호 아래 해방신학에 대한 공격과 교회내 성차별 용인, 성소수자에 대한 불관용, 사제의 결혼, 피임과 낙태에 대한 논의를 금지시킨 신앙교리성 수장으로서 모습 그대로였다. 비록 완고하더라도 요한 바오로 2세가 보여주었던 카리스마와 행동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와 교회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겠지만 학자 출신으로 교리에만 밝았던 그로서는 닥친 상황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교황의 입장에서는 교회의 전통을 손상시키는 도덕적 상대주의나 소란으로부터 정통을 수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아동성착취나 부정부패 같은 추악한 범죄와 신앙과 이성이 다투는 논쟁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추문을 덮는데 급급했다. 게다가 보수반동에 가까운 '오푸스데이'같은 조직에 성추문과 부패조사를 맡기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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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교황이 서거했을 때 누구보다 교황 직에 야심을 가지고 선거운동을 했던 인물치고는 시대착오적이고 무기력 했다. 베오골리오의 상황도 나을 건 없었다. 그는 소탈하고 청빈했지만 아르헨티나가 민주화 되면서 독재시절 군부에 협조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베르골리오가 예수회 활동을 했던 70~80년대 남미는 1964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거대한 군사 쿠데타의 물결에 휩쓸렸고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군부에 의해 자행된 '더러운 전쟁'으로 수만 명이 살해당하거나 실종됐다. 암울한 상황에서 저항의 거점을 제공한 곳은 교회였다. 일반 사제들은 물론이고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레오나르도 보프 같은 유명 신학자와 돔 헬더 까메라 대주교(브라질), 라울 실바 추기경(칠레),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엘살바도르) 등 교회 상층 인사들도 빨갱이 주교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군부에 저항했다. 그중 로메로 대주교는 암살까지 당했다. 아르헨티나의 인접국인 브라질과 칠레에서 사제들이 민주화운동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 교회는 이례적일 정도로 조용했다. 심지어 타협하거나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베로골리오의 경우 예수회 총장시절 반정부 성향의 예수회 사제들에 대한 체포와 납치를 묵인했다는 의혹 때문에 2010년 인권단체들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그와 관련한 문서는 한국의 민가협과 같은 '5월광장어머니회'자문변호사 오라시오 베르비츠키가 군부독재 시절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비판한 저서 <침묵>에 서술된 바 있다. 심지어 베르골리오가 교황이 됐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벽에는 "교황은 비델라(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자)의 친구"라는 벽보가 나붙기도 했다.

 

영화는 추기경 은퇴를 고민하던 베르골리오가 교황에게 편지를 보낸 후 교황청으로 자신을 초청한 교황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된다. 베르골리오는 교황에게 현재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설파하지만 교황은 역정을 내면서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은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인기에 영합해 세속에 타협한다거나,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선주의자라고 몰아 부친다. 영화는 두 사람의 차이를 혼자 식사하고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교황의 모습과 다른 사람과 어울려 식사하고 아바(ABBA)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베르골리오의 모습으로 대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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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계속되면서 어느 정도 인식의 차이가 좁혀지고 친근감이 형성되자 교황은 교황직 사임을 이야기하면서 "주님께서 새 교황을 통해 이전 교황을 바로 잡으신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베르골리오는 자신이 과거 독재정권에 침묵했고 예수회 총장시절 소속 사제 2명이 체포와 고문당하는 것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것이 마음의 그림자로 남아있다고 털어 놓는다.

 

교황은 고해성사를 받은 후 "우리는 신과 가까이 있지만 신이 아니며, 그러한 뉘우침과 죄의식이 더 겸손하고 더 포용적인 교황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교황과의 시간을 나누고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베르골리오는 1년 뒤 교황으로 선출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두 사람이 2014년 월드컵을 함께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그 해 월드컵은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결승전에서 맞붙었고 결국 독일선수의 결승골에 탄식하는 교황(베르골리오)의 목소리가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교회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두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고뇌하고 헤어나고 싶어 하는 현실의 문제를 좀 더 세밀하게 다루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영화는 전반적으로 성공적이다. 특히 프란치스코 1세로 각인된 일반인들에게 베르골리오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면서 그가 어떻게 위대한 교황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교황과 베르골리오 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던 프라이스가 자신들이 맡은 인물들과 빼닮아 실제 인물들이 직접 출연하는 다큐로 착각할 정도였고 연기 역시 훌륭해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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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교황이 가치관 등에서 적이나 다름없는 인물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사실이라면 베네딕토 16세는 앞서 언급한 허다한 약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대중들에게 사면 받을 자격이 있다. 전임 요한바오르 2세가 치매와 노환으로 말년을 비참하게 보낸 것에 비해 그는 1415년 그레고리 12세가 생전에 퇴위한 이후 598년 만에 온전한 상태에서 위기를 감당할 인물에게 권력을 넘겨줬다. 철왕좌를 두고 암투를 벌이는 왕좌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결론적으로 '두 교황'은 현실속의 구원과 치유, 화합에 대한 이야기다. 허황된 교리이지만 무오론의 위치에 있는 교황이나 저잣거리의 보통사람이나 종종 삶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게 마련이다.

 

구원은 죽음 저너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현존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참회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권력자가 죄를 고백하고 변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에서 교황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한사코 손사래 치던 베르골리오는 교황으로 선출되자 자신이 거리를 두었던 해방신학을 복권시키고, 민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또한 시대의 과제인 불평등의 구조를 비판하고 난민들을 수렁에서 건져 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은 수도원으로 돌아간 라칭거의 선택이 세상에게는 큰 선물이 된 셈이다. 이것이 '두 교황'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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