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네 명의 악사들이 자기 악기를 조율하고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율하는 모습을 보니까 악사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조율하는 소리도 아름답게 들린다. 이제껏 조율하는 소리를 신경 써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조율하는 소리가 유난히 아름답게 들린다. 각자 조율을 끝내고 소리를 맞추는 모습도 보기 좋고 악보를 뒤적이는 소리도 듣기 좋다. 세상살이가 이런 모습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막상 나는 나를 조율한 적이 없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것이 조율이라면 나야말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그럴 것이다. 나는 즐거운 날보다 쓸쓸한 날을 더 많이 살았다.
[2]
내 마음에도 첼로처럼 네 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꿈 줄, 사랑 줄, 믿음 줄, 소망 줄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것을 조율하지 않고 살았다.
어떻게 그런 상태로 지금까지 살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무리 좋은 악기도 사용하지 않으면 삭는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꿈과 사랑과 믿음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삭아서 없어지는 것이다. 만약 어린 날의 순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내 마음의 첼로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가족, 내 겨레, 내 나라를 위하여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싶다. 아, 불쌍한 나의 첼로! 줄이 다 삭아 버렸구나
[3]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마음을 조율하는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는것도, 땀 흘리며 산에 오르는 것도 다 그런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음 조율을 하면 하루가 평화로울 텐데 그 쉬운 것을 하지 않으니 즐거움이 없다. 비 내리면 비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맞는 나무들을 보면 푸르던 잎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살아도 봄이 되면 새잎이 돋는다. 사람들은 비 내리면 우산을 쓰고 찬바람 불면 따뜻한 곳을 찾으니 마음에 새잎이 돋아날 겨를이 없다.
[4]
연주하기 전에 음을 맞추는 것이 조율이고 풀어진 나사를 조이는 것도 조율이고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거울을 보는 것도 조율이고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망설이는 것도 조율이다.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조율은 군대 수송부에서 보았던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라는 글귀다. 수송부 요원들은 날마다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쳤다. 덕분에 차들은 고장 나지 않고 늠름하게 보였다. 나도 그시절에 마음을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쳤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한 것이 참으로 후회가 된다. 젊은이들이여, 떠나간 사랑 슬퍼하지 말고 희망에 속았다고 세상을 원망하지 마라. 날마다 마음을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면 가시덤불 같은 이 세상,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5]
역도 선수가 역기를 들어 올리기 전에 심호흡 하는 모습은 역기를 들어 올릴때보다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말할까 말까 하는 그런 마음처럼.
나도 어릴 때는 순수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조율 없이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율하는 방법을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이나마 순수를 지니고 있었을 텐데…. 조율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날마다 한마디씩 해 주는 것도 조율이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잘 인도하는 것도 조율이다.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면 아이들 스스로 조율하는 법을 배우며 컸을텐데 부모가 아이들을 계속 조율하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분신이 되고 스스로 꿈을 찾는 더듬이도 퇴화되는 것이다. 끊어진 기타줄 정도라면 다시 새 줄로 갈아 끼우면 되지만 한 번 퇴화된 더듬이는 되살리기 어렵다.
[6]
꼬마 해바라기는 얼른 자라서 담장 너머 세상을 보고 싶어 했지. 담장 밑 세상보다 훨씬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날마다 해님한테 빌었지.
빨리 어른이 되게 해 달라고. 그러던 어느 날, 불쑥 커버린 꼬마 해바라기는 마침내 담장 너머 세상을 보게 되었지. 그런데 그날 뒤로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여버렸어. 품고 있던 꿈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 건지, 담장 밑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보고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기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해바라기는 더 이상 고개를 들지 않았어. 해바라기는 풀어진 꿈 줄을 어루만지며 다시
감기로 했지. 하지만 끊어질까봐 쉽게 감지도 못했어. 해바라기는 하느님한테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을 해달라고 기도를 했지.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번갯불이 하늘을 가르고 우르르 쾅하는 소리가 들렸어. 해바라기는 하늘에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 지. 주르륵 쏟아지는 빗속에서 해바라기는 숙였던 고개를 더 숙이고 허둥지둥 담장 밑을 내려다보았지.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어린
날의 그 세상은 보이지 않았어.
[7]
동물 가운데 가장 욕심이 많은 동물은 사람이다. 그래서 조율을 할 줄 모른다.
그 동물이 지구를 해치고 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자연은 오히려 그 동물을 보호하려고 애를 쓴다. 태풍 불고 홍수 나고 가뭄 들고 하는 것이 새로운 마음으로 살자고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가 저지른 죄도 모르면서 자연을 원망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얘기다. 자연은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는데 사람은 자연을 원망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모든 동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라고는 하나 결국 그들에 의해서 지구는 멸망될 것이며 자연은 그 뛰어난 동물을 안타까이 여겨 점점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사람들이여, 이제라도 반성하고 조율을 시작하자. 그나마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지구에게 사죄하는 것이고 멸망을 늦추는 일이다.
[8]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거짓으로 들릴 수 있고 부모의 사랑 어린 얘기도 아이들한테는 잔소리가 될 수 있다. 말은 하지 않을수록 좋은 거지만 굳이 하겠다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것이 좋다. 말이 많은 사람은 조율이 안 된 것이고 화를 내는 사람은 조율이 풀어진 것이다. 제 마음을 조율하지 못하는 천사는 제 마음을 조율할 줄 아는 악마보다 못하다.
[9]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백성들을 위해서 나름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준비도 없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뒤늦게라도 백성들을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만약 그 일을 게을리 하면 무능이요, 구석구석 느슨해진 나라의 나사를 제대로 조이지 못한다면 그 또한 무능이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학생회장 한번 하고 감방 한번 갔다 온 이력을 밑천 삼아 정치판에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을밑천 삼아 뛰어든 재력가도 있고 얼굴을 밑천 삼아 뛰어든 연예인들도 있다. 물론 교수나 법조인들도 많지만. 내 말은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통과 국회의원은 월급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 백성들은 정말 대통령 복도 없고 국회의원 복도 없다. 언제쯤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 나라를 조율해 줄 것인가. 산이 산 되고 강이 강 되고 사람이 사람 되는 그런 세상 말이다.
[10]
아침마다 길을 쓰는 노인이 있었다. 내가 그 노인과 날마다 마주치는 것은 그 시간에 근처에 있는 산에 가기 때문이다. 집에서 산으로 가려면 건널목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 건널목에 이르는 100여 미터 구간을 아침 일찍 일어나 빗질을 하는 것이었다. 맨 처음엔 공공 근로자인 줄 알았는데 날마다 마주치다 보니 예사롭지 않은 노인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는 궁금하여 그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왜 이 길을 쓸고 계신가요? 그랬더니 눈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보더니 곧바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떡거렸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이었다. 그 길에 나뭇잎들이 떨어져 쌓였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노인이 일부러 낙엽을 쓸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길바닥이 추울 테니까. 눈이 쌓였을 때도 길바닥이 추울까봐 쓸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봄이 되고 길가의 나무에도새잎이 나왔다. 이제 노인이 나타날 때가 되었다. 그런데도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길 위에는 버려진 담배꽁초도 있고 찌그러진 음료수 깡통도 있고 누가 봐도 너저분했다. 지나가던 노인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길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지? 아침마다 길 쓸던 노인이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이사를 갔거나, 아프거나 아니면 돌아가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찡그린 눈으로 미소를 짓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치는 바람처럼 할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빗질을 하면서 마음을 조율했던거야. 할아버지의 명상법은 빗질이었어. 다 닳은 마음은 구두 밑창처럼 갈아 끼울수 없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날마다 빗질을 하면서 마음
갈이를 했던 거야. -마음갈이
[11]
어릴 때 같이 놀던 산자락의 나무들과 들길에 피어있던 들꽃들 그리고 졸졸졸 시냇물이 보고파서 고향을 찾았건만 모두들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우후죽순처럼 아파트가 생겨났다. 이제 나는 고향이 없다. 추억이 지워졌는데 무슨 염치로 고향이 있다 하겠는가. 산자락에 지어진 아파트는 파헤쳐진 산보다 더 흉측하게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기계총에 걸린 아이들이 종종 있었다. 동그랗게 머리카락이 빠지고 허옇게 보이는 그런 병인데 그 병에 걸린 아이들은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자신을 창피하게 여겼다. 그런가 하면 서캐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보건소에서는 위생 점검 한답시고 아이들한테 디디티를 뿌려주곤 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나는 뜻하지 않게 기계총에 걸린 산을 보았다. 버스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멀리 허옇게 파헤쳐진 산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 기계총에 걸린 아이들이 떠올랐다. 산도 그렇게 기계총에 걸리는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산행하면서도 종종 본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산을 파헤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일에 관련된 공무원들은 시치미 뚝 떼고 히죽거리겠지. 이완용이 따로 없다. 바로 그런 놈들이 이완용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산을 파헤
쳐 먹을 것이다. 보건소는 뭘 하는가, 이런 공무원들한테 디디티를 뿌려 주지 않고.
[12]
자기 차에다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고 찻길에다 버리는 사람은 참 얄미운 사람이다. 남의 집 앞에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그렇고 밤중에 폐수를 몰래 버리는 회사도 그렇다. 맑은 시냇물이 시나브로 검게 물들어 가면서 우리네 마음들도 그렇게 물든 것은 아닌지. 사랑이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했는지 몰라도 살면서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강물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산이 몸부림칠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사랑도 하기
전에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그런 세상이 되고 말았구나.
[13]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모두들 혼탁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면 더러운 것들이 가라앉을 텐데 거짓을 숨기려고 발버둥 치니까 혼탁한 물이 더 혼탁해진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제 악기를 조율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까지는.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아이들마저 혼탁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
다.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지금 이 세상, 훌륭한 지휘자가
나타나 혼탁한 물을 정화시키는 아름다운 연주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14]
가는 곳도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 있는 아이들, 어둠 속에서 서성대는 그림자, 미움과 분노로 엉켜 붙은 마음들…. 따뜻한 손길이여 어루만져 주소서! 바닷가 모래밭에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라고 써 놓고는 하늘을 바라보고 누웠다. 하늘에다 전보를 쳤으니 곧 답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잠시 뒤 파도가 밀려와 써 놓은 글을 지워버렸다. 나는 다시 일어나 큼지막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엔 글을 다 쓰기도 전에 파도가 밀려와 지워버렸다. 그때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도 속에 하느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하느님은 하늘에 사는 것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사람들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있겠군. 나는 비로소 하느님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느님은 내 마음속에도 있고 부는 바람 속에도 있고 내리는 빗속에도 있다. ‘조율’ 노래가 알려질 무렵 어느 목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하느님이 잠자는 걸 보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하늘에 사는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사는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이 잠을 자고 있으니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라고 한 것인데 그 목사는 ‘잠자는 하늘님’을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하늘에다 전보를 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느님이 살고 있는 데를 알고
난 뒤부터 나는 날마다 하느님을 본다. 사람들이 하느님이고 길가의 가로수도 하느님이고 지나가는 개도, 흘러가는 구름도 다 하느님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만 아직도 잠을 자고 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15]
성남에서 살다가 일산으로 이사 가려고 전셋집을 알아보았다. 집에 대해서 지식이 없던 나는 복덕방 할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정발산에서 가까운 4층짜리 연립주택을 구했다. 연립주택은 1단지에서 5단지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우리 집은 5단지에 있는 3층이었다. 나는 동네에 산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어 덥석 계약을 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살다 보니 서쪽으로 기운 해가 아이 방을 달구는 게 문제였다.
아이는 방이 덥다는 핑계로 해가 진 뒤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게다가 자동차 달리는 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몇 년 뒤 놀라운 마술이 일어났다. 은행나무 세그루가 자라서 창을 가려준 것이었다. 뜨거운 햇볕도 막아주고 자동차 소리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은행나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설악산에서 한 달 정도 있다가 집에 왔는데 은행나무가 휑하니
잘려 있는 것이었다. 관리실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단지 안에 있는 나무들 모두가지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뒤뜰에 있는 은행나무는 해를 가려주고 소음도 막아 주니 다음에는 자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몇 년 뒤 은행나무는 다시 자라서 햇볕을 가려 주었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은행나무에게 절까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며칠 집에 없는 사이에 은행나무가 또 잘리고 말았다.
그렇게 부탁했는데 왜 잘랐냐고 관리실 직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깜빡했다며 하는 말이 은행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가지잘린 은행나무를 보니 애처롭게 보였다. 그때 나는 나의 위선을 보았다. 나는 은행나무를 애처롭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뜨겁게 달궈질 아이 방을 걱정했을 뿐, 은행나무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은행나무 자신도 가지치기를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고 싶은 건 사람이나 나무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은행나무야 미안하다. 내 마음에도 쓸데없이 웃자란 가지들이 있었구나. 오늘 그것을 칠 테니 날 용서해 다오. -가지치기
[16]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해돋이를 보러 간다.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고 답답한 풍경이기도 하다. 소원을 빌기 위해서 떠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왜 꼭 새해여야 하는지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다.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며칠도 못가서 풀어지는 경우가 많다. 기도하는 일도, 마음을 다잡는 일도 날마다 해야지 새해에 한 번 한것으로 일 년 동안 유지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해는 날마다 뜨고 날마다 새날이니 소원을 비는 거라면 일 년에 한 번 하는 ‘새해맞이’보다는 날마다 하는 ‘새날맞이’가 좋을 듯싶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한테 또 어떤 사람은 부처님한테 빌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산신령한테 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산신령이든 뭐가 그리 중요한가. 날마다 찬물 한 그릇 떠놓고 두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비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순수하고 고귀한가. 나의 하루 중 가장 큰 일은 아침에 산에 가는 일이다. 마음을 조율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오르고 나면 마음이 조율되는 것 같아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산에 오르니 날마다 소원을 빈다. 우리 가족, 우리 겨레, 우리나라 모두모두 행복하게 해 달라고 빈다. 어쩌다가 산에 오르지 못하는 날은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아서 불안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마음산에 오르기도 한다. 옛날에는 산에 살고 싶어서 그렇게 애를 썼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산에 산다고 자연이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도시에 산다고 도시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요즘에는 산에 사는 도시인도 많고 도시에 사는 자연인도 많다.
[17]
나는 내 마음이 메마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술을 자주 마시게 되었다.
술도 물이니까 내 마음을 적셔 주리라 믿은 것이다. 실제로 술을 마시면 마음이 촉촉했다. 하지만 술이 깨면 술 마시기 전보다 더 황폐해졌다. 나중에 알았다. 술이 내 몸속에 있는 수분을 다 가져간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가? 내 마음은 무엇을 심어도 싹이 돋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싶어서 사랑의 씨앗을 심어봤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다. 내 마음이 정말 메말랐구나 싶었다. 그렇구나. 마음갈이를 하고 나서 씨앗을 뿌려야지 그냥 씨앗을 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 땅이 부실하면 싹 틔우기가 어려운 거지. 결국 내 마음에 농약이 너무 많이 뿌려졌다는거구나. 그렇다면 이 농약을 어떻게 걷어내지?
[18]
비는 제 갈 길로 간다. 들에 내리는 비는 들길 따라 흐르고 산에 내리는 비는 산길 따라 흐른다. 어떤 비는 하수도로 흐르고 어떤 비는 갈 길을 몰라 헤매기도한다. 그래도 빗물은 계곡을 만나고 시냇물을 만나고 강을 만나서 바다로 간다.
물은 그냥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다. 낮은 마음으로 흐르기 때문에 바다로 갈 수있는 것이다. 스스로 조율하면서 흐르는 물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젊은이들이여, 높은 곳에 가지 마라. 바다에 가면 하늘이 있다. -물은 가장 높은 곳으로 흐른다
담장 밑에 해바라기 고운 꿈을 꾸고 있네
담장 너머 세상을 본 뒤 고개를 숙여버렸네
꿈 줄이 풀어졌네
끊어지면, 끊어지면 어떡하나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은 물로 흘러가네
어린 날의 옛 동산은 병들어 누워있네
사랑 줄이 풀어졌네
끊어지면, 끊어지면 어떡하나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메마른 마음속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본다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아무런 소식이 없네
믿음과 소망 줄이 풀어졌네
끊어지면, 끊어지면 어떡하나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조율」, 1991
위 글은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1월호에 실린 작사가 한돌 타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