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서 배운 것
[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34]
2013.9.6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청라 | editor@catholicnews.co.kr
마을에 살다 보면 말이 통하는 이웃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농사며 음식 만드는 거며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의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로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심전심의 기쁨을 맛보는 가운데 큰 위로를 받고 새 힘이 솟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까운 곳에는 그런 이웃들이 없고 차로 한 시간쯤 걸리는 곳에 뜻이 통하는 동무들이 몇 있다.
얼마 전 장흥에 사는 동무들을 만나러 갔다가 장터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사는 지역의 오일장이 거의 죽었는데 뜻 있는 귀농자 몇이 장터를 살리
는 뜻에서 귀농인 장터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과 더불어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게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우리도 구경하러 가야겠다고 했더니 무척 반가워들 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팔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 말에 “팔 게 있어야 말이죠” 하고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신랑이 가래떡을 팔아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장터에 가는 것도 싫어할 줄 알았는데 장사까지 하자니 정말 뜻밖이었다. 나야 당연히 찬성! 하지만 가래떡을 뽑으려면 일이 많았다. 시부모님이 쓰시던 고물 정미기로 쌀을 찧는 까닭에 현미로 쌀을 찧으면 뉘가 엄청나게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쌀 반, 뉘 반이라고 보면 된다. 게다가 석발기가 없어서 돌을 걸러내지 못하기에 조리질을 해서 돌도 따로 골라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떡을 뽑아 먹으면 정말 맛있다. 우리 집에서는 간식으로 가래떡을 뽑아두고 냉동실에 넣었다가 그때그때 꺼내 먹고 손님들이 오면 한두 덩어리씩 챙겨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모두들 가래떡이 맛있다고 난리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그 맛에 정성이 배는 게 아닌가 싶다.
다울이까지 달라붙어서 뉘를 고르고 그 쌀을 신랑이 정성껏 씻어서 방앗간에 맡겼다. 그리고 마침내 장터에 가는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떡을 찾으러 가서 그 떡을 싣고 장흥으로 가는 길, 신랑과 나는 얼마에 팔 것인가를 놓고 실랑이를 했다.
“한 덩어리에 3천 원으로 해요.”
“뭐라고요? 그 쌀이 어떤 쌀인데…. 들인 공을 생각하면 4천 원, 아니 5천 원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됐어요. 그렇게 비싼 걸 누가 사먹는다고. 방앗간에 맡긴 삯이 3만 원이니까 3만 원만 번다고 생각합시다. 천 원, 2천 원 더 받아서 얼마나 벌겠다고 그래요?”
“그래도 그렇지. 못 팔면 우리가 먹더라도 제 값은 받아야지.”
“장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나눠 먹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이 사람은 어쩜 그렇게 도인 같은 말만 하는지…. 하지만 떡 뽑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이 딱 잘라 말하니 내가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떡값은 한 덩어리에 3천 원으로 낙찰! 우리는 떡 광주리를 들고 쭈뼛쭈뼛 장터로 들어섰다.
ⓒ정청라
장터에는 우리와 같이 어설픈 장사치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 한 자리를 잡고 떡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에는 뭐가 없는 것 같더니 식혜와 팥빙수부터 샌드위치까지 먹을거리도 풍성하고 나무로 깎은 수저, 손수 바느질해서 만든 옷이나 소품, 밭에서 막 따온 농산물까지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정말 다양한 물건이 가득했다. 또한 가지고 나온 물건 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들뜬 표정으로 놀이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다. 장터라기보다 장터 놀이를 하러 나온 것 같았다. 마치 시장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지 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매개로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러 나왔다고나 할까? 그러니 비싸다 싶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유기농 가지가 세 개에 천 원, 샌드위치가 5백 원, 뻥튀기가 2천 원…. 좋은 거라고 비싸게 파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편안한 가격이라 사면서도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래떡을 비싼 값에 팔았으면 정말 부끄러울 뻔했다.
아무튼 가래떡은 금방 동이 났고 나는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각자 싸들고 온 도시락을 가져와 들마루에 모여 앉으니 푸짐한 밥상이 차려졌다. 주먹밥부터 김밥, 단호박찜, 고구마, 사과, 포도, 오이, 토마토까지, 점심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먹을거리가 정말 많았다.
함께하면 이렇게 풍성하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장터에서 나는 삶을 배운 것 같다. 삶은 거래가 아니라 나눔이라는 것을, 잘 나누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비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