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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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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렸던 한 수녀의 기구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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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히스테리 환자?

 

 

 오이스토키오(Eustochio: 1444-1469).

어찌 좀 일본 이름처럼 들린다. 하지만 25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던 이탈리아의 파두아 출신의 베네딕도 수녀로서, 가톨릭에서 성녀가 되기 전 단계인 복녀다. 이 글에선 복녀와 성녀를 동급에 두고자 한다. 두 개념 차이는 얇은 종이의 양면처럼 느껴 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글에선 칭호의 중요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찌해서 그녀가 마녀로 찍혔다가 다시 복녀로 되었을까? 가 주관심사다.

 그녀는 출생부터가 불행했다. 혼외 임신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우리 조선시대처럼 당시 유럽인들도 사생아는 사회에서 인간 대접을 잘못 받았다. 기이하게도 이 여인은 더 구차한 사생아로 태어났다. 하필이면 부인 있는 일반 남자와 수녀 사이에 태어난 아이였다고 독일 딘젤바흐 교수가 밝혔다. 수녀인 엄마가 이 아이를 키울 수 없었기에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집에 데려와 양육된다. 

 일반 혼외자식을 데려왔어도 대개의 본처는 눈꼴 사나워하면서 거부감을 보일 것인데 이 아이는 수녀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보니 더 심했다. 말하자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콩쥐 팥쥐 얘기가 이 가정에 심하게 피어난다. 오이스토키오는 매 맞고 구박받는 것은 일상사였는가 하면 다른 이들로부터도 마찬가지로 손가락질 받는 천덕꾸러기였다. 이런 그녀에게 어릴 때부터 신들린 상태(Besessenheit)가 종종 일어났다. 심지어 그녀는 마귀로부터 자주 얻어맞았다는 말까지 하고 다녔을 정도다. 

 눈물 마를 날 없이 구박받고 사는 딸을 보던 아버지는 딸을 위한 다른 방책을 세운다. 그녀를 그녀의 엄마가 살고 있는 베네딕도 수녀원인 프로스도키모(Prosdocimo)에 보내 버린다. 이 수녀원은 당시에 그녀의 수녀엄마가 살았던 곳인데 이때까지도 여전히 그녀의 엄마가 여전히 살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은 자료에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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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 들어온 그녀는 한 9년간은 마귀나 귀신에 대한 얘기가 없을 정도로 수도원 규칙에 맞추어 아주 경건하게 잘 살아갔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 다시 변화의 조짐이 일어났다. 당시에 수도원 개혁 때문에 이 수도원이 엄격한 수도원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다른 동료들은 다 함께 다른 수도원으로 옮겨 갔지만 유일하게 그녀만 옛 수도원에 남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은 채였다. 옛 동료들이 떠난 자리에 새 동료들이 이 공동체에 들어온다. 

 이때 그녀는 새 동료들과 잘 사귀지를 못하는데다가 후에 그녀는 주교의 결정에 따라 그녀는 억지로 수련자 옷을 입게 되었다. 말하자면 자기 의지가 아니라 주교의 강압에 의해서다. 여기서 독자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수도원에서 경건하게 살면서 어찌해서 수련자 옷을 ‘억지로’ 입혔단 말인가? 당시는 아이들이 10살만 되어도 수녀원으로 보내 버린다. 그 유명한 900년 전의 힐데가드 빙엔(1098-1179) 수녀도 마찬가지였다. 귀족 집안의 10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던 그녀는 8살의 어린 나이에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온 힐데가드는 수도원장이었던 유타의 보호 아래 성장했고 나중에 많은 업적을 통해 후세에 이름을 남긴다.

 

 당시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지참금이 필요하다 보니 딸 부잣집은 이 지참금 때문에 늘 고민거리였다. 여러 명의 딸들을 지참금 챙겨서 다 시집 보내면 살림이 거덜날 수도 있으니 한두 명 정도만 신분 상승이 가능한 좋은 사위를 택해 딸을 시집보내고, 나머지는 수녀원에 보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이스토키오 역시 자기 의지에 의해 수녀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아버지가 어릴 때 보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그녀는 꼭 지참금 문제 때문은 아니었을지라도. 당시의 수도원은 오늘날처럼 신의 부름을 받고 가는 경우는 드물고 당시의 수녀원은 각 집안에서 딸들을 강제로 밀어 넣은 집합장소로도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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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수도원 교체기에 그녀는 새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늘 외톨이였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수도원 안에서 왕따 당했다는 거다. 이런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인지 그녀에게 잠잠했던 어릴 때부터 이상한 체험들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바로 신들림(Besessenheit) 증상이다. 그녀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가 하면, 머리는 산발한 채 이빨을 넙죽거리며 드러낸다거나, 얼굴엔 온갖 색을 다 칠해서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칼을 들고선 동료 수녀들 앞에 엎어지는가 하면 어느 날은 커다란 돌을 가지고 고해신부에게 던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마귀, 악마, 악령이 그녀의 내장의 일부를 점차적으로 끄집어낸다고 여길 정도로 예민하게 호소하는가 하면 악마가 그녀에게 숨막히게 만들려고 시도한다는 거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전신경련에 빠졌다. 

 견디다 못한 동료들은 그녀를 밧줄로 기둥 벽에 묶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증상은 지속적이지는 않고 잠시 가라앉기도 했다. 그러면 수녀원의 분위기도 고요해졌다. 그녀의 고해신부도 그녀가 나쁜 귀신에게 홀렸다고는 단정은 했지만, 그녀 자체는 죄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왜냐면 그녀는 그런 증상이 없을 때는 늘 겸손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기에.

  

 공교롭게도 이런 시기에 수도원장이 아주 위험한 중병에 걸렸다. 의사를 불렀지만 이들은 어떤 병인지 진단조차 못 내린 채 고개만 젓고 있었다. 그러자 수녀원 동료들은 오이스토키오를 주범으로 찍는다. 그녀가 마귀의 힘을 빌어 이 원장을 병들게 했다는 거다. 일이 크게 불거질 징조로 벌써 소문이 무성해 져갔다. 이젠 수녀원 구석에서 이상한 저주용 물건까지 발견되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궁중사를 보면 여인들의 시기 질투로 사용되던, 인형에다 바늘 꽂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저런 소문이 난무하자 동료들은 그녀를 수도원 감방에 처넣고선 어쨌든 그녀를 마녀로 낙인 찍기 위한 갖은 방도를 다 동원했다. 이때 수녀들은 그 지역의 주교는 물론, 당시에 수도원에 영향력을 미치는 귀족들에게까지도 고자질한다. 어떤 불미스런 일이 생길 시에 자기들 편을 만들겠다는 심사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이런 그녀의 소식이 이미 도시 전체에 흩날리고 있었다. 오이스토키오에 대한 소문을 들은 민중들이 대거로 몰려와 수도원 감방에 있는 그녀를 끌어내어 살아 있는 채로 불에 태워 죽이라고 소리 높였다. 죄목은 마녀라는 거다. 

 동료들은 그녀가 거의 굶어 죽게 되었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지만 이를 보다 못한 그녀의 고해신부는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말은 그녀가 부린 마술에 빠져서 그런다는 기가 찬 소리뿐이었다. 그녀의 태도도 문제였다. 그녀를 구해 내기 위해 그녀의 고해 신부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오늘은 이랬다 내일은 저랬다 하는 그녀의 진술 번복이 문제였다. 말하자면 오이스토키오는 자기가 스스로 마녀라면서 그 마술은 옛날의 수녀원 동료로부터 배웠다고 까지 진술하다가 다음날은 그 진술을 완전히 뒤엎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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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다행하게도 이런 소용돌이가 지나가는 동안 원장의 병이 나았다. 덕택에 그녀가 마녀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거다. 당시는 이렇게 사람을 마녀로 모는 일이 허다하다. 성당에서 너무 열심히 기도해도, 성당에 너무 안 가도, 심지어 옆집 소가 죽어도 다 마녀의 짓이라고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던 시대였다. 종교의 이름으로 많은 죄 없는 여인들을 마녀로 몰려 처참하게 죽였던 기록이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스도교의 십계명은 천 리로 도망가버리고 사람을 불에 무시무시하게 태워 죽였다.

 살인하지 말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죗값! 그것은 교회수장들의 어두운 눈, 그리고 거기에 맹목적으로 믿었던 신자들의 믿음이 작용했다. 지금 독일에서는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당시의 영혼들을 구제하는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이렇게 억울하게 마녀로 몰려 죽어간 죽어갔던 여인들의 이름을 성 앞에 붙여 두고선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당시에 억울하게 죽어간 여인들의 혼이 후세인들을 통해서 명예 회복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다시 오이스토키오로 돌아와서. 하지만 수도원 측에서는 그녀를 아예 베네딕도 수도원 밖으로 쫓아내려는 대책까지 세웠다. 이젠 파두아의 주교가 결정을 내릴 차례였다. 하지만 이 주교는 당시 만연하던 페스트 병이 두려워 잠시 멀리 다른 지방으로 피신 중이었다. 그녀의 발작은 점점 더 심해진다.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얻어터진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몸 여기저기서는 피가 흘렀다. 물통 물에다 이상한 물질을 섞는가 하면 아주 뾰족한 것으로 혈관을 가르기도 하는 이상한 짓거리를 해댔지만 이런 증상을 병으로 보지 않고 당시인들은 가톨릭 종교와 연관 지었다. 

 말하자면 마녀인가 성녀인가였다. 즉 천국(성녀) 아니면 지옥(마녀)의 판가름이었다. 일단 성녀로 판단이 나면 이런 신들림은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지고 가시에 찔려 피 흘린 예수의 삶과 비교하기까지 했다. 오이스토키오 역시 이런 자기의 체험을 예수가 그녀에게 가시를 준 신비체험으로 스스로 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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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그녀는 불에 타 죽지 않았다. 1465년 수녀원은 그녀에게 종신 허원을 허락했다. 그 이후 그녀는 점차적으로 거룩한 삶 쪽으로 잠잠하게 흘러들어갔다. 마지막엔 그녀의 몸에 마귀가 설쳤다지만 그녀는 이 마귀가 떠날까 봐 오히려 노심초사할 정도로 초연했다. 이 마귀가 자기를 아주 겸손하게 만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건강은 피를 쏟을 정도로 점점 나빠지다가 1469년 2월 13일 25살의 꽃다운 나이로 죽었다. 25년 동안 살았던 중세유럽의 출생부터 꼬였던 한 수녀 얘기였다. 

 우리가 여기서 두 가지 관점을 엿볼 수 있겠다. 하나는 동료 수녀들은 그녀의 이런 증상을 보고 완전히 마녀로 몰았다. 다른 경우는 그녀의 고해 신부다. 그는 그녀의 신들림을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통을 대신하는 과정으로 보면서 거룩함과 연관을 지웠다. 이렇게 당시는 이런 증상을 두고 종교의 잣대로 마녀인가 성녀인가라는 이 두 가지 평가에만 목숨을 걸었다. 어쨌든 그녀는 마녀로 몰려 불에 타 죽지는 않았고, 죽고 난 후 복녀로 올려져 가톨릭 교회에서 추앙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영역에 전문가인 독일의 딘젤바흐교수는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이런 여인의 징후는 분명 정신과 진단을 받았어야 할 병이 아닐까 하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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