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과 신앙
[종교의 창] 열린 눈 트인 귀
박기호 신부 (소백산 산위의마을 촌장)
“웬일이세요?” “신부님, 기도 좀 하려고 왔어요!”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아랫동네 강씨가 벌겋게 취한 얼굴로 마당에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다. 뜻밖이고 처음 있는 일이다. 이층 경당으로 안내했더니 잠시 뒤 내려온 그는 “신부님, 죄인들은 회개해야 돼요! 사람이 서로 사이좋게 살아야 하는데. 기도해 줍시오, 내가 쌀 반가마 낼 거라요. 햅쌀이 새로 들어 왔거등요!” 하더니, 뭔가 억울한 듯 한동안을 푸념하다가 돌아간다. 강씨가 마을 사람들에게 연대 고발을 당해 조사를 받고 무혐의 처분으로 귀가했다는 것은 나중에 들은 말이다. 며칠 뒤 쌀 포대 두 개가 마을로 왔다.
우리 고을에는 종교시설이라야 작은 감리교회가 하나 있고 사설 암자가 몇 곳 있지만 종교인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집안에 초상이 나면 당연하게도 스님에게 부탁해서 예불을 올리게 한다. 강씨 역시 그렇다. 기도하려고 찾아온 것은 이제 가톨릭으로 개종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다만 가까운 종교처가 우리 공동체이기 때문일 뿐이다.
종교적 교리나 신앙을 목숨 걸고 사수하듯이 타종교를 불경시하면서 ‘미신이다, 우상이다, 이단이다!’ 선동하고 정죄하는 것은 교직자들의 자가당착적인 태도일 뿐, 민중들의 종교 심성은 그렇지 않다. 종교를 가리기보다 그냥 기도할 수 있으면 되고 위로받고 의지하고 축복을 청원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일부 종파들의 배타적인 선교 행위로 인한 한국 종교의 훼손과 폐해가 심각하다. 타종교를 부정하고 폄훼하면서 불상과 성상을 우상이라고 파손하고 훼방하는 행각을 들을 때마다 종교인으로서 민망스럽고 낯부끄럽다. 이건 혐오스러운 변태다.
한국인의 종교 심성은 정서적으로는 불교로 생활하고, 관습으로는 유교로, 문화적으로는 그리스도교로 생활한다는 말이 있다. 종교다원주의의 한국 사회를 종교 엑스포 국가라고 빈정댈 수도 있지만 문화적 이해로 서로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종교 사회가 있겠는가? 축복받을 사회다.
나는 신부이고 내 막냇누이는 수녀로서 우리 가족은 70년 전 모친으로부터 시작한 전형적인 가톨릭 집안이다. 그렇지만 매년 조부모님과 부친 세 분의 제사와 명절 차례를 유교식으로 모시고 있다. 제사에는 가문의 친지들도 모이는데 종교도 다양하다. 나는 가톨릭 사제이지만 장남인 이유로 중요한 전례시기가 아니고는 최대한 참석하여 주례하고자 애쓴다.
늙으신 어머니께서 며느리와 딸들과 마련하신 제사상에 정성스레 제주를 붓고 동생들과 친지들과 나란히 절을 올린다. 끼니도 변변치 못했던 그 어려운 시절에도 모친께서는 단 한 번도 제사를 거르지 않았고 그래서 모두 바삐 사는 도시 생활에도 형제 친지들을 만날 수 있다. 제사와 명절 차례를 통해서 조상님들이 우리에게 축복을 선물하신다고 믿는다. 모친께서 작고하시고 장남인 나도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는지 모르지만.
미신과 우상숭배란 무엇이고 문화와 신앙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복음서에는 병자를 치유하고 악령을 추방하시는 행적이 무척 많이 나온다. 치유와 구마는 육신과 정신의 왜곡을 창조성에로 복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과 성경에 대한 설교는 넘쳐나는데도 교인들은 창조적 삶을 외면하고 미신과 우상을 더욱더 숭배한다. 명품의 우상, 개발과 성장의 우상, 재테크, 아이티(IT) 기술, 강대국, 패권주의, 매카시즘, 신도 수, 헌금, 경쟁적인 매머드 교회 신축의 우상 … 의식과 영성을 지배하는 악령을 숭배하고 있지는 않는가. 바로 이것이 문화와 우상과 신앙을 식별하지 못하게 만든 마술이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한다. 악령을 추방하고 영혼을 정화하는 재세례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