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향한 대중의 존경은
무소유와 청빈한 삶 때문
유품 돌려받아야겠지만
치열한 수행정신이 진짜 유시
2013.04.15 법보신문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사람들은 성철 스님을 선사로만 기억하지는 않는다. 종정 스님, 수행의 사표, 선지식으로 부른다. 평생을 청빈한 수행으로 일관했던 스님의 삶은 우리가 불자임을 자랑스럽게 한다. 조선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불교는 청정한 기운을 많이 잃었다. 그런 한국불교에 다시 청량한 수행의 바람을 일으킨 분이 성철 스님이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자지 않거나, 절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10년씩 산문 밖을 나가지 않는 스님의 수행은 전설처럼 회자됐다.
스님의 정진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고 치열했다. 청담, 자운, 월산 스님 등과 함께 했던 봉암사 결사는 활력을 잃어버린 한국불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스님은 검소한 삶으로도 존경을 받았다. 생전에 입었던 누더기 가사장삼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1993년 스님의 열반 당시, 전국에서 사람들이 마치 밀물처럼 해인사로 몰려들었던 것도 삶을 관통하며 일관되게 보여준 스님의 모습에서 오는 감화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탈속과 무소유, 청빈의 상징이었던 성철 스님의 관련 유품이 탐욕의 대상으로 전락해 불자들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지난해 마이아트옥션은 성철 스님이 종정으로 있으면서 내렸던 유시(諭示) 1점을 경매로 내놓았다. 유시는 당시 불국사와 월정사가 주지 품신을 놓고 다툼을 벌이자 이를 타이르기 위해 내린 것으로 ‘持戒淸淨(지계청정), 和合愛敬(화합애경), 利益衆生(이익중생)’이라고 적혀있다. 계율을 지키고 화합공경하며 중생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라는 스님의 당부가 절절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유시가 어떻게 경매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결론은 스님의 친필을 돈벌이로 여긴 사람 때문이다. 마이아트옥션에 유시를 넘긴 사람은 성철 스님과 친분이 있는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다. 유시를 사진으로 찍어드렸더니, 스님이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철 스님 선양 사업을 펴고 있는 원택 스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밝혔다. 종도들에게 내린 친필 유시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는 설명이다.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이 입적하고 2년 뒤인 1995년 책에 싣기 위해 유품들에 대한 사진촬영을 의뢰했는데 책을 만들고, 뒤늦게 유시가 사라졌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훔쳐갔다는 것이다. 당시 유시는 두 점이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친필로 작성돼 한 점은 백련암에, 한 점은 총무원에 보내졌다. 그러나 총무원에 보낸 유시는 종단분규 과정에서 사진만 남은 채 사라지고 백련암에 소장된 것만 남게 됐다.
다행히 유시는 경매에서 2100만원에 팔렸다가 다시 마이아트옥션으로 돌아온 상태다. 경찰이 수사한 결과 도난품이라고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아트옥션은 정당한 방법으로 구매했으므로 돌려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성철 스님의 유시는 종단의 귀중한 기록유산이다. 행방이 묘연했던 스님의 유품이 이렇게 해서라도 알려져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탈속의 유품이 가장 세속적인 탐욕과 다툼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 안타깝다. 성철 스님의 유시가 하루빨리 불교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또한 성철 스님의 가장 큰 보물은 유품이 아니라 스님이 일관되게 보여줬던 치열한 수행정신과 청빈한 삶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 글은 법보신문(www.beopbo.com)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