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처럼 감싸준 그 한 마디
[휴심정] 나를 울린 이 사람
휴리(핸드메이드 소품 제작자)
15년 전 교환학생으로 캐나다에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에 간 것이었는데 도착 후부터 하루에 2시간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어렸을 때, 익숙한 생활공간에서 멀어졌다는 인식이 드는 순간 시작됐던 분리불안 비슷한 감정이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당장 갈 수는 없다는 사실, 물리적으로 먼 태평양을 건너야 하고, 그것도 비행기 표를 구해야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던 중, 인근 도시를 1박2일로 다녀올 일이 있었다. 페리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도시 외곽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지저분한 거리와 노숙자 차림에 가까운 사람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에 공포감이 다시 또 커졌다. 1박 하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당장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선착장 가는 길을 물었으나 다들 알지 못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배편이 끊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 순간 앞에서 바쁘게 걸어오던 한 여성이 눈에 보였고, 나는 그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선착장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불안한 마음에 마치 그가 나에게 길을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다급히 물었다. 그는 차근차근 길을 알려주고 “막차 시간까지 20분 남았으니까 빨리 가면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그 여성은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는 얼굴로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굿 럭(Good luck).”
따뜻했던 그 표정과 말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나는 ‘굿 럭’이란 말을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하며 선착장으로 뛰어갔다. 배표를 손에 쥐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앉자 ‘굿 럭’이란 말이 마치 나를 구해준 주문같이 느껴졌다.
그 일을 계기로 미칠 것 같았던 불안증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불안증에 갇혀 떨던 나를 따뜻한 모닥불처럼 감싸주던 그 한마디가 아직까지 내 마음 속 온기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