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살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3.12.12 배선영 | editor@catholicnews.co.kr
나의 몸을 그려보기.
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은 처음. 몸이라기보다는 몸뚱이. 눈앞에서 번쩍이던 불을 떠올리게 하는 흉터. 무서움에 스산함을 더해주는 수술방의 추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맡겨질 수밖에 없는 생물. 늘 어딘가가 고장나있는 불량품. 지겨운 병원과 항생제. 언제 또 병원 안에 갇히게 될지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귀찮은 그것.
내가 그린 나의 몸은 여기저기 불쾌한 흔적이 있는 덩어리. 사람도 여자도 아닌 그것.
내 몸을 보고 있자니 뚝뚝 떨어지는 눈물, 그리고 연민.
나의 몸을 탐험하는 여정의 시작. 척추, 다리, 얼굴, 꼬리뼈, 어깨, 목, 골반 등을 하나하나 천천히 깨우기. 지금 나는 내 몸을 느긋하게 구경하는 여행자.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도 상관없어. 내 척추가 어디에 있는지, 잘 있는지 안녕, 인사하기. 꼬리뼈를 상상하며 걷기. 골반에 숨을 불어넣기. 발끝으로부터 빛을 받아 온몸으로 보내기. 진짜 얼굴과 사람들 앞에서의 얼굴은 어떠한지 살펴보기. 파트너에게 온몸을 내맡겨보기. 몸에 힘을 빼보기. 발 아래로 뿌리를 내리기. 물결치는 옆구리.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아니, 누군가 보고 있더라도 의식하지 않고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몸은 맞고 틀린 것이 없대. 몸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나. 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경험하는 것들은 온전히 내 몸 구석구석에 존재하고 있어. 매 순간 근육과 세포들은 살아 숨 쉬면서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을 고스란히 함께해.
몸은 우주, 몸을 여행하는 것은 우주 속을 떠다니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 몸은 자연, 몸을 느끼는 것은 울창하고 푸른 숲속을 걷는 상쾌함.
몸을 여행하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 삶 속에서 유연해지기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방어하고자 했지만 내 깊은 곳에서는 얼마나 진실로 세상에 대한 연민과 따스함으로 살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자주 춤을 추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주황 빛깔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평가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은지. 좋아하는 사람과 인디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긴장을 하며 살고 있는지. 얼마나 게으른 것을 좋아하는지. 산에서 숨 쉴 때 뻥 뚫리는 심장을 얼마나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
▲ 내가 그린 내 몸 ⓒ배선영
몸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 귀찮고, 성가시게 여기기만 했던 몸에 대한 측은함. 아픔에 대한 이해. 우울했던 장기에 대한 미안함. 그러므로 몸을 돌보는 것은 나를 소중히 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곧 내 몸을 돌보고 아끼는 것이라는 믿음.
몸과 하나가 되는 것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것. 어렵고 힘들었던 운동과 움직임들. 그래도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애를 썼으나 결국에는 포기했던 경험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힘을 빼고 내 몸의 흐름에 맡겨봐. 어떤 상황이라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몸으로 직접 느낌. 험난하게만 느껴졌던 삶 속에서 조금은 으쓱해진 나.
몸을 보는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것. 자극을 받고, 화가 올라올 때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몸을 보며 그 감정을 온전히 겪는 것.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와 같은 그 감정들은 온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커다란 짐처럼 어깨에 앉기도 하고, 목구멍에 가시처럼 박히기도 해. 돌덩이가 되어 심장을 짓누르기도 하는 그것들. 그것들을 온전히 보다보면 아랫배로부터 간질간질 올라오는 무언가가 느껴져. 내가 원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나를 누르고 있던 그것들이 한꺼번에 쑤욱~ 내려가. 그리고 맞이하게 되는 편안함과 평화의 시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기쁨.
몸을 보며 사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것. 눈을 감고 명상을 하려고 하면 생각이 집중을 방해해. 명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봐. 항상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을 따르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눈을 감고 발끝부터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 수많은 것들이 내 주위를 지나가는 지금, 내 몸을 느껴. 내 심장은 두근두근, 말을 하면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 나의 팔은 흔들흔들, 리듬을 타고 싶어. 나는 ‘지금, 여기’ 에 있어.
몸은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힘. 오랫동안 되풀이하다 지쳐 잊어버리게 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결정된 것은 없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정답이 없는 질문. 내가 믿을 것은 내 몸. 몸이 원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것. 몸이 원하는 대로 살면 행복해질지도 몰라. 지금, 몸이 원하는 대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추니 아주 많이 행복하거든.
다시, 몸을 그려보기.
단단한 심장과 그곳으로부터 뻗어나가는 튼튼한 혈관들. 장난기가 가득한 팔과 다리. 활짝 만개한 꽃과 같은 움직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담은 얼굴. 힘을 빼고 가볍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의 근육. 우울과 슬픔을 간직한 세포들. 따스함과 미소를 드러낸 입술.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상상으로 가득한 뇌. 어색하게 애써, 아름답고 섹시하다는 가치판단은 필요 없음.
아직 끝나지 않은 몸의 여정. 이 탐험은 내가 나 자신이 될 때까지 계속될 것 같아.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할지도.
‘내 몸’이 곧 ‘나’, 그러므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살기.
배선영 (다리아)
대책 없지만,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고 있는 백수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