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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그리고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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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사회] 변호인 그리고 대자보


2013.12.25 한종호 꽃자리출판사 대표

 

 

변호인.jpg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억울한 학생들의 변호인으로 법정에 선 모습.

 

한 시대를 움직이는 힘은 그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미리 가늠할 수 없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가 된다. 도대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평이한 인사말이 이토록 이 시대의 폐부를 찌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말 하나가 나오자, 이내 도처에서 “안녕치 못하다”는 외침이 절규처럼 터져 나온다.


오래전, 드라마 <다모>에서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넘어서기 어려운 신분 질서를 두고 탄식하면서,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대사로 주목을 끌었던 일이 있지만, 이번 경우는 그와는 또 다르다. “바로 옆에서들 그렇게 아파하는데, 너는 그걸 보면서 하나도 아프지 않은 모양이지?” 고통받고 있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과 무관심 그리고 자기만의 세계에 살아가는 모습에 일격을 날린 것이다.


자본주의가 길러내는 인간형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설혹 그렇다고 해도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성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타자에게 냉혹하고 자신에게 집착한다. 결국 이런 식으로 살아가다 보면,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은 소멸되고 만다. 아파서 지르는 소리에 도리어 짜증을 내고 그까짓 거 가지고 뭘 그래 하면서 윽박지르든지, 아니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외면한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송우석 변호사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가난한 삶에서 탈출하는 것 외에는 세상에 대한 관심은 없었고, 고졸이라는 학력에 대한 무시에 반격을 하는 출세주의로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설정한다. 누가 뭐라 해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이른바 “장땡”이고, 정의니 윤리니 하는 것들은 모두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학생들이 민주화 투쟁에 나서는 것은 질타의 대상이 될 뿐이고,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짓거리나 하고 다니는 걸로 비친다.


그러다가 그는 “안녕할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어, 이거 아닌데 하는 마음이 깊어지면서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이들에 대해 분노한다. 분노와 정의로운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더욱이 그런 현실의 진상을 알아가면서 대부분 뒷걸음치기 십상인데, 그는 도리어 앞장서 나간다. 그렇게 하는 것은 시련과 고역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 일인데도 그는 마다하지 않는다. 기득권이 위협받고 지금까지 달려온 출세의 길이 가로막힐 수 있는 상황이 빤한데도 송우석은 그대로 돌진한다. 그것은 거대한 권력과 정면으로 맞서는 무모한 선택이고 패배가 예상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 손실, 그리고 예견은 모두 그의 행동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더 나가서 그의 이런 선택에 대해 동조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방불케 한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대는 새로운 인물을 키워냈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역사의 변혁은 이렇게 아주 작은 듯한 사건이 담고 있는 봇물이 터지는 사건이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해진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이다. 예수께서는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하셨다. 다름 아닌 공감의 능력에 대한 강조다. 이 시대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바가 무엇이겠는가? 공자가 말했던 ‘인’(仁)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웃의 아픔에 함께 가슴 아파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인이며, 그로써 새로운 세상이 태어난다. ‘고통에 대한 공감’은 이 시대의 대자보이며, 우리가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변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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