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두 그릇 사진 박미향 기자
지난 몇해전 교당이 없던 동네에 교당을 열었을 때다. 처음엔 너무 썰렁해 인기척만큼 반가운 게 없다. 아무라도 찾아와주면 그 자체만으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들이 들고 오는 것은 헌금도 선물도 아니고, 세상 어디에서도 해결 난망이 골칫거리 문제일 경우가 많다. 그래도 ‘고민 상담’을 청해주는 것만도 고마울 때였다.
어느날 두남자가 함께 교당에 들어섰다. 남루한 행색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들고온 것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원불교 교리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내가 평생 따르고 배우고 수행해온 것을 상대가 알고 싶다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최대한 쉽게 교리를 설명해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때마침 점심 때가 되어 라면을 끓여 함께 먹었다.
허심탄회한 라면 공양에 마음이 열렸는지 그들은 그때서야 사실을 고백했다. 둘은 공사판에서 만난 처지인데, 일감이 없을 때는 밥을 줄만한 곳을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 교당 간판이 보이자, ‘오늘은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하자’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 순간 타인의 선의를 이용에 뱃속을 채우겠다는 그들이 얄미운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가 배 고픈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밥을 나눠주는 성직자들도 있는데, 일부러 찾아와서 선업을 쌓을 기회를 주니 얼마나 감사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불교 평양교구장 김대선 교무 사진 조현
사실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그들도 자존심 때문에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가 쉽지 않았을터다. 내 회심을 눈치챘는지 그들은 “또 교당에 와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찾아오면, 오늘 해준 것처럼 차 한잔에, 라면 한 그릇을 베풀어달라”고 오지랍 넓은 당부까지 했다. 모처럼 웃으며 돌아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차 한잔 라면 한 그릇의 공양만으로 두 사람에게 큰 위안을 준 것이 뿌듯했다.
그 뒤 한달이나 지났을까. 그 두남자가 어느날 다시 교당을 찾았다. 그 때는 빈손이 아니었다. 손엔 라면과 커피 믹스 한 상자씩이 들려있었다. 차 한잔 라면 한 그릇을 대접하면서도 일순 불쾌했던 내 마음을 너무도 부끄럽게 하는 선물이었다. 가끔씩 초인종 소리를 반기며 나갔을 때 몇푼 달라고 손을 내민 걸인에게 들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빚이 되게 만든 선물이기도 했다.
옛부터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라 했다. 더욱 문을 꼭꼭 잠그고, 옷깃을 여미고, 마음의 문마저 닫게 만드는 추운 날이 오면, 닫힌 마음을 부끄럽게 했던 그 고마운 두 분이 건네준 라면 맛이 생각난다.
김대선 교무(원불교 평양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