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열풍 주도 정목 스님
지금, 대지 위 서있는 나와 꽃이 ‘기적의 삶’ 영위
2014.01.02 <법보신문>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성공·도전 향해 질주한 우리
내려놓고 비우며 성찰할 때
실패라 해도 두려워 말라
내가 선택해 얻은 ‘경험’
대통령·판사되려 태어났다?
역할의 노예되는 착각일 뿐
타인의 삶 조종하려들면
상대 우주 조작하는 것
▲정목 스님
정목 스님은 1976년 출가. 세계 최초의 비구니 MC. 한국방송대상 MC상, 제4회 불이상 수상. 2007년 명상마음공부 전문 인터넷 방송 ‘유나방송’(una.or.kr) 개국. 2008년 시사저널 ‘한국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영웅’ 불교 부문 1위에 선정. 2009년 ‘법보신문’ ‘불교문화’ 공동조사 ‘영향력 있는 비구니스님’ 1위에 선정. 저서로 ‘마음 밖으로 걸어가라’, ‘산빛 이야기’,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않다’, ‘비울수록 가득하네’ 등이 있다. |
느려터진 ‘달팽이’ 한 마리가 순식간에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정목 스님의 잔잔한 목소리가 묻어 난 에세이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않다’는 출간 1년도 안 돼 50만부를 넘어 섰다. 정목 스님은 성공을 향해 끝없이 질주 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하지만 준엄한 지혜의 한마디를 전한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듯이 달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면 속도 중독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행복이라 믿는 것은 많은 경우 행복이 아니라 어리석은 욕심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묻는다. ‘태양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대지나 쏟아지는 비를 다 받아들이고 있는 대지. 그런 대지 위를 걷고 있는 것을 혹시 기적’이라 생각해보신 적은 없느냐고. ‘우리는 매일매일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 내거나, 풀과 꽃과 나무와 바람과 물소리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적’ 속에 살고 있지 않냐고.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있는 이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느껴보고 싶다면 ‘명상’을 해 보라 권한다. ‘비울수록 가득하네’는 ‘정목 명상’ 세계로의 초대다. ‘한 때 내 어머니 아닌 사람 없다'면서, 이 세상은 홀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으니, 서로 고마운 존재임을 알고 용서하며 사랑하라’며 우리 손을 잡고 있다.
엄청난 반향이다. ‘달팽이~’는 점점 더 넓게, 그리고 깊이 퍼져가고 있고, ‘비울수록~’ 또한 출간 열흘 만에 2만부가 나가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달팽이~’로 받은 인세는 모두 사회로 환원했다. ‘비울수록~’ 표지 날개에는 아예 ‘정목 스님의 인세는 사회로 환원’한다고 명시돼 있다. 기부처와 내역은 ‘유나방송’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단다. “인세는 제 몫이 아니라 독자 몫”이라며 “책을 보신 분들을 대신 해 사회에 기부할 뿐”이라고 한다.
▲힐링열풍은 올해도 계속될 듯합니다.
“도전과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품에 안고 경제성장 일변도만 달렸던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는 전환점을 맞이한 거예요. 산에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듯이 이제 내려올 줄 알아야 합니다. 하산은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상 도전에 실패했다 해도, 그 실패 또한 내가 선택했기에 얻은 경험이니 두려할 필요 없습니다.”
▲방송가, 학교, 기업, 사회지도층으로부터 강의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과분하긴 하지만 최선을 다하려 해요. 어느 중학생은 비로소 ‘자신의 꿈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고백하고, 카이스트 학생, 판사 승진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참담한 곤경도 방향만 틀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할 때, 어느 목사님이 정각사로 직접 찾아와 싸인을 부탁하며 ‘성경을 읽은 느낌’이라며 공감했다 말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방송, 강연, 상담, 집필 등의 빼곡한 일정. 그 많은 일 어찌 다 하시는지!
“일이라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이 순간, 내게 당도한 것 맞이할 뿐이예요. 누군가의 벗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 힘든 순간 비상구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다행이지요.”
▲자살하려던 사람을 구한 일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승용차 안에서 자살하려던 40대 남자가 있었어요. 그 때 라디오에서 제 목소리가 들렸는데 자살에 대해 얘기하더랍니다. 문득, 저와 통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 전화했지요. 사연을 들으니 정말 참담 하더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역경 속에서도 절망보다 희망을 안고 삶을 지탱해 오셨으니 대단하십니다. 그 용기 조금만 더 내어보면 어떨까요? 지금 생각나는 분 계시는지요?’ 어머니가 보고 싶다 하시더군요. 지금 당장 달려가 어머니 품에 안겨 보라 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 아닐까요!”
▲명상 안내서 ‘비울수록 가득하네’에 수록된 고래 일러스트가 인상적입니다.
“한쪽 뇌가 잠잘 때 다른 한쪽 뇌가 깨어 있는 고래처럼, 우리도 늘 깨어있자는 의미입니다. 바다 위에서 유유자적하는 고래처럼 자유를 만끽하자는 바람도 담았고요. 깨어 있지 않으면 착각 속에 살다 한 세상 마칩니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착각 한 가지.
“아버지 역할, 선생님 역할에 충실하라 하잖아요? 그 역할, 외부에서 주입된 고정관념입니다. 물론 사명감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일례로 아버지, 단독으로 완전치 못합니다. 아버지는 아들, 딸이라는 조연을 필요로 하지요. 아버지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생각하면 자식에게 그 만큼의 무엇인가를 요구합니다. ‘너는 일류 대학에 가야만 한다.’, ‘너는 장차 의사나 판사가 되어야 한다.’ 사랑과 자비로 자식을 본 게 아니예요. 아버지는 이생에서 아버지라는 경험을 할 뿐입니다.”
▲역할이란 이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말씀이군요.
“역할이 내 삶의 전부라 생각하는 순간, 그 역할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의사, 검사, 대통령 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착각은 ‘나’에 집착한데서 비롯됩니다.”
▲아집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은?
“한 방울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깃들었다는 공양게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그 물 한 방울 에너지 어디에 써야 할까요. 자비와 지혜를 발현하는데? 아니면 폭력폭언을 일삼는데? 과거 업 그대로 가지고 갈 것인지, 더 나은 방식으로 개선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평화를 향한 마음 혁명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안하려 할 뿐이지요.”
▲평화는 누구나 원하지만 머나먼 일로만 느껴집니다.
“땅과 생명을 빼앗긴 한 인디언이 백인에게 잔인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인디언의 부인이 말합니다. ‘제발 그만하세요. 나쁜 짓이잖아요.’ 그 한마디에 보복을 멈췄습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역시 미칠 듯 화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착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화는 어렵지만 더 나은 방법입니다. 약함은 영혼을 무겁게 합니다. 당신이 독수리처럼 날고 싶다면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율장에도 ‘가면 길은 열린다’ 했습니다.”
▲정각사에서 금강경독송모임도 주관하고 계십니다. 가슴에 와 닿는 한 구절은?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나와 너라는 상을 부수며 고정관념을 깨고 흐르는 물처럼 순리대로 살아간다면, 불행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순리적 삶이란?
“나와 상대는 각각에 맞는 순리적 삶이 있습니다. 내가 나서서 역행하려 들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이 가진 것 내가 뺏어 갖겠다. 저 사람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게 만들고야 말겠다. 이런 식의 언행은 순리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타인의 우주를 내가 조작하겠다는 것의 다름 아닙니다.”
▲분노는 역행이고 연민은 순리라 볼 수 있겠습니다.
“분노를 뒤집으면 연민이 됩니다. 분노는 내 이익에 따른 아집에서 억지로 행한 일이고, 연민은 무아 관점에서 그 사람 입장을 배려해 행한 일입니다. 찰나의 마음 쓰임에서 선악업이 갈라집니다.”
▲‘한 때 내 어머니 아닌 사람 없다’ 의미는?
“지금의 ‘나’는 수많은 생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고 나와 인연 맺는 이들 또한 세세생생 나와 인연이 있었던 존재입니다. 그들이 한 때는 내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원수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낼 수 있지요.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타인과 내가 분리된 남남이 아니라 똑같이 아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의 자비심은 커집니다.”
▲불자들에게 신년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연금술에 도통한 스승이 제자에게 마지막 술수, 돌을 황금으로 바꾸는 법을 전하려 했습니다. 제자가 묻습니다. ‘돌은 몇 년 동안 황금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500년이다.’ ‘그렇다면 저는 전수받지 않겠습니다.’ 내 일로 인해 500년 후 누군가 피해를 본다면 그 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겠지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류와 이 우주에 해를 끼치는 일은 삼가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삼구의 삼업을 청정케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실천에 옮긴다면 우주의 순리에, 부처님 말씀에 맞게 잘 사는 겁니다.”
‘비울수록 가득하네’에 담긴 스님의 한마디가 새롭게 다가왔다.
‘나 한사람이 하는 명상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이슬방울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명상을 하면 그것은 바다의 높이를 상승시키는 이슬방울처럼 인류 전체의 의식세계를 바꿔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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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날 웃고, 승복 소맷자락 휘날리며 교정 들어 선 여고생
강물처럼 흐른 ‘정목 여정’
고래, 집에 초청 못하나?
‘공부나 해라’ 핀잔 뿐
초기경전서 ‘새 부처님’ 만나
대념처경 토대 위빠사나 정진
기구한 사연에 ‘이럴 수가!’
마이크 놓고 자원봉사 17년
깊은 사유서 나온 신선 언어
이 시대 아픈 이에 ‘힐링백신’
▲정목 스님은 “우리의 내면은 욕심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잘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삼독을 말끔히 비운 본래의 마음을 회복해 가는 게 수행이며 공부”라고 강조했다.
사진=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990년 불교방송국이 개국하면서 세계 최초 첫 비구니 MC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정목 스님. 클래식 선율에 법음을 실어 보냈다. 천주교 장익 주교도 그 당시 애청자 중 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거룩한 만남’을 진행한 장본인도 정목 스님이다. KBS, MBC 등 모든 방송 관계자들이 ‘실패’할 것이라 예단했다. 매주 성금모금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정목 스님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200세대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독거노인과 청년가장에게는 희망을, 수술비가 없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한 방송사의 ‘사랑의 리퀘스트’는 ‘거룩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자비’와 ‘사랑’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런 정목 스님이 1995년 돌연 마이크를 놓았다.
2005년 불교방송 FM ‘마음으로 듣는 음악’으로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언젠가 돌아올 정목 스님’이라 생각했기에 ‘방송복귀’ 자체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2007년 유나방송을 개국,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을 통해 세상일에 지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정목 스님의 여정을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가 있다. 나눔! 언제부터 발현된 것일까?
초등학교 시절 나무 아래 앉아 바다에서 유영하는 고래를 상상했다. ‘고래 집에 갈 수 없나? 우리 집에도 초청 하고 싶은데!’ 내 쉼터가 되어 준 나무가 비를 맞을 때면 ‘내 집으로 들여놓을 수가 없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가까이 했던 친구의 어머니는 항상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한 겨울, 얇은 옷만 걸친 채 차가운 방에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도시락 두 개를 준비 해 하나를 건네주는 게 다였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이 모든 일 앞에 소녀는 먹먹해 했다. 삶이란 무엇인지 궁금해 선생님, 친구들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하나였다. ‘공부나 해라.’
중학교 때, 두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장자,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싯타르타’
배 한 척이 돌진해 왔다. ‘배가 부딪치려 하니 어서 방향 틀어요.’ 꽝! 화난 뱃사공이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그러게 내가 피하라 하지 않았소!’ 그러나 빈 배였다. 물살 따라 저 혼자 흘러온 배라는 사실에 사공의 화는 금방 가라앉았다.
소녀는 장자의 핵심을 꿰뚫어 자신만의 ‘보물’ 하나를 캐냈다. ‘아, 상대가 없으면 다툼도 없구나!’
싯다르타는 뱃사공 바주테바에게 말했다. ‘당신만큼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가 인사를 건네자 바주테바가 말을 받았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을 가르쳐 준 건은 내가 아니라 강입니다.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에 이 강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거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 보라’는 뱃사공의 한마디는 그대로 소녀의 내면에 내리 꽂혔다. 중학교 졸업 한 달 전 출가를 결심했다.
가족과 선생님, 친구, 훗날 은사가 되어 준 광우 스님도 ‘공부 마치고 출가하라’며 말렸다. 소녀는 단호했다. ‘이 자리서 출가 하든지, 아니면 죽겠습니다.’ 광우 스님의 은사 성문 스님이 지켜보고 있다 일렀다. ‘중노릇 잘할 아이다!’ 삭발 순간에도 소녀는 천진난만 하게 웃고 있었다. 고등학교 교정에도 승복입고 소맷자락 휘날리며 당당하게 들어선 정목 스님이다.
1980년대 초반, 정목 스님은 정태혁, 원희범, 고익진 교수와 인연을 맺으며 초기불교를 접했다. ‘경쟁자의 성공이나 덕성을 미워하는 마음, 남을 헐뜯고 모욕을 주려는 의도, 남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잔인한 의도, 환심을 사려는 비열한 욕구, 친구들 간의 틀어진 모습을 재미있어하는 행위들은 모두 뒤틀린 마음이다.’ 아함경 한 구절 한 구절이 스님의 의식을 새롭게 일깨웠다. 몸속의 세포가 꿈틀거렸다. ‘부처님을 새롭게 만나는 느낌!’ 자연스럽게 대념처경에 닿았고 위빠사나 수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다양한 법. 정목 스님은 자신이 걸어갈 길을 스스로 찾았다.
대학 졸업 후 교계 첫 상담전문 ‘자비의 전화’를 개설한 장본인도 정목 스님이다. 불교방송과의 인연도 그 즈음인 1990년에 닿았다. 그런데, 기구한 사연을 너무 많이 접했던 것일까?
‘마음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또 다시 먹먹해졌다. 1995년, ‘차 한잔의 선율’ 고별방송 직후 서울대 병원으로 가 환자 곁을 지켰다. 서울대와 동국대 병원에서 시작한 봉사활동만도 벌써 만 17년째다.
5년 동안 진행해 온 인기 프로그램을 뒤로 한 이유도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고뇌의 결단이었다. 강남 신사동 소재 한 건물의 방을 전세 내 ‘마음고요선방’이라 이름하고 새롭게 만난 도반들과 정진했다. 그 때가 1996년 초.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1년 365일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7년 동안 도반들과 그 곳에서 ‘마음 밭’을 일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발심한 수행인들 대부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새로운 수행법을 찾았다. 한국인들에게 맞는 수행법이 필요해 보였다.
외국으로 나갔다. 남방불교, 티베트 불교를 넘어 서양에서 전개되고 있는 수행을 유심히 살폈다. 서양의 수행법은 너무도 체계적이었다. ‘저 방법론을 수입하자!’ 동서양의 수행법을 유심히 살펴 나름대로의 명상 수행법을 정리했다. 그리고 오늘, 그 ‘법’을 내놓았다. 정목 스님의 부처님 법은 그렇게 세상과 소통됐다. 불자도, 이웃종교인도, 종교가 없는 사람도 정목 스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독특한 수행법 때문만 일까? 아니다. 고래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마음, 친구에게 도시락 하나 건네는 마음, 안위를 뒤로 하고 환자 곁에 서려는 마음이 하나로 응축된 ‘정목 마음’이 세상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오랜 세월 동안 갈무리 하며 축적해 온 부처님 말씀을 이 시대에 맞는 신선한 언어로 새롭게 전할 수 있는 내공도 이 마음에서 시작됐을 게 분명하다. 정목 스님의 목소리와 글은 사람들에게 ‘힐링백신’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미 시절, 정목 스님은 축원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무시이래 지은 업 참회하자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고, 성불의 길로 가자는 대목에서 또 울곤 했다. 그 때부터 발원했다. ‘부처님의 모습 보거나 음성 듣기만 해탈하듯, 제 모습 보거나 목소리만 들어도 환희발심하여 불법인연 만나기를 발원합니다.’ 그 발원이 이제 성취되어 가고 있다.
정목 스님, 특별한 ‘원력’은 없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온 모든 인연을 마음을 다해 마중 나가는 게 다’라고 할 뿐이다. 그래도 바람은 있다. 은사 광우 스님이 좀 더 오랫동안 도량에 남아주셨으면 하는 소망.
예불 한 번 빠지지 않는 은사 스님은 자신의 빨래를 누구에게도 시키지 않으신다. 법화, 능가, 금강경 등 경전을 통달한 광우 스님은 지금도 제자들이 경전 한 구절 잘못 해석하면 그 자리서 지적해 내신다. 광우 스님 자체가 경전이요 법이다. 은사 스님의 향훈을 통해 더 많은 가르침을 받고 싶은 마음 한 자락이다.
정목 스님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한다.
“어둠이 왔다고 항상 어두운 게 아니고, 길을 잃었다고 영원히 헤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떠내려가는 배도 어딘가에 닿고 다시 항해를 준비할 것입니다.”정목 스님은 그 때, ‘흐르는 강물’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지금, 그 강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정목 스님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다른 게 있다면, 함께 걸어가는 도반이 더 많아졌을 뿐이다.
<법보신문>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