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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성탄 대신 입춘을 기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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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풍토)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와 먹거리

  -24절기 문화가 토착화된 한국적 기독교를 꿈꾸며-

이정배 교수(감신대)

 

 

기도하는노인.jpg


머릿글

  개별 종교들마다 주요 먹거리가 다를 것이란 사실은 명약관하하다. 저마다 다른 기후, 풍토(환경)에서 생겨났기에 그에 걸 맞는 음식문화가 생겨났던 탓이다. 물론 종교들 간의 풍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먹거리에 대한 기본 태도에 있어 공통점이 없지 않을 듯싶다. 음식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종교들이 추구했던 聖/俗 분리의 이원론적 가치관이 여전히 작용하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들 간의 차이가 종교들의 다름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먹는가와 무엇을 믿는가가 결코 나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먹거리간의 차이가 인류 보편적 생존행위이자 문화로서의 먹는 행위 그 자체보다 가치론적으로 앞서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음식문화의 시각에서 종교를 이해할 때 더 이상 선험적인 가치판단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필자는 종교와 세계관의 관계를 물과 물고기의 ‘不二’적 토대 하에서 생각해 왔다. 분명 이 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겠으나 나뉠 수도 없는 상태로서 존재한다고 믿고있다. 세계관이 달라지면 분명 종교도 변할 것이다. 마치 민물에 사는 고기가 바닷물 속에 생존할 수 없듯이 그렇게 말이다. 종교들 간의 차이는 결국 세계관의 다름 탓이다. 주지하듯 세계관을 논함에 있어 핵심은 언제나 인간과 조우하는 자연환경, 곧 각기 다른 풍토의 특성일 것이다. 접하는 풍토에 맞게 인간은 삶을 살아내야 했고 그로부터 각기 다른 인간의 자기 이해가 비롯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상이한 인간이해로부터 종교적 표상이 생겨났다는 것이 종교학적 진실이다. 이렇듯 세계관 속에는 풍토(자연), 인간이해 그리고 종교적 표상이 어우러져 있다. 이로써 한 세계관 속에 특정 종교가 내주하며 그런 종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근원적으로 풍토적 요인인 것이 분명해졌다. 여기서 풍토성과 인간이해의 상관성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것이 바로 음식문화라 하겠다. 인간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자신을 구성하는 존재이고 음식 역시 풍토성과 나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까닭이다. 우리가 곧잘 쓰는 身土不二란 말이 바로 이를 적시하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종교 및 문명 발생을 흔히 몬순, 사막 그리고 목장형 풍토와의 관계시켜 이해해 왔다. 무엇보다 불가항력적 기후변화 속에서 살아야하는 몬순 풍토에서 ‘수용적’ 인간이해가 생기했고 그로부터 業이나 윤회를 말하는 불교적 속성이 들어났다는 보아도 좋다. 이와 반대로 자연의 은총을 바랄 수 없는 죽음의 땅 사막에서 강력한 ‘의지적’ 인간성이 발현되었으며 그 의지를 자연을 능가하는 초자연적 속성과 연루시킨 것이 기독교의 모태인 히브리 종교인 것도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비해 비교적 온화한 자연(목장 풍토) 속에서 성장한 그리스 지역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합리성’을 배웠으며 합리성에 근거하여 만물의 근원을 묻는 철학적 세계관을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이렇듯 각기 다른 풍토에서 상이한 인간이해가 생겨났고 그로부터 종교간 차이가 시작되었다는 논의는 결정적일 수는 없겠으나 크게 부정될 이유도 없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오늘의 주제인 먹거리와 종교의 관계라 생각한다. 육식을 금하는 종교문화가 생겨났던 반면 살생하지 않으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한 문화도 존재했으며 자신들 풍토에서 풍성한 것과 흔치 않은 것의 차이에 따라 혹은 절기가 주는 먹거리의 소중함을 강조할 목적으로, 나아가 기후적 조건에 따른 유통 및 보관의 시간차에 대한 고려 그리고 주변 생태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상이한 음식문화가 저마다의 종교적 색채를 띤 채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음식이 바로 약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먹거리를 통칭하는 ‘밥’이 하늘과 같아서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그것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키는 약의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생태보전의 기능 역시 담당했음을 제종교가 적시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주로 구약성서에 나타난 먹거리 문화를 중심으로 종교와 음식의 상관성을 설명하되 신약성서 속에서도 간혹 이런 흔적들을 찾아 발굴해 낼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필자의 궁극적 관심은 이 땅에 유입된 기독교의 새로운 음식문화에 대한 것이다. 이는 소위 ‘토착화론’과 연계된 주제로서 기독교가 농경풍토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된 24절기 문화에 따른 먹거리를 중히 여겨야 할 책무가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음식이 종교의 풍토적 특성을 대변해온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 땅의 음식문화와 접목된 한국 기독교의 성격이 사막형의 종교로서 도시 속에서 형성된 서구 기독교와 달라지기를 바라서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먹는 것에 따라 달리 구성되는 존재란 사실을 믿는 까닭이다. 이는 다시금 풍토와 인간(종교)의 상관성 물음으로 귀결될 수 있는 사안일 것이다.

 

 

몸 글

 

1. 성서 속에 나타난 먹거리 규례, 그 생태적 차원

  주지하듯 유대인들의 구약성서 특히 레위기 안에는 비교적 많은 음식 계명(규례)들이 담겨져 있다. 좋지 못한 거친 자연환경에서 생존해야만 했던 까닭에 오히려 먹거리에 대한 까다로운 규범들이 생겨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음식 규범이 유대인들에게 단순 먹거리 차원을 넘어 일종의 생태학적 지혜의 결과물이었다는 지적도 옳다. 수많은 규범을 담고 있는 레위기를 생태학적 시각에서 읽어갈 때 이들 음식 문화 속에 내포된 종교적 목적 역시 바르게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레위기가 일차적으로 말하는 바는 땅을 이용하여 소출을 내되 그 공간을 지나치게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토양의 급속한 황폐화를 막기 위한 조치라 하겠다. 더욱 구체적으로 동일한 땅에 여러 종류의 종자들을 함께 심기보다는 동일한 씨앗을 파종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기도 했다(레위기 19장 19절). 또한 나무가 열매를 맺는 첫 3년간 열매를 먹지 말라는 규율도 있다(신명기 22장 이하, 레위기 19장 23-25절). 땅을 먼저 기름지게 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토지를 6년 간 활용하고 7년째는 반드시 묵혀 사용치 말라는 규칙도 눈에 띤다(출애굽기 23장 10-11절, 레위기 25장 1-7절). 이 역시 흙을 먼저 살찌우기 위한 방편으로서 생태학적 지혜의 한 표현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땅을 쉬게 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굶주려 죽었을 것이라는 판단도 이점에서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같은 맥락에서 이처럼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이 7번 지난 다음해를 거룩한 해(禧年)로 정하여 이때는 파종도 말고 저절로 난 것이라도 추수하지 말며 일체를 자연으로부터 거두지 말라는 규례를 지킬 수 있었다(레위기 25장 8-13절). 이런 규칙들은 수백 년 지속된 이웃 강국들의 지배 체제 하에서도 결코 실종되지 않았다.

 

이렇듯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방식 및 음식문화는 철저하게 생태학적으로 정위되어 있었고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농경 보다는 넓지는 않았으나 초지에서 생활했던 탓에 많은 동물을 사육한 것도 이들 먹거리 문화의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살생 자체를 금한 것은 아니었으나 먹어서는 아니 될 금지동물들을 많이 둔 것 역시 특이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이 역시 개체 수 보존을 위해서 인간 욕망을 제한하는 일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레위기 11장 이하에는 이렇듯 금지된 짐승들에 대한 이름이 상세히 적혀있다. ‘발굽이 갈라지고 새김질 하는 동물은 먹을 수 있으나 그중 먹지 못할 것도 있는데 새김질은 하나 굽이 붙은 낙타, 오소리, 토끼 그리고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 못하는 짐승, 즉 돼지는 부정하기에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선별적 허용과 금지는 무엇보다 당시 생물학적 자원이 크게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낙타를 먹지 못하게 했던 것은 의당 그것이 사막 풍토에서 아주 긴요한 핵심 수송수단으로 쓰였던 까닭일 것이다. 부정하다 여겨진 돼지의 경우 더운 지역에서 쉽게 부패하는 까닭이기도 했지만 인간이 먹는 것과 유사한 것을 먹는 탓에 자원 낭비를 부추긴다고 판단했던 탓이었다. 한편 발굽이 갈라지고 새김질 하는 소의 경우 거친 풀, 건초 등을 먹기에 먹거리가 까다롭지 않으면서도 인간 삶에 필요한 핵심 영양소를 지녔기에 허용음식이 될 수 있었다고 보여 진다.

 

또한 레위기(11장)는 계속하여 물속에 사는 동물들 역시 허용과 금지의 이중 잣대로서 범주화 해놓았다. 우선 물속의 고기 중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먹을 수 있되 이들이 없는 것은 금지시킨 것이다. 비늘 없는 어류들에게 부정하다는 가치평가를 더하면서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일체 물고기는 먹을 수 있게 했으나 개구리 같은 양서류만큼은 금한 것이다. 다른 종교들의 경우 그것이 신성한 탓에 금지되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부정한 이유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 참으로 특이하다. 이들 우상을 금했던 유대인들에게 본래 신성한 동물이란 존재 치 않았던 탓이다. 동물을 신성시 하는 것 보다는 혐오스런 것일 지라도 금지 규범을 통해 보호하는 것이 개체 수 유지를 위해 생태적으로 더 좋은 일이라 판단했던 것이 근본 이유일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듯이 개구리를 식용으로 금지하는 더욱 직접적인 이유가 있었다. 병충해를 옮기는 부지기수의 유(해)충들을 바로 개구리가 퇴치해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양서류의 결손, 내지 부재는 전염병의 재앙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레위기의 음식규정이 단순히 먹거리 차원을 넘어 인간 건강(복지) 나아가 생태적 균형까지 염려했던 것인 바, 놀라운 지혜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공중 나는 새들의 경우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레위기 11장 후반부에서 우리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부정하여 먹을 수 없는 종류들이 나열되어 있음을 본다. 부정한 탓에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명명된 것 중 대표적인 것으로서 독수리, 솔개, 타조, 갈매기, 부엉이, 황새, 왜가리 그리고 박쥐, 타조 등이 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먹을 수 없는 새란 뒤집어 말하면 보호받아야 할 조류란 뜻이기도 한 것이다. 부정하다는 것과 보호 받아야 하는 것을 동전의 양면처럼 이해한 것은 참으로 이스라엘답다 하겠다. 이에 반해 음식규정에 있어 허용된 새들로서 물새, 가마우지, 거위, 오리. 꿩, 뜸부기, 앵무새, 비둘기, 뻐꾸기, 물총새, 딱따구리 등이 나열되어 있다. 레위기에 있어 특별히 조류에 관한한 어느 동물들보다 상세히 개별적으로 언급해 놓은 것이 눈에 띤다. 그렇다면 왜, 어떤 이유로 상당수의 새들은 먹도록 허용되지 않은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새들이 소위 생태계를 지키는 소위 ‘위생 경찰’ 노릇을 하기 때문이었을 듯싶다. 즉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 들쥐를 잡는 맹금류, 큰 곤충을 먹는 박쥐의 역할이 바로 그러했고 그리고 개체수가 적었던 타조는 이와는 달리 희귀종이라 보호받았을 터이다.

 

이어서 곤충에 대한 음식 규정도 길게 나열되어 있다. 날개를 갖고 있으면서 네발로 기는 곤충을 대개 부정하다 여겼으나 예외를 두었다.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그리고 여치 등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구분한 것이다. 주지하듯 이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땅에서도 걷고 뛸 수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곤충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금지 규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신약성서의 인물인 세례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광야에 거주한 경험이 많던 유대인들에게 곤충은 자주 애용된 먹거리 중 하나였을 법하다. 특별히 메뚜기는 대량 번식하여 광야에 무법자처럼 떼거리지로 몰려다니며 산하를 초토화 시켰던 것으로 의당 먹도록 허용해야만 했다. 이처럼 개체 수가 너무 많거나 그래서 생태계에 해가 되는 침입자들로 판단되는 것들이 주로 먹을 수 있는 곤충으로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명칭은 남기지 않았으나 상대적으로 지역의 희귀종, 특수한 곤충들은 역시 ‘부정하다’는 이유로 보호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야생 육지 동물에 대한 음식규정을 레위기 11장 끝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야생 동물 중에서 발굽이 있되 완전히 갈라지지 않고 새김질 못하는 것들의 죽은 시체를 부정하게 생각했으며 네 발 짐승 중에서 발톱을 가진 동물의 사체 역시 부정하게 생각했다. 땅을 기는 길짐승 가운데 족제비, 쥐, 도마뱀 그리고 악어 역시 금지된 동물들이었고 이들 사체들 또한 인간과의 접촉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규정 속에 함축된 법칙과 의미는 다음처럼 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사례에 해당되는 것으로 곰 같은 맹수나 고양이를 들 수 있을 터이다. 당시 야생 고양이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선호했기에 보호 받았고 맹수는 희귀성으로 인해 보존될 수밖에 없었다. 길짐승인 도마뱀은 당대 사람들이 기호 식품으로 애용하였던 탓에 오히려 이를 보호할 목적으로 금지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쥐와 들쥐는 이와는 달리 병충해를 옮기는 짐승이기에 부정하게 생각되었고 식용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구약의 종교적 음식규정이 위생 규칙과 유관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의 위생 규칙의 철저함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무엇보다 이런 길짐승과 접촉한 사람 역시도 하루 온종일 부정하다 여겼고 이들이 부지불식간 만졌던 모든 물체들 예컨대 옷, 가재도구, 음식 등 일체를 부정하다 생각할 정도였다. 따라서 이런 물건들을 물로 깨끗이 씻어 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또한 부정하게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당시 귀했던 화덕과 같은 점토 그릇에 쥐의 사체가 있었다면 사체의 체액으로 인한 전염성을 우려하여 폐기시켰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상에서 보았듯 구약성서에 나타난 음식 규정은 그 이른 시기에 세계 어느 곳에서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생태 지향적으로 설정되었다. 더더욱 음식물의 적합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생물체 각각에 대해 규칙을 적은 편람을 만들어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일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음식 규정은 인간 및 대지 그리고 전 생태적 삶의 지속성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음식문화에 대한 규정이 인간 및 자연생태계로 확장된 사실을 다음의 문장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어느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도끼로 과일나무를 찍지 마십시오. 과일은 여러분이 먹어야 함으로 과일 나무를 찍어서는 안 됩니다. 나무는 여러분이 싸울 대상이 아닙니다(신명기 20장 19절).  ”만일 여러분이 나무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서 어미나 새끼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보거든 그 어미나 새끼를 다 잡아가지 마십시오. 새끼는 가져가도 좋으나 어미는 필히 놓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복 받고 장수할 것입니다.(신명기 22장 6-7절) 이런 구절 이외에도 동일한 시각이 구약성서에 상당히 적재되어 있으나 궁극적으로 필자는 이런 시각의 근원을 창세기 9장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에서 찾고 싶다.

 

즉 처음의 창조 때보다 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은 사람들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말 것과 동물을 먹되 그의 피(생명)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말하는 ‘눈물’ 그리고 ‘피’는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할 무엇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즉 음식 규정이 생태계의 전체 관계성의 틀 하에서 생겨났고 결과 예상적인 성찰의 산물이란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들 음식문화(규정)가 이처럼 생태 시스템을 온전하게 하는데 목표를 두었다는 것은 ‘오래된 미래’ 로서의 종교적 지혜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구약성서의 음식 규정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립된 것으로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삶의 지속성을 확보하려 했던 수단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음식 계명이 존재했던 목적이었다.

 

  하지만 생태적으로 정위된 음식규정이 신약성서 시대에로까지 잘 전승되지 못했고 이후 교회시대로 접어들면서 망각되었다. 음식규정이 신약시대 이르러 공감되지 못한 이유는 여럿이겠으나 그중 핵심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생존조건이 달라 지게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과거의 광야나 농경생활 대신 도시 활동이 기독교 초기 5-6백년간 주종을 이뤘던 까닭에 상술한 생물학적 지식이 수용, 발전되지 못한 것이다. 아울러 예수의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는 것이 초기 기독교 현상이었던 탓에 상대적으로 현 세계에 대한 지속, 유지에 대한 관심이 덜했던 것 역시도 사실이다. 또한 이후 기독교가 유대전통 보다 희랍 사상(플라톤주의)에 경도되었던 까닭에 자연에 대한 평가가 일천해 진 것도 주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신약시대의 핵심 인물인 바울이 율법을 인간을 옥조이는 멍에라 생각했기에 레위기를 비롯한 구약의 규정들을 폐기처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후 기독교는 反생태적 삶을 살아왔고 이렇다 할 음식문화(규정)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물론 종교와 음식의 관계가 이후 중세기를 거치면서 나름 정립되었으나 더더욱 생태적 시각 하에 발전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는 음식규정에 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를 관심 치 않을 수 없다. 이제부터 본고가 관심할 주제이나 다소 당위(토착)적 과제로서 제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24절기 문화의 본질-그것이 왜 기독교 예배儀式에 중요한가?

  보았듯이 인간 및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목적하여 생겨난 성서의 음식규정을 이 땅에 정착한 기독교가 되살려내기 위해 한국적 기독교는 무엇보다 ‘24절기’ 문화를 깊게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물론 ‘24절기’ 문화역시 과거 농경문화의 산물로서 때 지난 가치로서 폄하될 수 있겠으나 아직도 우리 달력에는 이들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고 그에 터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감수성이 존중받고 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24절기를 기준하여 파종하며 추수하고 축제를 벌이며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밥(음식)은 모두가 공유해야 할 하늘이었고 철에 맞는 음식은 동시에 가장 좋은 약이기도 했으며 우주자연이 허락한 은총의 산물이자 天地人 삼재가 협력하여 일궈낸 결과물이었다. 절기 문화를 지켜 발전시키는 것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 땅뿐 아니라 민중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24절기 문화는 이 땅(생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으며 이를 교회의 예배력 속에 적극 반영시켜 활용하자고 제안하였고, 본고를 통해서도 이를 재론할 생각이다.

 

  농업을 天下之大本으로 생각했던 우리 민족은 음력을 택하여 한해를 24절기로 나누고 대략 한 달에 두 절기씩을 두어왔다. 음력 정월에 있는 입춘, 우수를 비롯하여 경칩, 춘분(이월), 청명, 곡우(3월), 입하, 소만(4월), 망종, 하지(5월), 소서, 대서(6월), 입추, 처서(7월), 백로, 추분(8월), 한로, 상강(9월), 입동, 소설(10월), 대설, 동지(11월) 그리고 소한, 대한(12월) 등이 그것이다. 각기 15일 기간을 두고 이어지는 절기는 해아래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 없다는 성서의 근본 입장과도 다르지 않다. 이 절기문화를 통해서 사람은 자연의 흐름에 맞춰 농사(일)을 짖고 때에 맞는 음식을 먹고 옷을 해 입었으며 때론 일의 고통을 잊고자 어느 경우는 추수의 기쁨을 누리며 그리고 새로운 농사철을 준비하면서 축제를 벌이기도 했고 그때마다 먹는 음식이 달랐으나 그것은 노동하는 인간에게 보약이었다. 매 절기마다 특별한 먹거리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것을 함께 나누었으며 노동을 놀이로 승화 시키는 지혜 또한 남달랐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24절기 문화는 밥과 약의 분리, 일과 놀이의 단절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소외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먹거리가 시간의 흐름을 파괴하고 느림의 미학-삭히고 절이는 과정-을 파괴하는 反생태적 실상을 가중시키기 있는 작금의 현실을 떠올리면 그 이유가 분명해 질 것이다. 교회의 예배력 속에 이처럼 절기문화가 지닌 먹거리, 일 그리고 축제(쉼) 등이 함께 아우러질 수 있다면 기독교의 예배는 지금처럼 건조하지 않고 한층 더 생태적이며 공동체적이고 건강한 축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주지하듯 24절기가 만든 의식주 문화는 서구와 달리 心身일원론과 生體一者론을 근거로 한 相生相剋의 틀에 근거해 있다. 이는 身土不二的 인간이해의 총체적 측면으로서 24절기 문화 속에 담긴 사상적 토대이자 이론적 배경들이다. 心身一元이란 교감신경(현재의식, 자율성)과 부교감신경(잠재의식, 非자율성)간의 상호 조화를 말하며 生體一者는 인간 몸이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인 것을 뜻하고 相生相剋이란 이런 인간이 자신 밖의 자연과 교감하여 생존하는 방식에 대한 총체적 표현일 것이다. 특별히 相生相剋은 절기, 방위, 인간의 오장육부, 인간 감정등과 먹거리간의 관계에 대한 유기적 설명체계로서 생태학적으로 정위된 24절기 음식문화의 이론적 토대라 볼 수 있겠다.

 

여기서는 범위를 줄여 주로 음식과 절기 그리고 인간의 몸(장기)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야 옳을 듯싶다. 절기상의 봄(木)은 色으로는 푸르며 인간 몸의 臟器 중 ‘간’에 해당하는 것인 바, 감정으로는 분노(怒)와 유관하다. 그렇기에 간이 나쁜 사람은 화를 잘 내며 얼굴 빛 역시 푸르게 변할 것이다. 이 경우 건강을 위해 분노를 삼가는 것이 중요하고 봄철에 나는 푸른 미나리가 간의 회복에 제격이다. 절기 상 여름(火)은 열이 많은 절기로서 색으로는 붉다. 장기로서는 심장과 소장이 해당된다. 인간 감정으로는 지나친 기쁨이 해당될 것이다. 대개 얼굴빛이 붉은 사람은 심장 계통에 병을 앓을 확률이 크다한다. 결명자와 같은 붉은 색을 띠는 여름철 채소나 과일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체에 있어 胃(土)는 중앙에 위치하며 걱정, 근심과 같은 감정에 영향을 쉽게 받는다. 위가 약한 사람의 경우 얼굴빛이 누렇게 변하는 것이 특색이다. 위장병의 치유를 위해 역시 누런색을 띠는 현미 죽, 양배추 그리고 감자 즙이 좋을 것이다. 가을(金)은 색으로 백색을 띠며 인체로서는 폐와 대장이 해당된다. 감정으로는 슬픔이고 폐가 나쁠 경우 얼굴빛은 늘 상 희다. 치료를 위해 역시 흰색을 띠되 많은 열을 지닌 가을 산 뿌리식물들, 더덕, 인삼 등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겨울(水)은 방위로는 북쪽이며 색으로는 짙은 물 색깔인 검푸름이며 감정으로는 공포심과 관계있다. 신체 내 장기로는 신장과 콩팥이 이에 해당된다. 대개 신장병 환자들은 공포심이 많고 얼굴색이 검푸른 것이 주된 특징이다. 치유에 좋은 먹거리 역시 검정색을 띠는 미역, 검정깨, 검정 콩 등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음식들은 물을 먹히게 하는 특색이 있는 까닭이다. 정월 대보름에 검정콩을 먹는 관습은 겨울철 부족했던 신체 내 물을 공급할 목적에서였다.

 

이외에도 절기와 관계된 그리고 밥과 약을 하나로 보는 이 땅의 음식문화의 예는 부지기수로 많다. 겨울철의 쌀밥과 여름의 보리밥 문화가 또 다른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보리란 음식은 본래 추운 겨울 밭에서 자라기에 자신의 몸속에 더운 성분을 간직하고 있다. 인간 몸은 무더운 여름, 자신의 몸을 차게 하여 더위를 이기고자 했으나 차갑게 된 몸을 보호하여 전체적으로 중용을 이루게 한 것이 바로 보리밥이었던 것이다. 반면 쌀은 더운 여름에 성장했던 탓에 오히려 자신 속에 차가운 성분을 지녀야 했다. 한마디로 보리와는 정반대로 찬 음식이란 사실이다. 겨울철에 인간이 차가운 성분의 쌀밥을 먹었던 것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의 온도가 상승했던 바, 더워진 몸의 상태를 본래대로 되돌리려는-균형 잡으려는- 목적에서일 것이다. 또한 가을로 접어든 추석 명절 때 토란국을 먹는 것 역시도 여름철 수없이 먹었던 푸성귀들의 독성을 해독하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절기음식(자연)과 몸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밥이 곧 약이 되는 지혜가 우리들 음식문화 속에 담겨져 있다. 몸이 병들면 정신 역시 황폐해 지는 것이 명백한 현실에서 종교가 음식문화에 무지한 것은 反생태적일 뿐 아니라 참으로 어리석고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多夕의 말대로 ‘몸성히’를 통해 ‘마음이 놓이고 그 마음에서부터 자신의 ’바탈‘(本然之性)을 태울 수 있는 영적 힘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재론하지만 필자가 ‘24절기 ’문화를 교회 예배력 속에 편입시키려는 이유는 종교와 음식(건강) 더욱 크게는 종교와 생태 나아가 일과 쉼(축제)의 상관성을 명확히 말하기 위함이다. 일(노동)이 없는 사람에게 안식(쉼)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도 안식일을 지키라 강요하는 오늘의 기독교가 깊이 유념해야 할 사안이다. 결국 사람의 영적 변화는 몸 적 건강의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 바, 정작 몸은 먹거리의 도움 없이 온전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3. 기독교 예배력을 통한 ‘24절기’ 문화의 뿌리내리기

  그렇다면 이 땅에 들어와 서구 기독교로서가 아니라 토착화된(될) 종교로서 기독교는 어떻게 우리의 절기문화(음식규례)와 만나 새로운 종교儀式, 곧 예배력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성서 속의 생태적 음식문화를 맘껏 존중하되 그것만을 진리로 여기는 累를 범하기보다 그를 능가하는 ‘24절기’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이 훨씬 더 기독교 자신의 본래적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껏 기독교가 자연을 지배하는 有爲적 문화를 일궜으나 이제는 이 땅에서 無爲(자연)의 존재양식을 창조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궁극적으로 관심하는 신학적 주제이자 결론이겠으나 본격적인 논의는 이후 작업으로 미룰 것이며 여기서는 본 주제에 대한 소견을 간략히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즉 봄의 절기 문화인 입춘과 곡우, 그리고 가을의 절기문화인 백중과 추석을 기독교 예배력과 관계 시켜 생각해 볼 작정이다.

 

주지하듯 24절기 문화에서 으뜸은 절기가 봄으로 접어든 입춘이다. 음력 정월에 입춘이 있다는 것은 농사를 짓던 민족에게 큰 의미를 지녔다. 새해의 첫 시작을 입춘과 함께 시작하며 한 해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설날과 대보름은 바로 입춘의 축제였다. 특히 상원이라 불리는 대보름은 양기가 충만한 때로서 입춘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냈다. 우선 입춘이 되면 마치 과거 이스라엘 민족들이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려 했던 유월절 의식처럼 春視라 하여 기둥이나 천정 등에 立春大吉, 建陽多慶... 의 글을 써 붙여 놓곤 하였다. 역시 나쁜 일은 물러가고 경사스런 일들만이 가득차기를 바랐던 것이다. 곡우에 이르면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논농사를 위해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만드는 때로서 농사가 부정 타지 않도록 특별히 마음가짐에 온 힘을 쏟았다는 기록이 우리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 말 그대로 곡우는 비가 내리는 절기로서 흙을 부드럽게 하여 흙으로 하여금 생명력을 잉태토록 하는 때이다. 땅의 생명력을 하늘의 비와 관계시켜 이해하는 것은 분명 종교적 발상이었다. 靈이란 글자가 무당이 자신의 입으로 이 땅에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형상을 지녔던 까닭이다. 결국 양의 기운이 충족하여 온 산하가 생명을 품게 된 절기가 된 것이다.

 

이렇듯 입춘을 기점으로 시작된 24절기 문화는 성탄절을 예배력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기독교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탄절은 본래 로마시대 이교도의 태양신의 생일로서 밤의 길이가 점차 짧아지기 시작하는 동짓날이었다. 4세기 중엽 성탄일과 이날이 중첩되어 지켜지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삶을 표현하는 데 적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예배력에 있어 먼저 생겨난 것은 부활절이었다. 니케아 종교회의(주후 325년) 이래로 부활절은 춘분이후 滿月이 지난 첫 일요일로 정해졌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신 이날 역시도 이교도의 봄의 축제 즉 파종의 시기와 일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의 핵심 절기인 성탄과 부활이 이 땅에서는 24절기 문화 중 봄의 축제와 결코 무관할 수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신학적 판단이다. 기독교의 예배력 속에 24절기 문화의 본질이 녹아내릴 경우 음식문화- 일명 ‘몸’성-을 잃어버린 서구 기독교에게 그 가치를 되찾아 줄 것이다. 이때 예배는 비로소 밥과 약을 분리시키고 일과 놀이를 나누며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 문화에 맞서 성서 속에 함의된 기독교 고유한 생명문화를 정초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

 

 다음으로 가을은 음력 7월경인 입추로부터 시작한다. 수확의 절기이기도 하다. 이 때 百種과 추석 같은 민족의 축제(속절)로서 기념 되곤 하였다. 음력 7월 15일 백종은 일로부터 자유롭게 된 농부가 흙 묻은 호미를 걸고 발을 씻어 하얗게 만들었다는 데서 흰 ‘白’ 자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100가지의 씨앗을 거둬 내년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白’자를 사용하였다는 말도 있다. 불교적 해석을 덧붙이자면 어느 날 바닷가 살던 白中이란 목동(일꾼)이 옥황상제가 거북이를 불러 백성들의 죄가 크니 비바람을 불러 이들을 멸하라는 명령을 엿듣게 되었다고 한다. 백성들의 안위가 걱정된 백중은 옥황상제 목소리를 흉내 내어 거북이를 다시 불러내었고 비는 내리되 바람은 불지 않도록 그에게 고쳐 다시 명령하였다. 이후 백성들이 무탈한 것을 보고 대노한 옥황상제는 백중을 잡으려 했으나 그는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 백종의 불교적 전승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백종이란 절기 속에 세상을 뒤집어 보다, 혹은 거꾸로 매달리다‘란 뜻이 내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가난한 백성들의 처지를 생각하여 그들 처지를 반전시키는 지혜가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24절기 문화로서 백종은 주지하듯 흙일을 끝낸 머슴들에게 옷과 음식을 주고 자유를 허락하는 세시풍습으로 발전되었다. 이는 중세 때 반상의 신분을 역전시킨 ’바보 제‘를 떠올리며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본래 평등했으나 불평등해진 사회 구조를 단 며칠이라도 원점 화시키려는 백종의 본뜻인 성서의 희년정신, 그리고 안식일 전통과도 충분히 맥을 같이 할 수 있을 법하다. 본래 노동이란 그것을 통해 자신의 본질(하느님 형상)을 이뤄가는 것으로서 상품으로 전락한 자본주의의 실상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기에 쉼과 축제를 허락하는 백종의 절기 문화는 성서적으로 새(新)출애굽을 상징하는 오순절 사건 속에 통섭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백종으로부터 한 달 후인 음력 8월 15일은 년 중 가장 큰 민족의 명절로서 서구 기독교의 추수감사절과 견줄 수 있다. 가을 한 중턱에 있다하여 한가위, 중추절이라고도 불렀다. 자연이 준 풍요로움에 감격하여 조상들은 보름달을 보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처럼만 될 것’을 소망했던 것이다. 햅쌀로 술을 빚고 송편을 만들었으며 무와 호박을 섞어 시루떡을 쪘고 앞서 말했듯 여름철 푸성귀의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토란국을 먹었으며 가을철 실과인 밤, 대추, 감등의 열매로 부족한 유기물, 비타민을 섭취했던 것이다. 백종이 수평적 인간관계를 회복하려던 것이었다면 추석은 조상과 하늘을 향한 수직적 차원의 관계 복원이 핵심이었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은 지금도 추석을 맞는 우리들 한국인의 보편적 일상이 된 것이다. 대다수 기독교가 조상 제례를 우상숭배로 치부하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일 뿐이다. 조상제례란 생명의 연속성 내지 삶의 지속성에 대한 감사를 근간 삼은 것으로서 오늘의 자신의 존재를 위해 수없는 조상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고자 하는 표현이었던 까닭이다. 생명을 허락한 조상을 기억하며 자신도 이후의 생명을 이어갈 것이며 그 생명을 사람답게 키울 것을 다짐하는 것이 조상제례의 핵심인 것을 기억할 일이다. 누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 역시도 모든 인류의 조상이 아담을 거쳐 하느님께로 이른 것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이점에서 기독교가 조상제례를 부정하는 만큼이나 유교가 하늘을 도외시 하는 것 역시도 수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국 가을 축제를 통해 ‘24절기’ 문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생명의 연속성에 대한 이해이자 감사였던 것으로 이 역시 성서적 본뜻과 결코 무관치 않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운 선물을 하늘이 인간을 품어 허물을 용서한 탓이라 믿고 감사한 것이 유대인들의 맥추절이고 장막절이었던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자신의 예배력 속에 가을의 축제를 儀禮화 하는 것 또한 전혀 생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 앞에 겹손하며 약한 사람을 배려하고 이웃에게 열린 존재로 살고자 하는 것 그리고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에 대한 은총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백중과 추석의 핵심인 까닭이다. 일과 쉼이 어우러진 신명난 세상을 만들고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 또한 24절기 문화가 주는 선물일 진대 이런 절기 문화 속에 기독교 예배력이 접목될 경우 기독교는 비로소 영육을 아우르는 성육신 종교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가는 글

   하지만 대다수 서구 기독교 그리고 이 땅에 유입된 기독교 역시 어느 덧 백여 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이 땅의 문화와 반목한 채 도시화의 과정을 되풀이 하여 反생태적 종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오로지 ‘영적’ 종교로서의 역할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로써 본래 성서적 종교가 간직했던 삶의 지속성을 위한 생태적 비전을 상실했고 먹거리 문화를 송두리째 잊고 말았으며 철저히 서구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식민지적 양상을 강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일찍이 프랑스 신학자 엘룰은 <도시의 의미>라는 책에서 인류 최초로 도시를 만든 사람을 카인이라 하였고 도시의 속성을 스스로의 안정을 찾고자 효율성, 익명성 그리고 자율성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 공간이라 정의했다. 소비를 미덕삼고 검소와 절약의 가치를 비웃으며 돈으로 먹거리는 물론 남의 시간, 재능 심지어 생명까지도 살 수 있게 장소가 바로 도시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카인의 후예로서 죄인 된 실존의 모습을 느림의 미학을 잃고 빠름의 삶의 양식에 종속된, 도시 문화에 식민화된 삶의 현실에서 찾고 보았다. 24절기 문화를 잊고 종교조차 도시적 생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에서 우리는 필이 죄인이란 것이 엘룰의 지적이다.

 

따라서 본고는 24절기 문화를 토착화시킴으로써 우리는 성서적 종교가 지향했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시화, 자본화되는 과정에서 잃었던 ‘밥이 약되는’ 먹거리 문화를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렇기에 다시 강조하지만 밥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하늘과 같은 것일 뿐 아니라 제철, 자기 땅 음식이야말로 최상의 약인 것을 가르치는 ‘24절기’ 문화는 반드시 기독교 예배력 속에서 재구성 되어야 옳다. 이것이 反생태적, 교리적, 이원론적 종교로 평가받는 기독교가 생명적, 實學적, 전일적 종교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더욱 근본적으로 성육신의 종교로서 자신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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