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교황의 뜻에 따라…희생과 나눔 실천할 것”
2014.1.13
염수정 추기경 축하행사서 밝혀
명동성당 주교관 앞 300여명 모여
정진석 추기경도 참석해 축원
염 추기경 “두렵고 떨리는 마음”
조계종도 축하 메시지 보내
SNS선 한국 가톨릭 앞날 논의
“신자가 지역교회 수장 추대” 주장도
한국의 세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대주교(오른쪽)가 13일 오전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앞마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으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으며 손을 맞잡고 있다. 염 대주교는 2월22일 로마 바티칸에서 열리는 추기경 서임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정아 기자 leej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로마 바티칸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우리나라 세번째 추기경이 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일성은 교황에 대한 순명과 함께 ‘교황의 뜻’ 풀이였다.
염 추기경은 13일 오전 11시 서임 축하 펼침막이 내걸린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 앞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 축하행사’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과 교황님의 뜻에 순명해 추기경 임명을 받아들였다”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또 “저의 작은 희생과 나눔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갈등을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교회가 되도록 미력이나마 힘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성당 마당에 모인 300여명의 신자와 취재진을 향해 “여러분 무척 춥죠?”라고 말문을 연 뒤 “저만 빼고 많이들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 많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더 두렵다”는 첫 소회를 표현했다.
이 자리에서 그의 전임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은 “염 추기경의 임명으로 한국 천주교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으며, 서울대교구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교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축원했다.
이웃종교의 축하도 이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연합하고 일치하는 일에 앞장서달라”고 요청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축하메시지를 통해 “종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기대를 하고 있다”며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벗이 되고, 행복과 평화라는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게 모든 종교인의 사명일 것”이라고 밝혔다.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도 “가톨릭이 추구하는 화해와 일치에 힘쓰는 한편, 시대가 원하는 화두를 잘 풀어서 하나의 세상,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희망의 주춧돌이 되어주시길 기원드린다”고 밝혔다.
에스엔에스(SNS) 등에선 염 추기경이 서임된 이유와 한국 가톨릭의 향후 전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됐다.
한 가톨릭 언론인은 한국 가톨릭교회가 로마교황청에 세계에선 9번째, 아시아에선 첫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고, 서울대교구는 이와는 별도로 상당액을 교황청에 내고 있다면서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교황청의 사정’을 이번 서임의 한 이유로 설명했다. 그는 “(추기경 서임에) 교황대사나 기존 추기경 등 소수의 의견만이 반영되는 데서 벗어나 한국 교회 문제는 한국 교회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도록 지역 교회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지역 교회의 수장은 지역 신자들이 추대할 수 있는 구조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가톨릭계의 다른 논객은 “대체로 중도적인 인물인 염 추기경이 한국 민주화의 경험을 배경으로 바티칸 은행 문제 등 교황청 개혁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며 염 추기경이 한반도 통일 문제를 넘어 세계적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고 발언하는 추기경이 되어 줄 것을 소망했다.
한 평신도 학자는 “지난번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 약간 개혁적인 분들이 되었을 때 이번 인사에선 약간 보수적인 분이 되지 않을까 예측했다”며 “균형을 맞추는 교황청의 인선 특성상 다음번엔 좀더 개혁적인 분이 서임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염 추기경의 서임을 놓고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것은 한국의 변화무쌍한 사회 정치 상황에서 가톨릭과 추기경의 무게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교황에 대한 순명을 절대시하는 가톨릭의 특성상 염 추기경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자연스럽게 발을 맞출 것이란 관측이다.
염 추기경은 이날 “교황님이 바라시는 대로 아시아 복음화와 북한 교회를 도울 수 있는 방법과 화해와 일치의 길로 나가는 노력을 다하겠다”며 여러차례 교황을 언급했다. 그가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며 “제가 이 시대의 징표가 무엇이고 어떻게 복음의 빛으로 밝혀야 할지를 끊임없이 찾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 지혜와 용기를 청한다”고 간구한 것도 교황과 발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13일 바티칸에서 외교사절단에게 새해 연설을 하면서 “한반도에 화해의 선물을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고 싶다. 한국인들을 위해, 이해 당사자들이 합의점을 찾아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리라 믿는다”며 남북한의 화해를 촉구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박민희 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