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통통통]
악습의 고리를 딛는 관성에 벗어나 희망을 열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은 변신을 위해 더딘것 같지만 빠른 길. 그림 김영훈 화백
일시적인 기분에 좌우되어 작심삼일하지않고 무엇가를 지속해 습관을 들이고 있는가에 의해 운명이 달라진다. 그림 김영훈 화백
당신은 씨를 뿌리지않고 수확만 생각하는 거지나 도박군의 사고방식을 지니지는 않았는가. 그림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새해 덕담도 다 못 건넸는데 한달의 반이 지나다니. 한 지인은 눈 한번 깜박하면 설이고, 또 한번 감았다 뜨면 추석이라며 1년에 ‘설, 추석, 설, 추석…’밖에 없다고 한탄한다. 마치 케이티엑스 열차에 앉아 보는 풍경처럼 세월이 흐른단다. 그러니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남는 게 없다. 마음 바삐 달리다 보면 연초에 무엇을 다짐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진다. 작심삼일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식만 먹고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마음을 먹는다. 섭식이 건강에 중요하듯이 ‘먹은 마음’(작심)이 마음 건강과 미래까지 좌우한다.
그런데 조급하면 마음먹는 것도 다급해진다. 뱃살과 비곗살만 키워온 사람이 올해는 공유나 원빈 정도의 몸짱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나, 바다만 건너면 인사말도 더듬거리면서 올해는 원어민 못지않은 영어 실력을 갖추겠다고 한다. 씨를 뿌려 키울 생각을 하기보다는 열매만 고대한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무리해 뺀 살은 요요현상을 동반한다. 영어가 하루아침에 능수능란해질 리도 만무하다. 영어를 잘하는 지인은 ‘한국인은 영어를 빨리 끝내려고 죽도록 덤비든지, 제풀에 나가떨어져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뿐’이라고 한다. 자기처럼 20~30년을 줄곧 끈기있게 조금씩 하려고 하기보다는 쇠뿔도 단 김에 뽑겠다고 덤빈다는 것이다.
씨도 안 뿌리고 수확하려는 것은 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 거듭나겠다고 하고, 불자는 단번에 견성해 부처가 되겠다고 한다. 십자가를 진 헌신이나 공덕을 쌓는 과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욕망에 눈먼 이들의 결과물이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다. 개인이나 국가나 씨 뿌리지 않고 대박을 기대한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근대적 합리성을 지녔다면 그런 미신에 현혹될 수는 없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건 지식이 아니라 상식이다. 대업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년대계에 따른 백년의 노력, 천년대계에 따른 천년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바쁜 때일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서두르면 필시 시행착오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백일기도, 천일기도, 만일기도를 했다. 구습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습관을 길들이는 ‘과정’ 없이 삶이 개선될 수 없다. 기도든 운동이든 공부든 정책이든 끈기있는 노력이 성패의 관건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체조나 108배를 하겠다는 작심이든, 가족과 친구들의 속마음을 편견 없이 들어주어 소통하겠다는 작심이든 일단 100일은 지속해야 기존의 관성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도로아미타불이 되지않으려면 이렇게 천일은 지속해야 한다. 그 때 새 습관이 몸에 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함은 훈련과 습관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훈련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성격을 만들고, 성격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붓다는 “훌륭한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업과 습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고, 그런 물방울이 다이아몬드를 자른다. ‘한 방울, 한 방울, 또 한방울….’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