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심정] 나를 울린 이 사람
헌신하다 떠난 그의 마지막 눈빛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남편과 슬퍼하는 아내. 영화 <편지>의 리메이크 태국영화 <더 레터> 중에서
그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이다. 3년 가까이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9월 훌쩍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와 자신을 꼭 닮은 사랑하는 딸을 남겨둔 채로 말이다.
내가 정정오씨 부부를 알게 된 것은 평신도 교회인 겨자씨교회에서 첫 설교를 한 7년 전 어느 주일을 바로 지나서였다. 옳은 신앙을 지녔으나 함께하고 싶은 교회를 찾지 못해 숱한 세월 방황하다 마음을 정해 그곳에 안착한 참 신실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는 유능한 과학자였다. 유수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동료들과 장영실상을 수상할 정도로 브라운관 혁명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업무에 지쳐 낙오하는 동료나 부하직원을 한번도 내친 적 없었으며 그들이 남긴 궂은일까지 홀로 감당하다 쓰러졌다는 회고담이 이어졌다. 그가 간 뒤에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일까. 장례식장은 평소 그의 말없는 헌신을 기리며 흐느끼는 동료들의 고백으로 슬픔의 곡조가 가득했다.
교회에서도 그랬다. 그의 기도는 항시 시골 중학생처럼 단순하고 소박했다. 누가 묻는 말 이외에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본 적도 없었다. 그에게 맡겨진 소임은 설교자가 단에 설 때 말씀을 잊지 않고 녹음하는 일이었다. 췌장암으로 그렇게 고통받으면서도 병원에 실려 갈 때까지 그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고통으로 아내와 가족들이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며 그 아픔을 소리 죽여 참아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살 것을 끝까지 믿었고, 그런 그를 하늘이 소생시킬 것을 나 또한 그리 확신했다.
사실 그의 암 발병은 그의 아내가 위암 선고를 받고 치료하던 중 일어난 설상가상의 일이었다. 신학자로 살아온 나에겐 신정론(神正論·신이 선하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지)의 물음이 이론이 아닌 절실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아내는 건강해졌고 딸아이 역시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였으니 하늘이 다른 한쪽 문을 열어준 것 같아 참 고마웠다. 하지만 힘겨워하는 아내를 염려했고 끝까지 살기를 바랐던 그에게 목사로서 마지막을 받아들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했고, 순간 그와 마주친 물먹은 눈빛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원망과 체념, 안도와 감사, 그 모든 것을 담은 그의 눈빛이 주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하나 그 중압감을 피하지 않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둘 것이다.
그의 마지막을 인도한 목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하늘이 이렇듯 선한 사람을 곁에 두셨던 것을 사는 동안 감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