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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나는 70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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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고 신나는 70대라면!
[인터뷰] ‘부부 배낭여행가’ 김현 · 조동현 부부

 

2014.1.20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수진 기자  |  sj1110@catholicnews.co.kr

 

 

78세 할아버지 칼 프레드릭슨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담한 이층집에 수천 개의 알록달록한 풍선을 매달기로 했다. 헬륨가스를 가득 채운 풍선들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팽팽해진 줄을 따라 움찔거리던 집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목적지는 남아메리카의 ‘파라다이스 폭포’. 이렇게 풍선만 매달면 떠날 수 있는 것을, 함께 모험을 꿈꿨던 부인이 옆에 있을 때엔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었다. 만화영화 <업>(2009)의 주인공 칼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99%의 모습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 24년 동안 꿈을 ‘살고 있는’ 부부가 있다. 여행가가 되기 위해 남편은 32년을 일한 방송국에서 조기 퇴직했고, 아내는 정년을 1년 남기고 학교 영어 교사를 그만뒀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다녀온 여행지는 무려 165개국. 함께 쓴 여행서적만 3권이고, 한국방송(KBS)의 장수 프로그램 ‘세상은 넓다’에는 방송 첫 해부터 2007년까지 12년간 출연했다.

 

‘대한민국 부부 배낭여행가 제1호’라고 불리는 두 사람은 최근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도서출판 행복에너지)라는 책을 펴냈다. 부부가 함께한 여행과 신앙생활, 황혼의 일상, 죽음에 대한 자세까지 두 사람의 인생 여정을 정리한 책이다. 김현 · 조동현 부부를 만나 20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연주하는 두 사람의 인생 7악장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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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떨어져 있으면 어색하다”고 말하는 김현 · 조동현 부부 ⓒ한수진 기자


김현 씨가 여행가가 되기로 결심한 때는 직장생활 경력이 10여 년을 넘어서던 즈음. 은퇴 후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는, 당시만 해도 국내에 극히 드물었던 해외여행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행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손바닥 크기의 종잇조각부터 두꺼운 책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양이 많아 국제우편으로 한국에 보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여행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부부 배낭여행가’였다.

 

“저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조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아요. 예전부터 한국에서 해외여행가 하면 김찬삼 교수를 으뜸으로 꼽았는데, 제가 같은 분야에서는 그분을 넘어설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했죠.”

조동현 씨는 남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오랜 시간 남편이 여행을 준비해온 과정을 지켜봤던 영향도 컸지만, 무엇보다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꿈꿔왔기 때문이었다. 조 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세계 각 나라의 수도를 다 외울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모험 소녀’였다.

“저는 뉴욕에 꼭 가보고 싶었어요. 오빠들 방에 들어가 보면 <라이프>, <타임> 같은 책들이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뉴욕의 화려함에 매료됐어요. 어느 날인가 본 다른 책에는 세계 공황기였던 1940년대 뉴욕의 처참한 광경이 실려 있었죠. 그래서 남편과 첫 배낭여행에서 뉴욕에 도착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말로만 듣던 마천루가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깜짝 놀랐던 일도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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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여행이 주는 설렘에 취한 두 사람 (사진 제공 / 김현 · 조동현)


두 사람은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1989년에 첫 여행을 떠났다. 그 후 조 씨의 방학을 이용해 틈틈이 여행을 다니다가 퇴직을 앞당겨 배낭여행을 본업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패키지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부는 ‘경비 절약’을 제일 먼저 꼽았다. 직접 숙소를 예약하고 일정을 짜는 대신 패키지 상품에 비해 비용을 절반 이상, 많게는 3분의 1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취향에 맞춰 일정을 정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패키지 상품에 포함된 ‘쇼핑’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두 사람은 여행 전 많은 공부를 한다. ‘10일 여행을 위해 100일을 준비한다’는 것이 이들이 정한 여행 원칙 중 하나다. 한 번 여행을 위해 여행 정보가 담긴 노트 세 권을 만들어갈 정도인데, 그래서 종종 현지인들도 모르는 숨은 보석 같은 곳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동안 수집한 여행 자료가 방 두 개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지만 최근 실버타운으로 이사를 오면서 박물관 등 몇 곳에 기증했다. 그래도 여전히 사과박스 50개 분량의 자료가 남아있어 이를 필요로 하는 기관을 찾고 있다.

 

두 사람의 열정은 ‘2Hyuns’ Travel Club’과 ‘문화 산책 청류회’ 창설로 이어졌다. 부부의 이름 중 ‘현’ 자를 따서 지은 여행 클럽은, 이들의 여행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청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 연초에 여행 계획을 미리 알리면 15명 내외가 한 그룹이 돼 두 사람이 짠 일정에 따라 함께 여행을 한다. 지난 15년간 매년 3~5차례씩 여행을 다녀왔다.

 

‘맑은 물이 흐르는 모임’이라는 뜻의 청류회는 특히나 애정을 갖고 꾸려온 모임으로 18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달에 200회 모임을 맞이하게 돼 두 사람이 더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김 씨가 매일 신문 네 개를 정독하면서 선정한 공연이나 전시를 매월 1회 관람하고 식사를 하며 소감을 나누는 모임이다. 회비는 입장료와 식대를 합쳐 3만 원 정도다. 대부분 공연장이 어르신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수준 높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는 덕분이다.

 

김 씨는 “그 외에 우편물 비용이나 초과되는 식사비용은 모두 우리 독지가 선생께서 기부를 하신다”고 부인 조 씨를 보며 웃었다. 4년 전부터 조 씨가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다. 조 씨는 “비슷한 또래들과 함께 문화를 공유하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며칠 전 200회 모임에서 덕수궁 미술관을 관람했어요. 날이 참 추웠는데, 미술관 입구에 서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우리 부부를 보고 회원들이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들 같으면 이렇게 못한다고요.” (김현)

 

“쉽지는 않은 일이죠. 매월 회원들에게 우편으로 공지를 보내는데, 타자를 치기가 어려워서 며느리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제가 전화로 내용을 불러주면 며느리가 문서를 만들어서 보내주죠. 물론 수고비는 넉넉하게 챙겨주고요. (웃음) 그래도 이렇게 두 단체를 이끌어가는 건, 이 일도 봉사라고 생각하고 또 70대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살고 싶어서예요.” (조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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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알래스카 최북단 배로우를 여행했다. (사진 제공 / 김현 · 조동현)


질문에 답을 하는 중에도 두 사람은 습관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머리로 인식하고 꾸며낸 미소가 아니었다. 0.1초의 차이도 없이 동시에 짓는 진심의 표현이었다. 두 사람이 쓴 책에서도 그랬다. 살아온 날과 일상의 삶을 담담히 써내려갔을 뿐인데,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존경과 애정이 매 문장마다 묻어났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주인공들의 처지가 공감을 이끌어내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한참이나 비켜서 있을 수 있는 김현 · 조동현 부부의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질문을 받고 아주 옛날 결혼 초기를 떠올려보게 됐어요. 부부라는 것이 무엇일까. 저희도 처음에는 부딪히는 부분이 많이 있었죠. 그런데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보니, 서로가 지루함 없이 여전히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비결은 믿음과 존중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이런 감정을 내 안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한 쪽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제일 큰 비결이었던 것 같아요.” (조동현)

 

두 사람은 “혼자 있는 게 참 어렵다”고 할 만큼 무엇이든 함께하는데, 특히 부부가 모두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일원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혼인성사를 준 고(故) 오기선 신부, 평소 가까이 지냈던 유수일 주교의 영향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카리스마를 따르게 된 두 사람은 4년이 걸리는 엄격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종신서원을 했다.

부부는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만나 신앙생활이 구체적인 삶으로 변하는 과정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마음에 겸손이 채워지고, 작은 베풂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다는 그들은 “프란치스칸이 된 것이 참 좋다”고 말했다.

 

인터뷰의 마지막에 김 씨는 경주의 한 성당 주보에서 읽은 ‘목숨의 볼펜’이라는 글을 들려줬다. 꿈속에서 하느님에게 받은 금빛 볼펜을 신이 나서 쓰다 보니 마침 중요한 내용을 쓰던 때에 잉크가 다 떨어졌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하느님은 “네가 받은 목숨도 이와 같다”면서, “네가 적는 내용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값진 것들이어야 하니, 네 목숨을 함부로 하지 마라”고 가르치셨다는 내용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성무일도와 묵주기도를 바치고, 아침을 먹은 다음 신문을 읽고, 운동을 하고, 점심 후에 그날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서 기도로 하루를 정리하는 두 사람의 일과는 단순한 하루 시간표를 뛰어넘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면서, 매일의 시간만큼 한발자국씩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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