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스님이 의자 안 내준 까닭, 알고보니 자비?
시민행성 인문학캠프서 “자비는 보편...우리 사회 보편성 키우면 모두 행복”
2014년 02월 11일 <불교닷컴>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한때 ‘남에게 험한 말 하지 말라’ 등 불교의 계율에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왜 이리 많은지, 왜 ‘~하지 말라’고만 하는지 불만이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이것이 자비의 기초이고 전부였다. 진정한 자비는 노숙자를 수용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노숙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우리 행위, 우리 사회의 정책·시스템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았을 때 우리 사회의 병폐도 자연히 없어진다.”
법인 스님(일지암 회주·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은 11일 해남 대흥사에서 열린 시민행성 인문캠프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스님은 ‘우리 사회에서 자비의 첫마음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주제의 강연을 “익숙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라”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감자튀김만 먹어선 찐 감자 맛 몰라
스님은 참가자들에게 “대흥사에 오니 어떠냐”고 물었다. “밤이 길다”는 대답이 나왔다. 스님은 “서울과 해남, 하루 24시간이 똑같은데도 이곳의 밤을 길게 느끼는 것은 낯설기 때문이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삶의 공간을 옮기는 시도가 공부의 첫걸음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자기가 처한 환경의 익숙함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이것은 안 먹어봤는데, 안 해봤는데, 안 가봤는데”하며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스님은 “익숙함에서 탈피하려 하지 않고 두려움의 덫에 갇혀 있다면 문이, 생각이 열리지 않는다. 감관도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맥도널드에서 프렌치프라이만 먹어본 사람은 찐 감자의 맛을 알지 못한다는 설명, 경계를 허물고 무엇이든 배우고, 어떤 책이든 읽고, 누구든지 만나야 하고, 종교도 덫에 갇히지 말고 무엇이든 섭렵해야 한다는 당부가 이어졌다.
스님은 “행사를 위해 의자를 제공할까 고민했다. 의자에 익숙한 여러분에게 좌식의 낯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자비라고 생각했다. 감동적이지 않냐”는 우스개도 했다.
내 것에 집착 마라. 그래야 바로 보인다
스님은 대한간호사협회 등을 만든 선교사 엘리자셰핑(한국명 서서평)을 소개하며 “이웃종교인의 삶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기독교에서 검소하면서도 헌신적인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그대로 느낀다. 하나의 종교만 알면 자기 종교도 모른다”고 했다.
스님은 “<화엄경>을 책으로만 읽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면서 대안운동,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 만나고 나니 그제야 <화엄경>이 이해가 됐다. 낯선 곳에서 다양한 시선을 익혔을 때 자기를 바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스님은 “배움에 있어 금 긋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한 종류 책만 읽고, 한 분야만 아는 사람, 그래서 보수주의·근본주의는 옳지 못하다. 자유롭게 열린 눈으로 봐야한다. 진지한 탐구를 하려면 두려움과 익숙함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비는 지극히 보편적인 마음
스님은 “자비는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라고 하고, 유교에서는 인이라고 한다”며 “불설(佛說)이 선설(善說)이 아니라 선설이 불설이라고 했다. 대장경에 있어서 부처님말씀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행복하게 한다면 대장경에 없더라도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옆사람을 꼬집어보라”고 했다. 그 옆사람에게는 “화가 나느냐? 화가 났으니 때려봐라”고 했다. 스님은 “맞으면 아프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화가 난다. 굉장히 힘든데 누군가 따뜻하게 말해준다면 고맙다. 이는 피부 종교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나 느끼는 보편성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공부할 때 진영논리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보편적 마음을 찾아 기른다면 우리 삶은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생길 것이다. 자비심 역시 보편적이다”라고 했다.
누구나 마음 갖고 있지만 각기 달라
스님은 “누구나 마음을 갖고 있다. 이것이 보편성”이라고 했다. 이어 “노을빛을 보면 어떠냐. 목탁소리를 들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스님은 “노을빛은 대부분 아름답다고 하는데 목탁소리는 종교에 따라 그렇지 않다고 한다. 노을빛과 목탁소리 둘 다 객관적 상황인데 그렇다. 우리는 보고 듣고 나서 느낌 생각을 구성한다. 소위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는 철저한 조작이다. 이것이 마음이다”라고 했다.
객관적 현실이 따로 있지만 나라는 주관적 마음이 따로 있고 모든 것이 마음으로 포섭돼 있다는 설명이다.
스님은 “한 공간에 50명이 있다면 그곳에는 50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50명의 사람이 그 공간 속에서 제 각각 나름의 생각 사상 느낌 의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삼천대천세계가 있다는 것은 생명이 무수하듯, 각기 다른 마음이 무수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음 한번 돌리면 고통 사라져
스님은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국내에 이주여성이 늘어난 본보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그들을 다르게 본다. 동남아 사람은 하대하면서도 백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우리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고 차별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허구적으로 조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작된 마음 상태가 우리 삶의 전부라 착각한다”고 했다.
스님은 “인간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접촉하고 생각하고[안·이·비·설·신·의] 산다. 이것은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고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보면서 싫다, 좋다 반응을 느낀다”고 했다.
스님은 서울에서 소임 살던 시절 밤늦게 전철을 탄 이야기를 했다. 옆 사람이 삼겹살에 소주를 거하게 하고 담배까지 핀 후라 냄새가 역했다고 했다. 잠시 후 스님에게는 ‘저 사람 직장생활 하느라 참 힘들겠구나. 집에 가면 소중한 남편·아버지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그 사람의 냄새가 역겹지 않았다고 했다.
스님은 “우리는 객관적 상황에 각기 다른 마음을 낼 수 있다. 객관적 환경은 절대적이지 못하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고급음식점에서 좋은 음식을 먹더라도 함께 하는 사람이 별로면 음식맛도 별로가 되고, 좋은 사람과 함께 먹는다면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맛나게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마음공부가 밥은 못벌어도 밥맛 좋게 해
스님은 “마음공부를 잘하는 것은 돈[밥]을 벌수는 없지만 밥맛을 좋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일곱 청년과 일지암에서 한 달 동안 함께 공부했는데, 청년들 스스로 밥 짓는 경험을 하다보니 “밥맛 좋다. 밥이 이렇게 맛난 줄 몰랐다”고 했단다. 이를 스님은 “자기가 직접 밥 짓는데 참여하고 나니 밥이 다르게 보인 것이다. 예전 밥과 지금 밥이 다르지 않지만 밥맛이 달라진 것은 마음공부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님은 더덕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두 아이도 소개했다.
한 아이는 더덕을 책으로 배워 식물도감을 줄줄 외울 정도였지만 그것이 끝이었고, 다른 아이는 더덕을 할머니 집에서 본 것이 전부지만 1시간 동안 만지고 냄새 맡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스님은 “두 아이 가운데 누가 행복지수가 높겠느냐”며 “마음공부는 더덕을 살 수 없지만 더덕의 향기 냄새를 온전히 느끼게 해준다. 마음공부는 불교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성이다”라고 했다.
사회 희망 있으려면 보편적인 것 키워야
스님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으려면 보편적인 것을 확충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누구나 자유롭고 싶지 차별받고 싶지 않다. 존경받고 싶어 한다. 자유 평등 평화 자비 공존 개성 조화 등 누구나 원하고 추구해야하는 보편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이 보편적인 개념들을 우리가 중시한다면 우리 사회 갈등과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우리 사회는 자꾸 이기려고 한다. 이것이 병폐”라고 지적했다. “이긴다는 것은 우리 편의 잘못인줄 알면서도 질까봐 잘못하지 않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지면 먹이를 잃기 때문이다”고 했다. “정치인들 싸움이 그런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친절한 마음만 내도 난 이미 친절한 사람
스님은 “친절한 미소를 타인에게 짓는다고 했을 때 기쁜 것은 나 자신이다. 남이 덕 보는 것 같지만 친절한 마음 냈을 때 이미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왼손을 들어보자”고 했다. “왼손을 들면 왼손을 든 사람이 된다”고 했다. 스님은 “걸어가면 걷는 사람, 웃으면 웃는 사람이 된다. 행위와 그것을 하는 사람이 별개가 아니다”며 “따뜻한· 자비로운·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런 사람이 된다. 그래서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비(慈悲)’는 ‘사랑 자(慈)’와 +‘슬플 비(悲)’의 합성어이다. 스님은 “‘슬플 비’가 중요하다. 이는 슬픈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했다. 스님의 이야기는 전단지로 옮겨갔다. 대부분 받기를 거절하거나 받고 바로 버려버리는 전단지. 한 학생 역시 그랬지만 이제는 정중하게 받고 반드시 읽어본단다.
버리기만 했던 학생이 어느 날, 학원을 개원하는 이모를 대신해 전단지를 나눠주는 경험을 했고 자기가 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바뀌었다는 이야기였다.
스님은 “전단지 줄 때 안 받고 버리는 것은 함부로 하는 마음, 경건하지 못한 마음이다. 그 사람은 함부로 하는 사람, 경전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 “그것을 받는다면 배려하는 사람. 그 자체로 존귀한 사람이다. 존귀한 사람이 존귀한 것이 아니라 존귀한 행위로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물건 귀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귀한 사람 아냐
스님은 박노해 시인의 ‘경운기를 보내며’ 시를 소개했다. 시골 노인이 함께 했던 경운기에 경건하게 잘 가라고 하는 물건을 공경하는(敬物) 내용의 시이다.
스님은 목탁이 훌륭한지 걸레가 훌륭한지를 물었다. “걸레가 왜 하찮냐”며 “걸레 없다면 우리가 깨끗한 곳에서 지낼 수 있나? 쓰레기통도 함부로 발로 차선 안된다”고 했다.
스님은 “인간은 허약한 존재이다. 그런데 교만하다. 동식물 물건에 대해 돈으로 계산하고 함부로 하는 사람은 굉장히 허약한 삶 사는 것”이라며 “자비심의 첫 번째는 모든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밥을 먹고 있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이 나를 먹여주고 있더라. 내가 옷을 입는 줄 알았는데 옷이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건을 공경하는 마음을 냈을 때 보편적 마음 중에서도 최고인 자비심을 함양할 수 있다”고 했다.
스님은 “사랑하라는 것은 하수, 도덕적 교훈에서 자비심을 내는 것도 하수”라고 했다. 절에서는 국수 삶은 물을 뜨거운 상태에서 버리면 혼난다. 반드시 식히고 나서 버린다고 했다.
스님은 “따뜻한 물 땅에 부었을 때 미물이 죽는 것을 넘어서 땅이 아파하기 때문이다. 땅도 감정·체온이 있다고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옆사람이 부처·예수보다 소중해
스님은 “한밤 중 내가 위급할 때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은 부처님·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부처·예수가 아닌 옆사람, 밥 먹을 때는 밥, 숟가락 젓가락이 귀하다는 설명이다. 스님은 “이 마음을 가져야 경건해지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비심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스님은 성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을 소개하며 타인을 진심으로 돕는 마음은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고 햇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 모두 돈으로 주고받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가 거래 관계가 돼 고마운 관계를 잊고 산다”고 했다.
스님은 “고마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인문학을 하고, 자비심을 발동하는 이유”라고 했다. “돈의 관계를 고마운 관계로 바꿨을 때, 예를 들면 식당주인은 손님 덕에 생계를 유지하고, 손님은 식당주인 덕에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할 때 자비심이 일어난다”고 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무자비 경계를
스님은 “우리는 자신이 옳다면서 옳지 않은 사람 미워하고 무시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분노하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며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보고 욕하는 자신을 보라. 행복한 마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스님은 달라이라마와 17년간 중국정부에서 감금 구타 고문으로 고통 받은 스님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달라이라마는 이 스님에게 17년 동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를 물었다. 그 스님은 “하마터면 나를 고문했던 사람들을 미워할 뻔 했다. 그 마음이 들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답했다.
스님은 “우리가 지향하는 자비심은 이렇게까지 가야한다. 정의라는 이유로 분노하는 것은 자비심이 아니다”라고 했다.
스님은 “남에게 자꾸 잘해주고 나눠주는 것이 사랑인줄 안다. 자비심 실천의 중요한 전제는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행위”라며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도와주고 베풀지 않아 고통스러운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제도화·합법화돼서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힘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글은 불교닷컴(www.bulkyo21.com)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