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통통통
신화에 맞선 테미스토클레스의 이성
아리스토텔레스란 탁월한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은 알렉산더(BC 356~323)가 새로 침략지에 들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신전이었다. 이집트에선 암몬 신전을, 바빌론에선 마르두크 신전을 찾았다. 그곳의 신전 사제들은 “우리의 신은 오래전부터 대왕이 오기를 기다렸다”거나 “대왕은 신의 이름으로 세계를 제패할 것”이란 ‘굿뉴스’를 전했다. 생살여탈권을 쥔 알렉산더 앞에서 소신을 지킨 순교자는 거의 없었다. 그리스 세계에서 어느 신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강자’인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선전한 알렉산더는 “‘신의 아들’에게 패배란 없다”란 믿음을 전파했다.
알렉산더 시대 150여년 전에 일어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다룬 영화 <300>(2007년 개봉)에서 그리스 신전 사제들이 머문 바위산 위의 성지에 금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사제들이 이미 페르시아 황제의 금화에 매수당했다는 암시다.
*영화 <제국의 부활>
당시엔 전쟁과 같은 국가의 중대사를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신에게 물었다. 따라서 신의 결정을 전하는 신전 사제와 무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했다. 아테네의 사절단이 델포이 신전을 찾아가자 무녀 피티아는 “어떤 것도 살아남지 못할 테니 대지의 끝으로 도망치라”고 했다. ‘절망적인 신탁’이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우리의 읍·면·동 수준의 집단에 불과해 이들이 똘똘 뭉친다 해도 요즘으로 치면 미국 이상의 강자인 제국 페르시아를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최고 신전의 신탁마저 이렇게 나왔다면 전쟁은 해보나 마나였다. 아테네인들이 매달려 다시 한번 신탁을 내려달라고 떼를 써서 얻어낸 것이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모든 것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겠지만 ‘나무 성벽’만은 파괴되지 않고 도와주리라”는 것이었다. 이때 전통적 신성을 유지하려는 보수파들은 “‘나무 성벽’이란 아크로폴리스를 둘러싼 ‘나무 울타리’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아크로폴리스 안에 있으면 신이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란 주장을 편다. 허무맹랑한 주장도 신의 이름을 빌리면 권위가 부여되는 시대였다.
*영화 <제국의 부활>
그때 그런 신화에 부화뇌동하지 않은 장군이자 정치인이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BC 528?~462?)였다. 하층민이자 첩의 아들로서 자수성가한 그는 육지국가인 페르시아의 약점과 해상국가인 그리스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탁이 말한 ‘나무 성벽’이란 ‘목선’(나무배)을 말하는 것이라며 페르시아 대군을 바다로 유인해 대함대를 궤멸시킨다. 젖먹이 강아지가 공룡을 넘어뜨린 것이다. 훗날 철학자 헤겔이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이보다 명백하게 드러낸 적이 없다”고 칭송한 살라미스 해전에서다. 개봉중인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주인공이 그 테미스토클레스다.
*영화 <제국의 부활>
테미스토클레스가 ‘인간의 이성적 힘’을 보여줬지만 신화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힘을 선점한 이들은 지금도 신화와 믿음을 확산시킨다. 하지만 신의 뜻을 해석하는 이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시대의 명운을 결정짓는 것은 언제나 꿈보다 해몽이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