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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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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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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수녀의 “또래 멘토” 주인공들은 누구?
 
이 글들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인공 청소년들 가슴에는 대부분 아픈 가정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인생의 산전수전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수많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될 경험까지 했습니다.


이 글은 바로  
유혹과 열정, 막무가내 용기로 살았던 자신들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그것을 통해 같은 청소년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또래 멘토입니다.
질풍노도의 또래가 또래에게 들려주는 가식없는 멘토는
동질성과 동지애라는 강한 흡인력으로
또래 가슴에 스며들어 행동으로 옮겨질 것을 믿습니다.


한 편 한 편의 멘토는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퇴소 날이 가까운 아이에게, 때로는 저에게 쓴 편지를 읽고 그 아이를 불러 어느 날 묻습니다.   
“혜민아, 넌 지금까지 인생 경험 많이 했잖아? 그런 걸 겪으면서
밖에 있는 또래에게 꼭 이것은 말 해주고 싶다. 뭐 이런 거 없을까?. 가출하지 마라. 학교 잘 다녀라 이런 식상한 거 말고.”       
질문 받은 아이는 그 자리에서 답변해 주거나, 좀 생각해 보고요 합니다. 참 진지합니다.
멘토의 핵심을 말해주면 거기에 따른 경험을 글로 쓰게 합니다. 그리고 저와 대화를 통해 아이가 들려준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컴퓨터에 담습니다.
이런 몇 번의 과정으로 모아진 내용을 꾸미거나,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정리했습니다.      


한 편의 멘토에는 한 편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해 누군가가 바치는 기도는 하늘도 움직이게 하여
글의 주인공과 또 같은 처지의 청소년들에게 사랑으로 전달될 것입니다.


*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1. 내 이름 팔자, 아니거든?


중학생 혜민이는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 겪은 아픔 상처가 있다. 절친인 은비만 혜민이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이들은 큰 덩치에 잘 뛰어다니는 혜민이를 ‘콩콩아’라고 불렀다. 또 발끝을 바깥쪽으로 벌려 걷는 팔자걸음에다 평소에 습관처럼 자주 쓰는 말이 아이구 내 팔자야 하다 보니 ‘팔자’가 어느 순간부터 본 이름처럼 불리어지고 있었다. 혜민이는 친구한테 물건을 맡겨 놓고 그만 잊어버리다 생각나면
 “아이구 내 팔자야.”
친구가 약속 시간보다 늦게 오면
 “아이고 내 팔자야 젤 어떻게 하면 좋아?”
했다. 도대체 혜민이는 아이답지 않게 팔자라는 말을 누구한테 배웠을까? 전수자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아빠였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아빠는 요리를 자주 하셨는데 잘 되지 않으면 언제나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그렇지 뭐. 물건을 고치다가도 생각대로 안 되면 언제나 후렴처럼 아이고 내 팔자야…… 했던 아빠의 푸념을 딸 혜민이가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영화내마음의풍금.jpg

*영화 <내 마음의 풍금>


남녀공학인 혜민이의 학교는 교복에 이름표가 없었다. 선생님들은 출석부의 사진을 대조하며 학생들의 이름을 외웠다. 학생들은 자기 반이 아니면 이름 알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은 한 남학생이 혜민이를
 “뚱땡아.”
하고 불렀다. 같은 2학년이나 다른 반 얘, 희석이었다. 처음엔 누굴 부르는지 몰라 나? 하고 묻다가 어, 너 이혜민. 뚱땡이 하는 바람에 혜민이는 안 해도 될 말까지 했다.
 “나, 밥 많이 안 먹거든? 나도 이름 있거든? 그리고 내 별명 있어. 팔자, 콩콩이가 있어.”
 “아∼알았어. 미안, 이제 이름 부를 게.”
했던 희석이는 다음 날 혜민이를 보더니 야, 팔자야 하는 거였다. 화가 머리 양끝에 뿔처럼 솟은 혜민이는 희석이 별명을 불렀다.
 “야, 희동이.”
만화 <아기공룡둘리>에 나오는 희동이를 닮아서 붙은 별명인데 걔는 진짜 싫어했다. 희석이가 눈을 부라리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 희동이 아니거든?”
 “네가 먼저 팔자라 했잖아? 내 이름 불러주면 나도 니 이름 부를 게.”
 “알았어.”
희석이는 이렇게 대답은 했으나 돌아서서 또 팔자야∼ 하고 달아났다.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수업 종이 쳤는데도 열을 받은 혜민이는 2학년 5반 희석이를 쫓아갔다. 혜민이는 2학년 3반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김희석, 너 내 이름 다시 불러봐.”
 “알겠다 팔자야. 이팔자.”
이번에는 성까지 붙어서 큰 소리 치는 게 아닌가. 희석이 반 아이들은 혜민이가 말로 이팔자인 줄 알고 한꺼번에 마구 웃어댔다.


학교에서는 매월 15일 경이면 학년별로 한 명씩 봉사활동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 전체 학생들 모두에게 종이를 나눠주어 추천하고 싶은 학생 이름과 반을 쓰는 데 다른 반 아이 추천도 가능했다. 그 달의 봉사자로 뽑히면 학교 주변을 돌면서 쓰레기를 줍고, 고양이나 강아지 시체도 치우고, 때론 흡연하고 있는 학생들 명단도 적는다. 이런 일들이 모두 봉사활동시간으로 인정되며 봉사상도 받는다.

발표는 전체 조회가 있는 날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그 명단을 부른다. 그날 각 학년별로 추천자를 호명하던 교장선생님께서 2학년 3반 이팔자 하더니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또 한 번 마이크에 대고 
 “2학년 3반 이팔자가 누구냐.”
하며 찾았다. 2학년 학생들 틈에서 혜민이는 손을 들고 말했다. 
 “이팔자가 아니고 이혜민인데요?”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명단을 들고 
 “종이에는 이팔자로 써 있는데?
 “그게 아니고 제 별명을 쓴 거예요. 제 이름은 이혜민이에요.”
애타는 혜민이와는 달리 교장 선생님은 하하하 크게 웃었다. 그것도 마이크에 대고서. 아이들도 한꺼번에 막 웃었다. 그때 혜민이의 기분은 정말 정말 왕 창피, 왕 짜증 만땅이었다. 혜민이는 진짜 울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울면 내가 지는 거다. 하고 혜민이는 이를 악물었다. 절친인 은비가 얼른 혜민이 손을 붙잡고 교실로 데리고 와 달래 주었다.
 “신경쓰지 마, 너 이름은 이혜민인데 쟤네들이 괜히 약 올리려고 그래 다 무시해 버려.”
 “신경 안 써. 그냥 전교생 앞에서 내 이름을 이팔자로 불러서 화가 날 뿐이야.”
그때였다. 뜻밖에 희석이가 나타나더니 혜민이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나 때문이야. 내가 원인제공을 한 거야.”
  

내일은 가을 운동회가 열린 날이었다. 혜민이는 친구 은비랑 작전을 계획했다.
 “은비야, 나 좀 도와줘. 두꺼운 도화지와 물감 좀 준비해줘.”
 “뭐 하려고? 알았어. 물감은 내게 있고 도화지만 문방구에서 사 올게.”
혜민이는 은비의 도움을 받으며 큰 도화지에 큼직하게 세 줄로 이렇게 썼다.
 <내 이름은 팔자가 아니고 이혜민이다>
운동회 날 혜민이 반 옆에는 희석이네 반인 5반이 앉았다. 혜민이는 운동회의 마지막 파일라이트 이어달리기 계주로 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와와, 들려오는 아이들의 외침은 정말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팔자 파이팅! 이팔자, 파이팅!∼∼ 저기 두 번째로 뛰고 있는 게 팔자에요.”
가을 하늘을 휘젓고 있는 만국기들도 온통 이팔자 파이팅! 하라며 펄럭이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독이 되었는지 혜민이는 1등으로 골인선을 넘고 들어왔다. 그러고선 숨을 헐떡이는 상태로 2학년 5반 앞에 섰다. 잽싸게 친구 은비가 종이팻말을 양손에 높이 들고 그 옆에 서자 혜민이가 악을 쓰듯 외쳤다.
 “너희들 잘 들어. 내 이름은 팔자가 아니고 혜민이야 이팔자가 아니고? 이혜민이란 말이야.” 갈대 같은 희석이가 또 돌변하여 던지는 말
 “넌 그래도 영원한 팔자야.”
혜민이는 오늘 끝장을 보고 말겠다는 심정이었다.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혜민이는 팻말을 들고 운동장 중앙을 돌진하여 구렁대를 올라가더니 선생님이 들고 있는 마이크를 거침없이 뺏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이들은 운동회 마무리 중이었다. 혜민이는 마이크 가운데를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탁탁 두 번을 친 후 입에 바짝 대고 작정한 말을 했다.
 “선생님들께는 죄송한데요. 한 가지만 말할게요. 2학년 3반 이혜민이가 말합니다.
내 이름은 팔자가 아니고 이혜민입니다. 이제부터 저의 이름 이혜민을 불러 주세요.”
전교생들은 혜민이 소리에 잠깐 멍 때리듯 있다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운동회는 끝났다. 학교생활은 계속되었고 친구들은 혜민이를 여전히 ‘콩콩이’ ‘팔자’라고 불렀다. 혜민이라고 불러주는 친구는 은비밖에 없었다. 희석이는 이제 혜민이를 ‘콩콩아’라고 불렀다.
 “왜 콩콩이야?”
 “왠지 이름 부르려니까 쑥스럽고 그러네? 넌 뛰어다니는 것이 참 예뻐. 그리고 난 너를 별명 부르는 게 더 편해.”  
그러나 정녕 본인은 이름을 원하는데……. 은비는 알고 있다. 혜민이가 팔자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자기를 붙들고 참 많이 울었다는 것을.
 ‘너무 싫어. 나도 내 이름이 있어. 그렇게 부르면 정말 팔자가 되는 것 같아.’ 
 


나의 절친 은비에게


사랑하는 친구 은비야!
너마저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을 거야. ‘나는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사람이고 투명인간일 뿐이야.’라고.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도 내 이름은 없었어. 아빠는 나를 언제나 딸, 딸 하고 불렀다. 오빠는 야, 남동생은 누나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어. 엄마가 계셨다면 내 이름을 불러줬을까? 은비야 생각나니? 중3 때 말이야. 그날 아침 내가 엄청 배가 아팠잖아? 학교는 가야하는데 장이 부어 배가 부풀어 올랐어. 난 아프면 우는 습관이 있는데 정말 엄청 울었어. 학교도 갈 수 없었지. 출근한 아빠한테 연락했으나 바쁘니까 이따 전화할 게 하고 끊었어. 오빠도 마찬가지였어. 지금 학교 가는 중이니까 이따 전화할 게 하는 거야. 할 수 없이 난 너에게 전화를 했어. 은비 넌 수업 도중인데도 전화를 받았어. 혜민아, 지금 어디야. 많이 아파? 지금 내가 갈게. 그리곤 곧장 달려와서 나를 병원에 입원시켰어.
그날 저녁 늦게 먼저 오빠가 병원에 왔어. 그런데 누워있는 나를 보고선 오빠가 너는 맨날 아프기만 하냐. 동생이라는 것이 걱정만 시키고…… 했어. 혜민아, 괜찮아? 하고 말해 주었더라면 그렇게 서운하지 않았을 거야. 아빠도 와서는 딸, 괜찮지? 아빠 가도 되지? 하는 거야. 그때 가족에게 소외감이랑 외로움이랑 참 많이 느꼈어. 지금도 기억해.


은비야!
혜민이라고 불러주는 너를 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야’로 불렀던 것 같아. 그것은 또 다른 나의 이름이 되었어. 나는 야로 내가 불릴 때마다 무시당하고 있는 느낌. 내 존재가 사라지는 기분이었어. 우리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름 이름으로 불릴 때의 기분, 느낌을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
내 이름은 이혜민인데 내가 이외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으려면 나 역시 그 사람의 소중한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기 센터에서 수녀님, 선생님들이 “안녕, 혜민아.”하고 불러 줄때마다 나는 정말 행복했어. 정말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한 구절인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처럼 내가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귀한 이름 석 자를 불러주어야 나도 너도 행복하다고 말해 주고 싶어. 정말 내가 느낀 점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줄 때 행복과 기쁨을 전해 준다는 것이야.


은비야 고마워.
혜민아, 하고 다정히 불러줄 때마다 넌 나에게 행복과 기쁨을 전해 주었어.
그래서 말이야. 혹 다른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야’라고 부를 땐 너도 당당히 나의 이름은 김은비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있다고 꼭 말해야 돼.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남 민 영  수녀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된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생명이 출렁인다.


가만히…가만히… 다가가
그 존재의 이름을 부르면
꽃이 환하게 웃는다.
바람이  춤을 춘다.
바다가 시원하게 노래를 부른다.


주님,
오늘 제 곁에 있는 존재의 이름을
사랑의 마음 담아 부르게 하소서
‘나’는 ‘나’의 이름으로
‘너’는 ‘너’의 이름으로
빛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혜민이가
웃게 하시고,
춤추게 하시고,
노래하게 하소서.



살레시오수녀원 축소.jpg

*살레시오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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