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강우일 주교와 교종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강우일 주교. 사진/김태형 기자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의 발언이 별나다. ‘교종’이란 옛말을 쓰는 거다. 교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로마의 주교를 일컫는 교황의 또다른 명칭이다. 그러잖아도 몇 달 전에 교황과 교종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 교우에게 정확한 답을 드리지 못했던 게 생각나서 인터넷을 뒤지고 교회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봤다. 초창기에 천주교가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오면서 한자 번역을 그대로 받아 모든 전례서에 교종이란 말을 사용했단다. 그 후 일제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교황(敎皇)이란 말이 생겨났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2000년 10월에 <천주교 용어집>을 출간하면서 교황을 교회의 공식 용어로 확정했단다.
많은 교황들이 대부분 자신을 가리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별칭을 썼지만 교종(敎宗)의 본뜻은 남의 밑에서 천한 일 하는 종이 아니라 교회의 으뜸이란 의미다. 그런데 우리말로 교종이라 하면 교회의 종이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니(고백하건대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고맙게도 한자어 종(宗)이 갖고 있는 뜻 이상의 복음적인 의미를 더 얻는 셈이다. 교황이나 교종을 한자로 써놓고 보면 어느 쪽도 더 존중하거나 폄훼하는 말이 아닌데 우리말로 하면 풍기는 뉘앙스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확정 발표되자 한국 천주교회는 축제 분위기다. 그는 교황에 선출된 지 이제 1년이 조금 지났는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꼽힌다. 흔히 보지 못하던 현상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의 말 한마디나 일거수일투족은 ‘황제’보다 ‘종’에 더 가까우니 이 또한 별난 일이다.
*강우일 주교. 사진/조현 기자
한편, 주교회의 의장이자 교황 방한준비위원장인 강우일 주교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 1위로 꼽힌다. 매스컴이나 각종 강연을 통해 널리 알려진 그의 언행을 보면 두 사람은 시쳇말로 코드가 비슷해 보인다. 그가 굳이 교황을 교종이라 부르는 속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당신이 <천주교 용어집>의 교황을 마다하고 굳이 교종이라고 부르는 데는 우리말의 종 또는 머슴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가?” “의중엔 있다!” 대답이 간단명료했다. 아, 그랬구나! 그가 고집스럽게 교종이라 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구나! 강우일 주교는 지금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비극의 분단국가를 찾아오는 교종이 이왕이면 제주의 4·3 학살 현장에서, 살벌한 군사기지로 바뀌고 있는 강정에서 평화의 미사를 봉헌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황의 방한이 천주교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큰 배려라는 어느 고위 성직자의 설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천주교회의 교구장 주교는 자신의 관할구역에서는 삼권이 분립된 민주국가의 대통령보다 훨씬 큰 절대권한을 행사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단순한 협의기구일 뿐, 교구장 주교 위의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구속력을 행사하거나 앞장서서 일을 벌이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강우일 의장의 말(그의 저서 <기억하라, 연대하라>)에 수긍이 간다. 그 주교들의 으뜸이 교황이다. 하지만 예수는 다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이를 섬기는”(마르 9,35)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분의 요구다. 교황이 “자신을 낮추고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여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신”(필립 2,7~8) 예수를 따라야 함은 그래서 지당하다. 모든 기득권의 포기는 물론, 끝내는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 강우일 주교가 말하는 교종이다. 나도 교종이 좋다. 올여름에 오실 분이 교황이 아닌 교종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