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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스님이 추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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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 신분 놓고 사회적 실천으로 일관 한 대승보살

해남 두륜산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


‘비노바 바베’ / 칼린디 지음 / 김문호 옮김 / 실천문학사


<법보신문> 심정섭 기자  |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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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인 스님은 “비노바 바베의 삶이 대승보살의 삶과 다르지 않다”며

“우리도 비노바가 될 수 있고 대승보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류는 시대를 막론하고 강자가 약자를 부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신분 때문에 삶의 모습을 바꾸는 자체가 불가능했던 국가와 제도가 적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존재했던 노비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노비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제 스스로의 의지로 삶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단지 양반에게 목숨을 내맡긴 채 그들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에나 의로운 인물이 하나씩 나타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약자들에게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세계 곳곳에 그러한 인물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 덕분에 개개인의 신체적․정신적․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게 된 나라도 여럿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가 독립하게 되면 인도의 국기를 처음으로 계양할 사람’이라고 칭송했던 비노바 바베도 그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비노바는 사람들에게 “카스트와 계급과 언어와 종교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라”고 역설했고, 스스로도 인도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을 상징하는 긴 머리타래를 잘라버림으로써 기득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누구나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땅을 경작할 권리 또한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며 토지헌납운동을 벌였다. 그렇게 길 위로 나섰고 그 길에서 국민들의 삶이 바뀔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온 그의 생애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 지극히 높은 수준의 영성에 대한 갈망, 인도적 가치들과 사랑에 대한 흔들림 없는 굳건한 믿음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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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노바 바베’ / 칼린디 지음 / 김문호 옮김 / 실천문학사


시대가 본받아야 할 대승보살
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 소임을 맡아 미래지향적 승가교육 체계 확립에 힘썼고, 지금은 땅끝 마을 해남 두륜산 일지암에서 한국불교의 나아갈 바를 화두삼아 수행중인 법인 스님은 걸어 다니는 인도성자 비노바 바베를 “이 시대가 본받아야 할 대승보살”이라고 강조했다. 하여 그의 삶을 조명한 평전으로 일컬어지는 ‘비노바 바베’를 종교를 떠나 꼭 읽어야할 필독서로 꼽았다.
자서전 형식으로 쓰여져 있지만, 사실 제자인 칼린디가 비노바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삶을 재구성한 ‘비노바 바베’는 비폭력을 추구하고 영성을 추구하며 사랑의 힘을 간직해 온 비노바의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을 두루 밝히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해방된 후의 인도는 가난한 서민들은 배고픔에 떨고, 부자들은 폭동에 대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혼란기를 맞았다. 비노바의 실천적 삶은 그러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가난한 자와 가진 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한 마을의 회의를 지켜보면서 시작됐다. 마을 회의에서 배고픔에 떨던 천민들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땅 하나 없음을 한탄하자, 이에 주민들의 고통을 공감한 마을 유지가 선뜻 100에이커의 땅을 내놓았다. 이때 천민들은 80에이커면 충분하다며 필요한 만큼의 땅만 받았다.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진한 감동을 느낀 비노바는 사랑과 감동이 있으면 폭력 없이도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브라만이라는 최상위계층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6년 동안 8000km를 걸으며 인도 전역에서 민중을 위한 토지헌납운동을 펼쳤고, 32년간 육체노동자로 살면서 인도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섬으로써 인도의 역대 수상들로부터 가난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존경받는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중생이 사는 그곳이 보살의 정토
법인 스님은 힌두교 신앙을 가진 이 비노바의 삶에서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삶을 보았다. 개인의 깨달음과 열반뿐 아니라 중생과 함께 열반에 이르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은 이가 대승보살이다.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이 구원받기 전에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하고, 법장비구가 괴로운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기 전에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한 것처럼 말이다.
스님은 “그 깊고 풍부한 철학에 바탕한 자비의 사회화가 경전 곳곳에 있음에도, 왜 우리 불교사에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보살이 많지 않은가”를 고민해왔다. 대중의 고통을 덜어줄 실천적 삶을 펼친 보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래서 근현대 인물 가운데 자기 삶에서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일치시킨 인물들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렇게 만난 인물 중 하나가 비노바다.
“자기 삶과 사회적 실천을 하나로 한 삶이 바로 대승의 보살입니다. 비노바 바베도 그렇고 간디, 닥터 노먼 베쑨, 넬슨 만델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인물들입니다.”
대승불교의 지향점은 자기수행과 이웃을 향한 회향이라 할 수 있다. 스님은 여기서 회향이 곧 보살의 삶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리로 보면 지혜와 자비의 완성이고,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다. 이것이 곧 대승불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연기적으로 되어 있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법 역시, 서로 도움을 주고 자비를 나눠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이 그렇게 펼쳐질 때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삶을 따르는 것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마경’에서 ‘중생이 사는 그곳이 보살의 정토’라고 하는 것처럼, 정토는 결코 인간의 삶과 사회와 역사를 떠난 관념적이고 신비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화엄경’에서도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집단 등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인드라망의 세계관을 말하고 있다. 실천적 삶의 적극적인 방법인 보시가 중요한 것도 단순한 베풂이 아니라,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수행과 사회적 실천이 일치하는 삶
하지만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에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가르침이 이토록 넘쳐남에도 지금의 불교계는 가치의 판단과 사회적 실천에 너무나 소극적이다. 그래서 스님은 “경전에서 보살을 찾지 않고, 먼 과거에서 찾지 않고, 내가 맞닿아 있는 이 시대 현장에서 한 번 보살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중생이 살아가는 이 땅에서 정토를 일구는 보살을 만나고픈 간절함이었다. 이는 또한 보살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막연해하는 불자들에게 어떠한 생각과 행동이 보살의 그것인지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려는 전법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비노바 바베는 한시도 자기 성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탐구하고 명상했으며 무소유라 할 만큼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실천운동으로 삶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소욕지족하지 못하면서 발우공양, 고무신 등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무소유와는 사뭇 다릅니다.”
스님은 이처럼 비노바의 삶이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일치시킨 대목에 주목했다. “유위 가운데서 무위를 보고 무위 가운데서 유위를 보는 자는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자이다”라고 한 비노바의 말에서 그동안 경전을 통해 이해했던 유위와 무위의 관계가 확연히 드러난 것도, 수행과 사회적 실천이 일치하는 그의 삶 때문이었다.


대비심에서 보리심 나오는 과정 드러나
그리고 스님은 비노바의 삶을 담은 이 책에서 ‘대비심으로 인해서 보리심을 낸다’는 경전 말씀도 절감했다. 삶의 현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성숙을 이루고 자연스럽게 대비심을 갖게 될 뿐만아니라, 그 대비심이 보리심을 발현시키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비노바는 토지헌납운동으로 불리는 ‘부단운동’을 벌이면서도 토지주들에게 “당신들이 적선하듯이, 인심을 베풀듯이 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개인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땅을 내놓을 때는 스스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놓아야 한다. 토지헌납운동 정신은 바로 이런 것이다”며 대비심을 갖고 스스로 땅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스님은 우리사회 사회실천운동 역시 이러한 철학과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화엄경’에서 말하는 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회향 등 삼처회향도 이러한 가르침이라고 설명했다. 즉 “겸손하고, 성숙해지고, 자비심을 근간으로 하는 베풂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노바의 이야기는 이러한 종교적 가르침을 한 사람의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생 삶의 현장에서 대비심이 일어나고 그 대비심으로 인해 보리심이 형성되는 과정의 생생한 현장인 것이다.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참회와 자비
또한 그가 “신앙은 오직 세 가지만 요구합니다. 사브르와 하크, 즉 참회와 자비와 진실입니다. 나는 그것을 사랑, 자비, 진리라고 부릅니다”라고 한 대목에서 신앙의 힘과 신앙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에 대한 생각을 화두처럼 껴안은 결과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진실, 자애, 모범적 실천이었다. 비노바는 바로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마치 부처님이 군대의 권위와 법령의 벌칙 없이도, 지혜․자비․헌신․실천을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제자들이 감동받고 말없이 따랐던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브라만의 권위를 버리고 천민들의 삶에 뛰어들어 똥 치우는 일, 옷감 짜는 일, 목수일, 농사일을 직접 하면서 32년이라는 세월 동안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비노바의 삶이 바로 그와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모든 지주들에게 땅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육분의 일을 공유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육분의 일을 요구하는 근거는 이런 것이다. 인도의 가정들은 평균적으로 아들을 다섯 명 정도 두고 있기 때문에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여섯 번째 아들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라고 술회한 대목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반민특위의 활동이 미군정에 의해 저지되고, 일제강점기 친일행각으로 부를 축적한 친일파들의 토지를 환수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결국 비노바의 진정성 있는 모습과 실천적 삶이 토지소유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것이 곧 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스님은 “이 사람은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진심을 본 대중이 그의 논리․철학․생각이 정말 옳다는 것에 동의했기에 부단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오늘날 종교인을 비롯한 우리사회 운동가들이 그의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행은 말이 아닌 실천의 문제
비노바의 삶을 담은 책은 말이 앞서는 이 시대에 적지 않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법인 스님은 “우리는 수행을 너무 말로만 한다”며 거침없이 실천부재의 현실을 비판했다. “동체대비를 말하고, 연기를 말하면서도 실제로 고통에 사로잡힌 대중을 향한 자비가 없고 인권에 대한 실질적 감수성도 약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 이유를 “책에서만 명상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부분은 더욱 파격적이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고, 보살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화두삼아 의식의 지평을 넓혀온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스님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 입장이 되면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세상이 연기돼 있음을 가슴깊이 인식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책에서는 또 그러한 감수성을 갖고 실천으로 회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선한 마음임을 밝히고 있다. 비노바는 “선은 창문이며, 악은 벽이다. 선한 것은 문이다.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라며 “선함만이 참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스님은 이 모습에서 언행이 일치하는 수행자의 삶이 있을 때에만 대승불교의 가르침이 사회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비노바 바베나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진심에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워 자비심을 발현하는 동체대비심을 확연히 드러낼 수만 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비노바이고 대승보살입니다.”
오늘날 진심은 사라지고 형식과 외연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이 자기 삶을 반추해 보길 바라는 스님의 간절함이 배어있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출가수행자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애틋함도 더해져 있다.


위대한 인물들 뒤엔 현명한 부모가 있다
지난 몇 년간 산사에서 서울 도심 한복판으로 자리를 옮겨 미래지향적 승가교육체계 확립에 몰두했던 스님은 비노바의 인격 형성에 기초가 된 집안 교육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았다. 비노바는 “나의 정신을 형성함에 있어서 어머니가 했던 역할에 버금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도 하였고, 경험의 지혜로 가득찬 위대한 인물들의 책들도 읽었다. 그러나 만일 이 모든 것들을 천칭저울 한 접시에 올려놓고 다른 한 접시에 내가 어머니에게서 배운 실천적인 신앙을 놓는다면, 저울추는 두 번째 접시 쪽으로 기울 것이다”라며 어머니의 가르침이 실천적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스님은 “비노바를 비롯해 실천적 삶을 살아가 이들은 대부분 어릴 때 부모가 보여준 자비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다”며 “부모의 교육이 사람을 바꿀 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수능을 향한 학습만을 요구하는 우리사회 부모들의 자화상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여기서 스님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비웃거나, 이혼가정이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멸시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이를 바로잡아 주려는 부모가 많지 않은 시대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노바의 어머니가 ‘나무에 물을 주어야 나도 밥을 줄 것’이라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일은 곧, 그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비심으로 감싸고 그들의 생명을 온전하게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실천에 나설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던 것이다.


몸으로 하는 수행이 필요한 시대
스님은 비노바라는 인물을 책으로 만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환하게 올라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동체대비, 유위에서 무위를 본다, 회향 등 관념적으로 이해하던 교리적 가르침들이 확연하게 체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삶이 수행이 되는 구체적 변화도 나타났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행자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어떻게 말하고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또 그러면서 삶의 구체적 내용을 바꿔갈 수 있었고, 그만큼 번뇌도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참선, 염불, 간경, 주력 등 수행에서만 찾으려던 집착도 끊어졌다. 청년출가학교에서 청년들과 지내면서 하심과 공경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것도 사고의 전환이 가져온 결과다. 그래서 스님은 “나도 그렇고 불교인들 모두가 지나치게 고요하고 참선 위주로만 수행을 하고 있으나, 이제 몸으로 하는 수행이 필요한 시대”라고 역설한다. 비노바가 스스로 육체노동자라고 했던 그 일들을 통해 진심을 보이고 사회의 생명을 살려낸 것처럼, 수행에도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평소 책을 읽을 때마다 꼼꼼하게 밑줄을 긋고, 그것을 다시 ‘독서일기’에 요약 정리해서 보관했다가 다시 꺼내보는 습관을 지닌 스님은 이 책 ‘비노바 바베’에서 대비심과 보리심, 부모 교육의 중요성, 수행과 혁명 등을 키워드로 읽어내면서 결국 ‘대승보살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불교적 회향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책은 정신과 삶의 바탕이다
독특한 책 읽기로 책이 주는 지혜를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인 스님은 균형 있는 책읽기로 독서 지평을 넓히고 있다. 사상서, 철학서 뿐아니라 문학서도 즐긴다. 또한 다른 종교인들,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의 글도 챙겨 보며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데 도움을 얻는다. “법륜 스님은 해방신학을 들여다보니까 대승불교가 이해가 됐다고 했고,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성공회 신부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과 연기의 진리를 듣고 나서 하나님 신관이 분명해졌다고 하기도 했다”며 불자들도 불교 밖 책을 통해 자기 알음알이를 보다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스님에게 책을 찾아가는 서점가 산책은 시장보기에 다름 아니다. 포행한다는 생각으로 서점을 방문해 두루두루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또 하나, 서점에서 청소년이나 어르신들이 벽에 기대앉아 책 읽는 모습을 보면 그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하는 감동도 얻는다.
그리고 빠른 시간에 많은 책을 보기보다, 한 권의 책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고, 독서일기를 통해 정리하고, 핵심이 되는 주요구절을 되새겨 생각하면서 생각의 힘을 증장시킨다. 그래서 우리 몸이 흙과 물, 불과 바람의 사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책은 스님에게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되는 의식의 힘을 키우는 사대와 같다. 때문에 책을 보는 그 자리가 곧 선불장이라 할 수 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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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이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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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신영복 지음/ 돌베개
중국철학의 다양한 부분들을 관계론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고전을 읽는 독법이 참 좋았는데요. 현대문명 속에서 문명의 관점으로 이것을 보면서 성찰과 대안의 실마리를 얻으려는 노력이 와 닿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라는 강좌를 진행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인데요. 자본주의 체제 물질 낭비와 인간의 소외, 황폐화된 인간관계를 근본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을 관계론의 관점으로 살펴보고 다양한 예시 문장을 통해 관계론적 사고를 재조명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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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vs철학’/ 강신주 지음/ 그린비
철학자 강신주 선생이 대립되는 핵심 주제를 놓고 두 철학자의 사유를 대비시켜,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책입니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신개념 철학사로 불리는 책이기도 한데요. 현장에서 인문 대중을 직접 만나고 책을 써온 저자가 방대한 철학사 속에서 소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56개의 주제를 뽑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두 철학자를 등장시켜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플라톤, 조르조 아감벤, 공자, 가라타니 고진 등 100여 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낯익은 조합도 있지만 주제에 따라서는 파격적인 배치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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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지음/ 김현욱 옮김/ 동서문화사
토머스 모어는 잉글랜드 왕국의 법률가, 저술가, 사상가, 정치가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인입니다. 1516년 자신이 지은 책에서 묘사한 이상적인 정치체계를 지닌 상상의 섬나라에 주었던 이름인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형집행을 당하면서도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담대한 성격을 지닌 사람인데, 15세기에 생명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책은 사회, 정치, 종교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이상향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존 로크의 ‘통치론’이 함께 실려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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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교양인
수녀 출신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철학과 문명을 아주 밀도 있게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기원전 900년부터 200년까지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인류사의 가장 경이로운 시기를 다룬 역사서입니다. 이 시기는 부처님을 비롯해 소크라테스, 공자, 예레미야, 맹자, 에우리피데스, 플라톤 등 사유의 천재들이 나타난 때인데,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사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이 놀라운 문화적 평행 현상을 중국, 인도,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축의 시대 문명 벨트를 횡단하며 재조명했습니다. 그래서 인류 정신사에 거대한 전환점이 된 축의 시대에 관한 인문학적 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법보신문(beopbo.com)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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